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본격적으로 밭 관리를 시작할 시기다. 밭에 넣을 모종을 키우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 손바닥에 눈곱만큼 작은 씨앗들을 올리고 한 손으로는 부지런히 포트 위에 씨앗을 하나하나 옮겨 담는다. 겨울 지나 다시 농사를 시작해서 그런지 씨앗을 포트에 하나씩 옮기는데 눈이 시큰거리고 집중력은 떨어진다. 1개씩 넣어야 하는데 2개씩 들어가고 난리도 아니다.
그렇게 포트에 씨앗을 하나하나 옮겨놓고 물에 담가 발아시킬 준비를 마치고 육묘장 위로 올라간다. 따뜻한 열선이 깔려 있고 비닐 이불이 덮여 있다. 이곳에서 씨앗이 든 포트는 싹 틔울 준비를 할 것이다. 비닐 이불을 덮었다 폈다 해줘야 하고 하우스 문을 한쪽만 열지, 양쪽을 개방해 통풍을 원활하게 할지, 또 측면에 창문을 언제 개방할지 등 모든 것을 세심히 신경 써야만 씨앗들의 발아가 시작된다. 씨앗을 심은 건 함께였지만, 육묘장 관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사람은 또 농부님이다. 온도를 맞추고 물주기를 하고 이런 과정들을 한 달 이상 돌봐야 씨앗이 비로소 새싹이 되어 예쁜 모습을 드러낸다.
허리가 아프게 앉아 눈이 빠지라고 씨앗을 심은 뒤 밖으로 나왔다. 눈앞에 이상한 물체가 보였다. 이제 막 잠에서 깬 개구리였다. 세상에 정말 너희가 깼구나. 봄이 왔구나 싶었다. 개구리는 눈만 깜빡깜빡 할 뿐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불러 갔다가 돌아오니 어느새 개구리는 제 갈 길을 가고 없다.
개구리를 만나고 보니 경칩임을 알아차렸다. 경칩은 24절기 중 세 번째 절기에 해당한다. 옛 선조들은 이 시기에 천둥이 치고, 그 소리를 들은 땅 속 잠든 벌레들이 깨어난다고 보았다. 이때 식물의 싹을 보호하고 어린 동물을 기르며 고아들을 보살펴 기른다는 기록이 있다. 경칩 이후 갓 나온 벌레나 갓 자라는 풀을 상하지 않게 하려면 불을 놓지 말라는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모든 생명이 생동하는 시기로 보호하고 관리하도록 했다.
아직 봄나물이 많지 않은 지금 먹을 수 있는 채소로 봄동이 최고다. 시장에는 12월부터 봄동이 나왔다. 암 발병 이후 녹색 잎 채소 챙겨 먹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엄마가 채소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때가 12월이니 그럴 만도 했다. 내가 요즘 나오는 봄동을 먹으면 되지 않을까 했더니 엄마는 ‘근데 봄동은 1월이 돼야 맛있어져’라고 하신다. 역시 절기에 맞지 않으니 엄마에게 퇴짜다.
12월에 먹던 봄동과 지금 먹는 봄동은 그 아삭한 식감과 뒤에 남는 단맛이 완전 다르다. 봄동이 추운 겨울이 지나야 제대로 맛이 드는 이유는 땅에서 찬 겨울을 지나며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몸속 전분을 당으로 전환하기 때문이다. 이 맛을 아는 엄마는 아직 봄동의 때가 아니라고 하신다.
봄동이 맛있어질 시기를 기다리던 시간 갑자기 온라인에서 봄동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보다 봄동 비빔밥.” 우리나라를 휩쓸고 간 달콤한 디저트 두쫀쿠가 가고 봄동이 시장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다. 사람들도 이제 절기에 맞는 음식을 찾기 시작한 걸까?
18년 전 봄동 비빔밥을 맛있게 먹는 연예인 동영상이 돌면서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 맛있는 제철 채소 이야기를 담아내는 내게는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유행에 민감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번엔 유행 따라 나도 봄동 비빔밥을 해봐야겠다. 사실 늘 먹던 봄동 겉절이에 밥을 비비는 일이라 복잡하지 않고 레시피도 간단해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렇게 단순하고 맛있는 레시피를 자꾸 개발해야겠다는 의욕을 불태우게 한 봄동 비빔밥이다.
땅에서 결구를 맺지 않고 넓게 잎을 펼친 채 자라는 봄동은 활짝 펼쳐진 꽃처럼 예쁘다. 그리고 펼쳐진 모든 잎이 햇빛을 충분히 받으니 다양한 미량 영양소와 항산화 물질이 많아진다. 그러니 영양도 높아지고 맛도 좋아질 수밖에 없다.
씻을 때 잎 사이사이 흙을 잘 씻어주면 요리는 거의 완성된 거나 다름없다. 양념도 초간단이다. 고춧가루, 맛있는 발효 간장, 깨 듬뿍, 참기름이면 된다.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봄동을 양념에 넣어 무치고 참기름을 한 큰술 넣어주자 입안에 침이 고이면서 저절로 식욕이 올라온다. 여기에 울금(강황) 가루를 넣어 물기를 날려준 두부를 올리면 단백질까지 채워진 맛있는 한 그릇 밥이 완성된다. 맛있는 봄동을 가득 먹고 활기찬 봄을 시작하자.
레시피 - 봄동 비빔밥
재료 : 봄동 500g, 고춧가루 2큰술, 간장 2큰술, 깨소금 1큰술, 참기름 1큰술, 들기름 1큰술, 두부 1/2모, 강황 가루 1큰술, 소금 1/2작은술, 밥 3공기.
사전 준비
1. 봄동은 잎을 뜯어 깨끗이 씻어둔다.
2. 두부를 흐르는 물에 씻어 물기를 뺀다.
3. 통깨는 갈아 깨소금을 만든다.
조리순서
1. 봄동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2. 큰 볼에 고춧가루 2큰술, 간장 2큰술, 깨소금 1큰술, 참기름 1큰술을 넣고 양념을 만든다.
3. 프라이팬에 두부를 넣고 강황 가루 1큰술과 소금 1/2작은술을 넣고 수분이 날아가도록 볶아준다.
4. 양념에 잘라둔 봄동을 넣어 버무린다.
5. 봄동이 버무려진 양푼에 밥을 넣는다.
6. 두부 소보로(고명)가 완성되면 작은 공기에 담아 꾹꾹 눌러준다.
7. 비벼진 밥 위에 두부 소보로를 올린다.
8. 검정깨를 뿌리고 들기름을 한 바퀴 둘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