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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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신앙체험수기] 장려상 - 무화과나무, 기적의 시간을 함께 살다

최유란(릴리안, 수원교구 철산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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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제미나이 제작


어느 날, 나는 꿈을 꿨다. 내가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지하철 노선도를 바라보았다. 그곳엔 내가 가야 할 곳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베델.” 그리고 나는 잠에서 깨었다. 그대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베델’이라는 명칭이 선명하게 떠올랐고,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그러나 ‘베델’은 내게 너무도 생소한 단어였다. 영어 같으면서도 전혀 뜻을 알 수 없었다. 나는 핸드폰을 켜서 ‘베델’이라고 검색해 보았다. ‘베델’은 야곱이라는 사람이 천사가 드나드는 사다리를 목격하고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곳의 명칭으로 ‘하느님의 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나는 평생 무교로 살아온 사람이었고, 하느님에 대해 무관심했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이런 꿈을 꿨다는 사실이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다 하느님의 인도였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그때, 내 곁에는 5살 된 아픈 아이가 콧줄을 한 채 잠을 자고 있었고, 지금은 천국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게는 아들이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너무도 착하고 건강한 아이였다. 아이의 환한 웃음을 보면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고, 투정부리는 입술조차 사랑스러운 그런 아이였다. 나와 남편은 아이가 태어난 후로 더 바랄 것 없이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가 5살이 되던 해, 어느 날 아이가 갑자기 절뚝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뼈에 이상이 있는 건가 싶어 정형외과에 다녀왔지만 별다른 차도 없이 시간만 흘렀고, 아이의 걸음걸이는 더욱 힘겨워 보이기 시작했다. 휘청거리다가 주저앉기도 하고, 낮은 계단도 오르내리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제야 심각성을 인지한 우리는 아이를 데리고 대학병원 신경외과로 향했다. 진료하던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단번에 그날 바로 입원 후 MRI를 찍자고 했다.

다음 날, 우리는 충격적인 결과에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아이의 병명은 뇌종양이었다. 뇌의 정중앙(뇌간)에 탁구공만 한 악성종양이 자라고 있었다. 수술 불가, 치료 불가.

의사는 아이에게 약 6개월에서 1년의 시간이 남아있다고 했고, 퇴원해서 아이와 많은 추억을 만들라고 했다. 아이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집에 간다며 좋아했고, 나는 그런 아이의 얼굴을 보며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퇴원 후 나와 남편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러 군데의 병원 진료를 보았지만, 모든 병원의 모든 의사가 똑같은 말을 했다. “죄송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아이와 남은 시간 잘 보내세요.”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앞엔 절망만이 쌓여갔다.

6개월이 지났을 때, 아이에겐 편마비가 왔고 스스로 걸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이의 하루하루가 행복으로 채워지기를 바라면서 많은 곳을 여행 다녔고, 수많은 사진과 동영상을 남겼다. 그리고 우리는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남겨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아이와 함께 나무를 심었다. 무화과나무. 아이는 유모차에 앉은 채로 제 몸보다 큰 삽을 아빠와 함께 쥐고 무화과나무 뿌리에 흙을 뿌려주었다. 그리고 수도 호스를 잡고 물도 흠뻑 뿌려주었다.

1년이 지나고, 아이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게 되어 하루의 전부를 침대에 누워서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아이는 그 힘겨운 투병 생활 동안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늘 해맑았고,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점점 약해지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내게 너무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엄마로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비참했다.

2024년의 가을,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갔고, 증상은 점점 나빠져 갔다. 아이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그런 아이의 곁을 늘 지키며, 잘 알지 못하는 ‘하느님’을 떠올리면서 두 손 모아 서툰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하느님, 저희 아이가 평온한 시간을 보내게 해주세요.’

그리고 나는 그 꿈을 꾸었다. ‘베델’로 향하는 꿈. 꿈을 꾼 후 며칠 동안은 아이를 돌보는 일상 중에도 그 꿈의 의미가 무엇일지 계속 떠올려봤다. 그리고 나는 그날도 나를 향해 힘겹게 미소를 지어주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에게 세례를 받게 해줘야겠다고 결심했다. 그것은 아이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남편은 어릴 때 세례받은 이후 긴 냉담 중인 천주교 신자였다. 내가 꾼 꿈 이야기를 해주고, 우리는 함께 의견을 나눴다. 아이에게 세례를 주기 위해서 뭘 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남편은 바로 성당으로 향했다. 집 근처를 오가면서 늘 무심코 지나치던 길에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던 성당. 남편은 성당 사무실을 찾아 들어갔다. 그곳엔 주임 신부님이 이미 계셨고, 남편은 우리 아이가 처한 상황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며칠 뒤에 신부님께서 세례식을 하러 우리 집으로 찾아오시기로 했다.

