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대상의 공동체나 장소를 부르는
이름은 이미 변화한 지 오래다.
이제 노인 개인의 차원으로 내려가
노인을 부르는 호칭 변화도 필요하다.
노인 당사자끼리의 호칭도 포함된다.
내 남편은 늦둥이고 위로 누나가 다섯, 형이 하나다. 그래서 남편에게 형제자매란 동기간이라기보다는 부모의 연장선이다. 지난겨울 큰누나와 식당에 갔을 때 직원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할머니, 이쪽으로 오세요.” 세상에, 누나에게 할머니라고 하다니. 남편은 너무 놀랐다고 한다. 한데 큰 시누이의 나이는 올해 일흔이다.
일흔이 된 여성에게 할머니 말고 어떤 다른 호칭이 있을까. 작은 시골 마을에서 지역 주민을 상대로 하는 식당이니 고객님이라는 단어는 분위기에 맞지 않고, 그렇다고 손님이라고 하는 건 너무 정이 없어 보이고, 아줌마는 좀 예의 없어 보일 듯하다. 과연 어떤 단어가 적당할까. 노인 당사자는 어떤 호칭으로 불리기를 바랄까.
책 「사람이 늙는다는 것」을 쓴 구사카베 요 작가는 의료인이며 노인 당사자다. 작가는 들어가는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제 예순여덟 살로, 노인 중에는 ‘신참’이라고 할 수 있다.” 노년·노화에 대해 쓴 책의 저자가 노인 당사자라고 하니 독서를 시작하기도 전에 믿음이 간다. 뭔가 내용이 진실되고 섣부르지 않을 것 같다.
의료인으로서 작가는 사람이 늙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고 듣고 관찰하고 공부한다. 그리고 노화·치매·암·임종 등을 차근차근 담담하게 쓴다. 저자는 ‘더 이상 노인을 공경하지 않는 세대’가 왔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예전에는 ‘원로’ 혹은 ‘어르신’ 등 존경받는 노인을 뜻하는 단어들이 있었지만, 현재 일본에서는 이런 말을 거의 쓰지 않는다. 왜 존경받는 노인이 줄어들었을까?” 나도 요즘 같은 맥락에서 노인을 가리키는 몇몇 표현들에 불편한 마음을 갖던 중이었다. 노인을 낮추는 표현이 의외로 많아서다.
나는 대학에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다 보면 실생활에서 노인을 부르는 호칭이 얼마나 옛날에 머물러있는지를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노친네’, ‘노인네’, ‘늙은이’, ‘할망구’ 등이다. 이러한 어휘들은 현실 언어에서 종종 사용되는데, 백번 양보해 친근감을 담은 사용이라 치더라도 어감이 유쾌하지 않다.
지난겨울 본당 로비에서 노인 대학의 작품 전시회가 있었다. 나는 캘리그라피와 그림, 수제 묵주 등의 작품을 둘러보다가 자매님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는데, 나이 지긋하신 한 자매님이 감탄 섞인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어머나. 이게 다 노인네들이 만든 거야? 정말 그래? 너무 예쁘네, 진짜.” 그분들은 경이와 칭찬을 담아 작품을 감상하고 감탄하는 중이었지만, 반복되는 호칭은 마음에 걸렸다. 어느새 ‘노인네’라는 단어는 노인 당사자들이 겸손과 자조를 담아 사용하는 단어가 되어버린 것이다. 드라마에서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할망구 또는 늙은이라고 부르는 것은 일상생활의 반영이었다.
구사카베 요 작가는 존경받는 노인이 줄어든 이유 중 하나가 노화라고 설명한다. 노인이 되면 신체가 노화해 기억력이 쇠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고 자제하는 능력도 약해진다고. 그러니 나이가 들면 젊었을 때와 달리 화를 자주 내고 불평이 잦아지게 마련이라고. 즉 본인의 노력과 의지만으로는 안 되는 성격적 변화가 생기고 그로 인해 젊은 층이 노인을 멀리하고 나아가 공경하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옛날에는 대부분 그 정도 나이에 사망했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인격자가 된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보다 20년 정도 더 살기 때문에 노인들이 몸과 마음이 쇠약해진 모습을 보이면서 젊은 세대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여기서 말하는 ‘그 정도 나이’란 70세 전후다. 저자의 말대로 평균 수명이 늘었으니 노인으로서 사는 시기가 길어지고 몸과 마음이 쇠약한 채로 사는 시기도 당연히 길어진다.
글은 길어진 노년, 존경받는 존재가 되려면 노인 당사자가 스스로 부단히 가꾸고 버리고 애써 노력해야 한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러한 이해와 해석, 변론은 저자가 노인 당사자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할머니가 왜 그러시는지, 내 엄마와 아빠가 왜 점점 달라져만 가는지 이유를 모르지 않았다. 그분들이 달라진 원인의 대부분은 노화였다.
작가의 해석은 매우 맞는 말이다. 신체 노화에 성정의 변화가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다. 뇌는 신체 일부이기 때문이다. 알고 있는 사실이어도 그것에 대한 과학적 해석은 확실히 남다르게 인식된다. 그런데 호칭은 습관이고 언어 습관은 변한다. 한국인 다섯 명 중 한 명이 65세 이상인 시대다. 내 옆에 다섯 사람이 있다면 그중 하나는 노인이다. 시니어 단원, 시니어 커뮤니티, 어르신 쉼터 등 노인 대상의 공동체나 장소를 부르는 이름은 이미 변화한 지 오래다. 이제 노인 개인의 차원으로 내려가 노인을 부르는 호칭의 변화도 필요하다. 거기에는 노인 당사자끼리의 호칭도 포함된다. 삶은 내 곁의 사람들과 관계의 총합인데, 호칭은 결국 관계에 임하는 태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노인이 많아진 시대, 그런 고민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