“아픈 이는 많은 것을 잃겠지만
그만큼 기회가 올 겁니다.
관계들은 더 가까워지고,
삶은 더 가슴 저미도록 깊어지고,
가치는 더 명료해질 거예요.”
대학 졸업 후 10년 가까이 회사원으로 살던 어느 날, 친한 후배에게 내 꿈을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러니까 작가가 되고 싶어.” 당시 나의 큰 고민은 지난한 직장인의 삶이었다. 반복되는 야근이 너무 고되었고 직장인으로서의 삶은 다방면으로 녹록지 않았다. 내 꿈을 들은 후배는 ‘현실적으로 내가 작가가 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고, ‘왜냐하면 나의 삶이 너무 평탄하고 순탄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뭔가 아픔이 있고 슬픔이 있어야 속에서 글이 솟구쳐 나올 텐데 본인이 볼 때 나에겐 그게 없다고 했다. 후배의 말을 들어 보니 맞는 것도 같았다. 나는 그때 삶이 무료하고 심심하다고 느꼈다. ‘무슨 일 좀 안 일어나나?’ 하고 이벤트를 기다리기도 했다. 내 나이 삼십 대 초반의 일이다.
그 대화의 순간을 종종 떠올린다. 회사 앞 편의점에서 그런 대화를 심드렁하게 주고받던 젊었던 우리들. 그때 우리는 정말 안온했다. 한데 돌이켜보니 나는 그때 그냥 젊었던 것뿐이었다. 내 인생이 특별히 평안했던 것이 아니라, 내가 아직 인생의 격전기에 들어서지 않았던 것이다. 대리님이었던 호칭이 언니가 되기까지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어느 날, 나는 인생이 우수수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했다. 안온했던 삶은 끝이 났고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서 프랭크의 책 「아픈 몸을 살다」는 작가 본인의 심장마비와 암 경험을 쓴 책이다. 수기라기보다는 병에 대한 사유에 가깝고 유려한 문장이 이야기에 대한 공감을 높인다. 나는 아픈 가족을 염려하면서 그리고 나이 들면서 필연적으로 질병을 겪을 인간으로서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책을 펼쳤다.
「아픈 몸을 살다」는 표지 그림이 책 전체를 설명한다. 아픈 이는 중앙에서 자신의 몸보다 훨씬 큰 질병과 싸우고 있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 의료진이 서 있다. 마찬가지로 조금씩 떨어진 거리에서 많은 사람이 아픈 이를 빙 둘러싸고 있다. 누군가는 기도하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고 누군가는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뒤돌아서 있다. 아픈 이와 질병 단둘에게 조명을 비춘다. 딱 우리 곁의 누군가가 아플 때 일어나는 상황이다. 안타깝게도 아픔은 오롯이 환자 본인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요지는 이것이다. “많은 것을 잃겠지만 그만큼 기회가 올 겁니다. 관계들은 더 가까워지고, 삶은 더 가슴 저미도록 깊어지고, 가치는 더 명료해질 거예요.” 질병 속에서도 인간의 서사는 진행된다. 그것이 핵심이다.
한동안 가족이 차례로 아팠다. 가족 구성원이 나이 들면서 질병과 돌봄은 일상이 되었다. 모든 병의 첫 번째 원인은 ‘노화’라고 하더니, 그건 참 맞는 말이었다. 그때 내 기도 주제는 온통 질병과 치유였다. ‘주님, 저희 가족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날도 어김없이 주님께 우리 가족의 치유를 빌다가 습관적으로 주보를 펼쳤다. 그리고 한 자매님의 글을 읽었다. “질병만이 열어주는 문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질병으로 이 세상의 문이 닫히고 말겠지만 그때 나에게는 그 문장이 매우 큰 힘이 되어주었다. 아픔이 지나가면서 우리에게도 어떠한 문이 열리겠지. 제발 뜻밖의 기쁨이 우리의 미래에도 있었으면. 그리고 언젠가 나중에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 이런 글로 아픈 이와 아픈 이들의 가족을 위로하고 싶다. 그 생각에 기대어 한 시절을 살았다.
나는 항상 같은 시간대에 미사를 드리러 가고 같은 자리에 앉는다. 제대를 바라보고 왼편 뒤쪽. 내가 좋아하는 자리다. 그때마다 항상 마주치는 연로하신 자매님이 있다. 정면으로 마주치면 못 알아보겠지만 뒷모습만은 친숙하다. 나는 그분의 뒷모습을 잘 안다. 백발보다는 금발에 가까운 머리칼에 항상 모자를 쓰고 핑크색 패딩을 입으시는 그분은, 미사 내내 줄곧 한쪽으로 기울어졌다가 다시 일어나길 반복하신다. 아마도 몸이 조금 불편하신 듯하다. 저러다가 쓰러지시는 것은 아닐까, 때마다 걱정스러워 주시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분을 위한 기도를 시작한다.
대다수 인간은 죽음에 앞서 노화를 경험해야 하고, 노화와 함께 질병과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노년을 모르고 죽음을 알 수 없듯이 질병의 고통을 모르고 노년을 알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가족·친구·이웃과 함께한다. 즉, 우리는 그것을 나의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 노화도 함께, 질병도 함께, 고통도 함께. 그러니 우리는 아픈 이, 돌보는 이, 그저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이, 그리고 아픈 이를 위해 기도하는 이. 그 모든 역할을 거쳐야 한다.
우리는 아픈 사람이 제일 힘들다고 말하지만 그건 틀렸다. 삶의 마지막에 오는 질병과 그로 인한 고통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내가 아파하는 동안 내 곁의 사람들도 몹시 아프다. 그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기도와 함께 그 여정을 성공적으로 통과해야 한다. 내가 사랑하는 내 사람들이 관계한 여정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미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