아이의 세례식 날, 우리는 아이에게 늘 입히던 파자마 대신, 미리 준비해 놓은 단정한 하얀색 셔츠와 검은색 바지를 입혀 주고, 손목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빨간색 나무 묵주를 쥐여주었다. 아이에게는 “신부님이 기도해 주시러 오실 거야. 마음속으로 ‘아멘’하고 말하면 돼” 하고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아무것도 먹을 수 없고, 말도 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아이는 눈을 깜빡이며 알겠다고 말하는 듯했다.

신부님과 수녀님, 대부님께서 함께 집으로 찾아오셨고, 신부님은 아이의 손을 잡고 유아세례와 병자세례를 함께 주셨다. 아이는 편안한 얼굴로 묵묵히 세례를 받아들였다. 아이에게는 ‘안젤로’라는 새 이름이 생겼다. 세례식을 지켜보는 나와 남편의 마음은 먹먹해졌다.

그 후 남편과 나는 한 명씩 번갈아가며 거의 매일 성당 미사에 참여했다. 미사가 시작되면, 신부님께선 늘 우리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셨다. “김 안젤로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나는 ‘5단 묵주 기도’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안젤로의 곁에서 안젤로의 평안을 바라며 기도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안젤로의 호흡과 의식이 조금씩 약해져 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저 오늘 하루를 안젤로와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또 기도했다. 그리고 안젤로에게 예수님의 생애가 담긴 동화책을 읽어주기도 했다. 안젤로는 자그마한 눈을 살며시 뜨고 동화책에 있는 그림을 보면서 엄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예수님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하늘에 있는 천국이 어떤 곳인지에 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다. 사실 나는 천국에 대해서 잘 몰랐지만, 어떤 노래 가사의 ‘많은 사람이 다 모였네. 천국에 가서 커다란 사자와 친구가 되었네. 모두 여기서 다시 볼 거야’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안젤로에게 “하늘나라에 가면 엄청 큰 사자랑 호랑이랑 다 친구가 된대. 예쁜 꽃이랑 나비도 많이 있는 아름다운 곳이야. 천국에서 하느님이 너와 함께 하실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면 안젤로는 그저 배시시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2024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안젤로의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다. 안젤로의 생일인 1월 1일을 함께 보낼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안젤로의 손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했다. “하느님, 우리 안젤로가 저희 곁에서 함께 생일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안젤로의 모든 시간이 평안하기를 빕니다. 그리고? 안젤로를 저희에게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젤로의 맥박과 호흡은 불안했고, 의식도 없었다. 그렇지만 감사하게도 안젤로는 크리스마스, 그리고 새해와 함께 찾아온 7번째 생일날을 우리와 함께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1월 9일, 안젤로는 내 품에서 마지막 숨을 쉬며,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내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지만, 이제는 아픔이 없는 곳에서 편안해질 안젤로를 생각하며 나는 그저 안젤로를 오래오래, 꼭 안아주었다.

 
구글 제미나이 제작


안젤로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온 집은 안젤로의 흔적들로 가득했다. 안젤로가 좋아했던 장난감들과 안젤로의 옷, 여전히 남아있는 안젤로의 머리카락들?. 집 안의 거의 모든 것들에 안젤로의 숨결이 담겨있었다. 안젤로가 늘 누워있었던 침대 자리가 텅 비어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무너지는 듯했고, 안젤로의 짐을 정리해야 했을 때도 나는 그 앞에 주저앉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안젤로를 주님의 품에 안겨드리고 난 후, 나와 남편에게는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가 사라져버린 느낌이었다. 어둠 속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져 있는 듯했다. 어디를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었고, 그 어떤 것으로도 안젤로의 빈자리를 채울 수가 없었다. 스마트폰을 가득 채운 안젤로의 사진과 동영상은 다시 꺼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쩌다 사진을 볼 때면,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가슴 속의 멍은 더 짙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그저 아프기만 했던 시간 속에서도 나는 기도와 성경 쓰기를 놓지 않았다. 기도하면서 어지러운 내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고, 하느님께 도움을 청했다.

나와 남편은 오랜만에 안젤로와 함께 심었던 무화과나무를 보러 갔다. 처음 심었을 때 30㎝ 남짓한 크기로 푸릇푸릇한 나뭇잎을 두르고 있었던 무화과나무는 한겨울이 되어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은 상태였다. 차디찬 바람을 맞으며 홀로 서 있는 무화과나무가 너무도 안쓰러워 보였다. 이 나무가 따스한 바람이 불고 뜨거운 햇빛을 맞이하면, 꼭 다시 싱그러운 나뭇잎을 입기를 바랐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가슴 속에 허전함을 담고 있던 어느 날, 나와 남편은 천장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한 마디씩 주고받았다. 말수는 적었고, 침묵은 길었다. 허공에는 고요함만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다 내가 말했다. “우리?, 아기 낳을까?” 남편은 처음에는 흠칫 놀라더니, 이내 입가에 떠오르는 웃음을 못내 감추며 말했다. “안젤로한테 동생이 생기는 건가?” 그렇게 안젤로 동생에 대한 대화를 시작으로, 나와 남편 사이에 있던 무거운 빗장이 스르르 풀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깊은 동굴 속에 살던 우리에게 따스한 햇볕이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엔가, 남편의 꿈에 안젤로가 찾아왔다. 전 세계의 다양한 친구들과 함께 아빠를 찾아와서 인사를 하고 갔다. 그리고 평소 좋아하던 꽃게를 먹고 싶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우리 안젤로가 잘 지내고 있구나.’ 나는 다음날 아침, 꽃게를 다듬어서 꽃게탕을 끓이고, 평소에 안젤로가 좋아했던 어묵볶음과 갈치구이, 김자반과 함께 안젤로가 늘 쓰던 어린이집 식판에 밥을 차려서 안젤로의 사진 앞에 놓아주었다. 안젤로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고 그 음식을 하는 시간이 내겐 참 행복이었다.

