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편과 나는 종종 우리의 노년을 화두로 삼는다. 나중에 우리는, 나중에 우리도. 우리는 그러지 말자, 우리도 그렇게 하자. 그런 이야기들을 나눈다. 물론 내 주변의 노년들이 주된 관찰의 대상이다. 그들에 대해 말하고, 그들을 보며 선망하기도, 외면하기도, 사실 마뜩하지 않아 하기도 한다. 어쨌든 잘 나이 드는 것이 힘든 일이라는 결론에 닿는다.
「두 늙은 여자」의 작가 벨마 월리스는 어느 날 겨울을 날 준비를 하다가 엄마에게 말한다. 자신도 엄마처럼 강인하게 늙고 싶다고. 여기서 말하는 강인함은 육체적인 면이 크다. 이를테면 땔감용 나무를 모으는 것, 겨울을 날 실질적인 준비를 몸으로 하는 것 등이다. 겨울용 오두막에서 엄마는 어느 강인했던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극한의 상황에서 극강의 강인함을 보여주었던 두 여자 이야기.
그것은 아주 오래전 이야기다. 야영을 하면서 사냥과 낚시로 한 부족이 먹고살았던, 사는 것이 곧 생존이었던 때. 어느 날 족장은 말한다. 상황이 안 좋으므로, 즉 먹을 것이 없으므로 다른 야영지로 떠나면서 두 늙은 여인을 버리고 가겠다고. 여인 중 한 명은 여든, 다른 한 명은 일흔다섯인데, 이제껏 두 여인은 젊은이들의 수발을 받아 왔다. 그런데 식량은 없고 야영지는 옮겨야 한다. 두 노인은 장차 짐이 될 테고 그래서 버리기로 한다. 구성원들은 마음이 괴롭지만 반기를 들지 못한다. 굶주림은 무섭고 공동체는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버려진 노인 둘은 참담하고 분노하는 와중에 두렵다. 하지만 그래도 해보기로 한다. 한번 나아가 보기로. 두 노인에게 북극의 추위는 매섭고 엄혹했다. 굶주리고 지치고 좌절하면서, 그들은 조금씩 과거의 경험과 기술을 기억해낸다. 지난날의 경험을 떠올려 최적의 야영지를 찾아내고, 손끝의 감각을 되살려 장갑과 모자와 신발을 만들고,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몸을 써서 사냥과 낚시를 한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살아남는다.
숲에서 풍요로운 겨울을 보내던 어느 날, 두 여인에게 부족원들이 찾아온다. 그들은 그간 늙은 두 여인을 버렸다는 죄책감에 괴로웠고 그 와중에 식량은 바닥나 굶주리고 지쳐 있었다. 하지만 살아남은 두 여인,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되레 부족원 모두를 살려낼 만큼의 저장 식량을 건네주는 그들을 보면서 젊은이들은 감탄하고 경이한다.
혹한의 추위 속에서 살아남은 두 여인은 자신들이 생각보다 건강하고 생각보다 실력이 건재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늙음을 과시했던 지난날을 부끄러워한다. 살아남은 두 여인을 본 부족원들은 두 여인이 생각보다 강인하고 생각보다 지혜로움을 깨닫는다. 그렇게 두 여인은 자신감과 자존감을, 부족원들은 나이 든 이들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한다.
관록과 지혜는 그저 나이가 들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일부러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연스럽게 생겨나지만 갈고 닦아야 비로소 빛난다. 두 여인이 자연과 야생 속에서 살아낸 80년, 75년은 차곡차곡 쌓여 그들 자신이 되었다. 그동안 젊은이들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잊고 있었을 뿐 그들에게는 관록과 지혜가 있었다. 그것을 잠재울지 발현시킬지는 각자의 몫이다. 두 늙은 여인은 부족과 다시 만난 이후에도 독립을 유지한다. 그들은 예전과는 다른 삶을 산다. 독립의 맛을 알았기 때문이다. 독립 성공 경험이라고 해야 할까. 독립과 강인함은 속성상 함께 존재한다.
“그거 모단대(못 한대)?” 1947년생 아빠는 내가 아는 79세 노인 중 가장 지혜롭다.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아빠는 이 말을 아주 자주 한다. “그걸 왜 못해? 할 수 있지”라는 말이다. 그 말을 너무 자주 들어서 그런지 나는 아빠에게 똑같은 말을 돌려준다. “할 수 있지? 한번 해 봐.” 그럼 아빠는 썩 훌륭하게, 그리고 근접하게 미션을 수행한다. 전자기기 사용에도 능숙한 아빠는 보청기의 블루투스 기능을 이용해 전화를 받고 스마트워치의 계산기 기능을 즐겨 사용한다.
부작용이 있다면 내가 팔십이 다 된 아빠를 과신해서, 내 또래 친구나 지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반응과 행동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왜냐하면 아빠의 세월이 아빠의 이미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청년기에도 중년기에도 늘 현명하고 용기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런 노년으로 나이 들었고 사는 내내 내 머릿속 아빠는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빠 같은 노년을 살겠다고 매일 다짐한다.
우리에게는 따라 살고 싶은 노년이 필요하다. 부와 계급 그런 것 말고 인성과 삶의 태도, 나이 들어가는 모습, 그런 것. 아주 작고 사소한 습관일수록 좋다. 어떤 좋은 것을 70년 80년 지속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 옆의 노년에게도 가장 으뜸인 어떤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런 역할 모델을 찾아야 한다. 모델이라 하기가 너무 거창하다면 역할 행동이라고 하면 어떨까. 그거 하나를 가져보자. 그거 하나를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