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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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한 삶을 넘어 안녕한 죽음까지 함께하는 공동체

[서민선 아녜스 작가의 노년을 읽습니다] 13. 다드래기 「안녕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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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제미나이 제작

“밤새 안 죽었냐?”는
단순하고도 거친 인사는
서로의 마지막을
고독 속에 방치하지 않겠다는
가장 절실한 돌봄의 언어


나는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질문을 한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단 하나 지키고 싶은 것, 내가 생각하는 나의 존엄이 있다면 그게 뭔가요? 생각해 보신 적 있으세요?” 의외로 대답이 바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이는 마시고 싶을 때 시원하게 맥주 한 잔 할 때까지만 살고 싶다고 했고, 어떤 이는 끝까지 내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것이라고 했고, 또 어떤 이는 기억을 놓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지키고 싶은 각자의 존엄이 있었다.

다드래기 작가의 책 「안녕 커뮤니티」는 공동체를 주제로 하는 만화다. 여기서 말하는 공동체는 취향 공동체·운명 공동체 그런 류가 아니다. 이것은 노인들의 안녕을 위한 공동체다. 이른바 노인들이 서로의 안녕을 확인하기 위한 공동 연락망이다. 재개발이 무산된 동네에는 70대 이상 노인들이 주로 산다. 어느 날 혼자 사는 노인이 세상을 떠난다. 이웃들은 “박 사장이 안 보이네, 안 보이네” 하면서도 몰랐다.

그런데 이상한 느낌에 문을 따고 들어가 보니 박 사장은 죽어 있었고, 시간도 꽤 흘러 냄새가 나고 있었다. 이웃이 죽은 것을 며칠 뒤에 알다니, 노인들은 놀라고 자책한다. 그래서 주인공 덕수씨는 서로의 안부를 서로가 확인할 것을 제안한다. 생존 확인을 위해 ‘안녕 연락망’을 만들고, 밤새 죽지 않고 살아 있는지 순번대로 확인 전화를 한다. 그렇게 생긴 것이 바로 ‘안녕 커뮤니티’다.

인원은 점점 많아지고 그들은 “밤새 안 죽었냐?”는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만화 속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다 조금씩 다르고 조금씩 약하다. 70대 초반 덕수씨 며느리는 필리핀 사람이고 손주들은 외모가 조금 눈에 띈다. 김밥집 사장은 아버지를 잃고 남편을 잃고 사위를 잃는다. 그리고 곧 어머니를 잃을 듯하다. 은퇴한 교장 부부는 황혼 별거에 들어가는데, 교장은 전형적인 가부장이고 아내는 그 희생양이었다. 부동산 사장은 평생의 연(緣)과 뒤늦게 행복하게 살다가 가려고 했는데 친구는 급작스레 병으로 떠난다. 부동산 사장과 연인은 둘 다 여성이다. 그리고 혼자 사는 늙고 약하고 가난한 노인들이 포함된다. 그들은 살기 위해 서로를 돕는다.

궁극적으로 그들이 원했던 존엄은 깔끔함이었다. 죽어도 깨끗하게 가고 싶은 작은 소망. 그것이 그들이 마지막으로 지키고 싶었던 존엄이었다. 내가 바라는 마지막과 다르지 않다. 그것을 실현해 줄 구체적 대안은 법도 제도도 아닌 공동체였다. 안녕 공동체.

돌아가신 내 할머니는 서울에서 아주 먼 지방 소도시, 시내에서 한참을 들어가는 작은 마을에 살았다. 작은 마을이어서 우체부는 마을 누구의 손주고 파출소 순경은 옆 동네 누구의 조카고 공공기관에 가도 은행에 가도 다 아는 얼굴들이 앉아 있는 곳. 할머니는 성정이 불같아서 말년에 꽤 자주 발작인지 쇼크인지 모를 신체적 위기를 겪곤 했다. 아마 본인의 화를 못 이겨 혈압이 치솟고 불안증이 신체화됐던 것 같다.

그날도 오랜만에 만난 자식들과 함께 있는데 과거 이야기를 하다가 쇼크가 오고야 말았다. 힘들었던 시절을 말하다가 인생 설움이 복받친 것이다. 곧 죽을 것 같은 어머니에 놀라서 자식들은 구급차를 불렀고, 가는 내내 안절부절못했다. 구십을 바라보는 노인이 숨이 꼴딱 넘어갈 것만 같았으니까. 그때, 구급대원이 말했다. “내비 두시오. 할 만큼 해야 끝나더라고. 이제 곧 괜찮아질 것이오.” 119 구급대원들은 할머니의 쇼크를 꽤 여러 번 본 것이다. 그들은 그때마다 어두운 시골 길을 달려 할머니에게 와주었고, 병원에 가는 동안 할머니의 넋두리인지 헛소리인지 모를 말들을 들어 주었다.

할머니가 한 번씩 그럴 때마다 병원에 다녀온 후 회생한 연유에는, 병의 치료뿐 아니라 구급대원들이 함께해 준 일련의 과정들 덕이 분명 있었을 테다. 바쁘고 힘든 구급대원들에게 내 할머니도 감당해야 하는 많은 소동 중의 하나였을 텐데. 도시에서 떨어진 외딴 지역, 구급대원도 경찰도 우체부도 늘 같은 인력이 드나드는 곳. 거기서 그들은 크고 느슨한 가족, 즉 마을 공동체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앞서 책에서 말한 안녕 공동체도 내 할머니를 지켜줬던 마을 공동체도 지향점은 하나다. 구성원들의 안녕한 삶을 지키는 것. 물론 안녕한 죽음도 포함해서. 그런데 공동체 중의 으뜸은 교회 공동체가 아니었던가. 돌아보면 교회는 항상, 뜻밖의 순간에 당연한 모습으로 나타나 내 인생에 든든한 공동체가 되어주었다. 그것은 가족과도 다르고 친구나 지인과도 달랐다.

언젠가 본당 사회복지분과장님과 나눴던 대화가 잊히지 않는다. “그분들은 모두, 젊은 시절 본당에서 활동에 열심이셨던 분들이에요. 우리가 지켜드려야 해요.” 우리는 사회복지분과에서 돌보고 챙기는 노인분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초고령사회가 왔다. 이제 교회는 구성원의 삶을 넘어 안녕한 죽음을 위해서도 더욱 고민의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교회 공동체의 존엄한 삶을 넘어 안녕한 죽음을 위해 여러 사목 분야 중에서 사회복지를 최우선 과제로 삼을 때가 온 것 같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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