두 달 후, 나는 성당에서 예비신자 교리 교육을 받으며 신자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슬픔에만 빠져있지 않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성경 필사를 하며 하느님 말씀을 가슴에 새기기 위해 노력했고, 교리 교육도 열심히 참석했다. 주체할 수 없는 슬픔과 불안함은 계속되었지만, 함께 교리 교육을 듣는 교우들과 성당에 오게 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를 해주기도 했다.

나와 대모님과의 인연은 안젤로의 장례식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대모님은 위태로워 보이는 나를 살뜰히 대해주셨고, 교리 교육 시간마다 늘 먼저 오셔서 인사해주셨다. 미사 시간에는 영성체를 하시고 내 옆에 앉으시고는 내 가슴 위에 손을 얹고 늘 눈물로 기도해주셨다.

6개월의 교리 시간은 정말로 나에게 복된 시간이었다. 단순히 교리를 배우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의 치유를 받고, 서로를 이해하며, 서로를 위하는 법을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언제나 위로의 눈빛을 보내주시는 신부님과 수녀님, 대모님의 따뜻함이 나를 치유해 주었고, 하느님 앞에서 기도하는 모든 순간이 나를 살게 해주었다.

세례식 날, 정말로 많은 분들이 축하해 주셨다.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날, 나는 세례를 받으며 하느님께 기도드렸다. “하느님, 저를 하느님의 자녀로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젤로의 인도로 제가 하느님께 왔습니다. 주님, 안젤로가 저희에게 준 사랑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게 하소서. 또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여서 그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나와 남편은 안젤로와 함께 심은 무화과나무를 다시 보러 갔다. 무화과나무를 보니 안젤로를 만난 것같이 반가웠다. 안젤로와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봄, 여름, 가을을 보낸 무화과나무는 놀라울 만큼 커져 있었다. 어느덧 키가 내 어깨만큼 자라있었고 널따란 잎도 무성했다. 그리고 주먹만 한 무화과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한 해 동안 이렇게나 건강하게 자라준 무화과나무가 너무나 기특했다. ‘참 잘 자라주었구나?.’ 무화과 열매는 안젤로가 우리에게 준 선물인 것 같았다. 나는 빨갛게 잘 익은 무화과를 한입 베어 물었다. 달큼한 맛과 싱그러운 향이 그리움과 함께 느껴졌다.

나는 9일 기도를 시작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직접 만든 5단 묵주를 손에 쥐고, 나는 안젤로의 평안과 새로운 생명을 청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하루하루를 기도로 쌓아갔다. 달력에 환희의 신비, 빛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를 순서대로 적어가며 매일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간절함과 감사함을 담아서 성모님께 함께 기도해주시기를 청했고, 하느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실 거라는 믿음으로 계속 기도했다. 기도하는 날이 쌓일수록 내 마음은 평안함을 되찾았고, 새로운 생명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54일간의 9일 기도를 마친 2025년 10월, 기적처럼 우리에게 새 생명이 찾아왔다. 나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새 생명에 대한 희망과 감사의 마음으로 기도해왔고, 이제 그 기도가 이루어졌다. 기쁜 소식을 알게 된 많은 분이 함께 기뻐해 주셨고, 또 기쁨의 눈물도 함께 흘렸다. ‘기쁨이’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길 바라면서 지금도 나는 계속 기도하고 있다.

나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안젤로와 함께했던 모든 시간들이다. 엄마로서의 나는 서툴렀지만, 안젤로는 늘 변함없는 사랑으로 나를 대해주었다. 안젤로가 나에게 준 사랑은 가슴 속에 그대로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안젤로가 이 땅에서의 시간을 다 보내고 일찍 하느님 나라로 갔을 때, 그 시간은 내게 너무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뿐이었다. 말씀을 묵상하며 아픈 마음을 다스리려 노력했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내기 위해서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

이제 나는 ‘기쁨이’를 만나는 날을 고대하며 기쁜 마음으로 매일 기도한다. 내가 어둠 속을 헤매고 있을 때, 나의 곁에서 희망을 놓지 않고 기도할 수 있도록 빛을 주신 하느님. 나는 오늘도 나를 희망의 길로 이끌어주시는 주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기도한다.

주님, 저희를 주님의 품으로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 아멘.

 

최유란 릴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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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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