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면 의례처럼 새해 결심을 하고 봄이 오면 냉장고를 청소하게 된다. 냉동실을 정리하다 한쪽에 잘 쟁여져 있는 매생이 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환경운동을 하는 스님이 2월에 보내주신 것이다.
스님은 깨끗한 바다를 지키는 일과 그 바다에서 나는 것을 먹는 일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온몸으로 사시는 분이다. 오랫동안 장흥에서 활동하시면서 활동가들이 채식으로 산다는 게 힘든 일임을 누구보다 몸소 체험하신 분이다. 지금은 유명한 스님들이 사찰음식을 많이 알리고 있지만, 그보다 오래전에 서구에 사찰음식으로 한식을 알리는 일에도 앞장선 스님이시다. 내가 채식을 하면서 다양한 기후운동과 현장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시고 응원의 마음으로 보내주셨다.
스님이 살고 계신 장흥군 대덕읍 신리 내저마을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매생이를 생산한 매생이의 원조 마을이다. 도로명으로 ‘매생이길’을 쓸 정도로 매생이 사랑이 대단하다. 내저마을 매생이는 ‘갯벌 찰매생이’로 인근 지역에서 생산되는 ‘물매생이’와 차이가 있다.
깨끗한 바다에서 여러 번 씻어 한 봉지씩 먹을 수 있도록 포장도 깔끔하게 보내준다. 매생이를 꺼내 물을 받아 진공 포장한 채로 물속에 퐁당 담가두었다. 그러면 30분 만에 해동된다. 괜히 봄맞이 청소한다고 문도 활짝 열고 움직였더니 찬 기운이 몸 안에 돌아 뜨끈한 매생잇국을 끓여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삼달다방’에서 보내준 무도 있고 표고버섯도 사두어 국 끓일 재료가 충분했다.
무는 제주 삼달다방에서 왔다. 삼달다방은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에 있는,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는 문턱 없는 공간이다. 삼달다방은 문화동·무지개동·이음동 세 공간을 중심으로 지어졌다. 무지개동과 이음동은 숙소로 사용되어 오가는 사람들과 활동가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동은 어느 날은 공연장으로, 매일 어울려 밥을 나누는 식당으로, 누구든 환대하는 커피 향 가득한 카페로 존재한다. 이곳을 지키는 삼달지기는 ‘무심’과 ‘오케이’다. 오랫동안 서울에서 장애 인권운동을 해온 ‘오케이’는 은퇴 후 남편 ‘무심’이 먼저 내려가 자리 잡은 제주 삼달다방으로 가 지금은 삼달지기로 사람들과 다시 만나고 있다.
문화동 뒤쪽에는 커다란 밭이 있다. 가을이면 밭을 갈아 무와 배추·양배추·브로콜리를 심는다. 겨우내 키워 김치를 담그고 마지막 무가 뽑힌 자리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흙 놀이터가 된다. 봄부터 가을까지 이곳은 모두를 위한 흙 놀이터가 되어 사람들을 춤추고 노래하게 한다. 화산토에서 자란 제주 무가 원래 맛있지만, 특히 삼달의 무는 단단하고 단맛이 깊고 시원하다. 최고의 재료들이 모였으니 맛있는 매생잇국이 탄생하겠다.
매생이 하면 다들 굴을 떠올리지만 무와 표고버섯을 넣으면 바다 향이 더 깊고 풍성한 매생잇국이 탄생한다. 냄비에 들기름을 두르고 무와 표고버섯을 볶으니 맛있는 향이 부엌을 가득 채운다. 겨울 제철 청정 해조류인 매생이는 저칼로리·고단백·고철분·고칼슘 식품이다. 칼슘은 우유의 5배, 철분은 우유의 40배에 달하고, 숙취 해소로 알려진 아스파라긴산은 콩나물보다 3배 많다. 알긴산은 콜레스테롤 억제와 장 건강에 도움을 준다. 오염에 극히 민감해 깨끗한 바다에서만 자라는 대표적 무공해 식품이다.
국이 다 끓어 한 그릇 떠서 맛보니 향긋한 바다 내음과 표고버섯의 쫄깃한 식감, 무의 달큼하고 시원한 맛이 어우러져 마치 바다가 내게 준 선물 같은 맛이다. 매생잇국을 먹다 오래전부터 채식하시는 양평 프란치스코 수도원의 신부님이 생각났다. 육식을 줄이는 일이 피조물과 함께 사는 일이라 믿으시는 분. 오늘 한 냄비 끓인 매생잇국을 신부님께 보내기 위해 그릇에 담았다. 오늘 국은 환경을 생각하는 스님의 마음,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삼달다방의 마음을 담아 피조물을 아끼는 신부님께 보내졌다.
레시피
재료 (4인분 기준)
매생이 100g, 무 150g, 표고버섯 8개, 들기름 2큰술, 국간장 1큰술, 소금 약간, 다시마 물 1000㎖, 참기름 1작은술.
사전 준비
1. 표고버섯은 젖은 행주를 이용해서 잘 닦아준다.
2. 매생이는 찬물을 가득 담은 볼에 넣고, 손으로 가볍게 풀어서 1~2회 헹군 뒤 체에 옮긴다.
3. 무는 씻어서 작게 깍둑썰기한다.
4. 표고버섯은 4 등분 한다.
5. 다시마 2조각을 물 1000㎖에 냉침한다.
조리 순서
1. 냄비에 무, 표고버섯을 넣고 들기름은 둘러 약불에서 볶아준다.(1분)
2. 물 100㎖를 넣고 무와 표고버섯을 볶아 맛있는 국물 맛을 뽑아준다.(1분)
3. 다시마 물, 간장 1큰술을 넣고 불은 강불로 올린다. 매생이에 염분이 있으므로 이 단계에서 과하게 간을 맞추지 않는다.(맛보며 간 조절)
4. 무가 다 익고 국물이 충분히 우러나면 불을 중약불로 줄이고, 손질한 매생이를 넣는다. 젓가락이나 나무 주걱으로 살살 풀어주며 매생이가 고르게 퍼지도록 한다. 1~2분 이내로 매생이 색이 선명한 초록을 유지할 때 불을 끈다. 오래 끓이면 색이 탁해지고 향이 날아간다.
5. 불을 끄고 참기름 1작은술을 넣어 향을 더한다. 국물 맛을 보고 부족한 간은 소금으로 맞춘다.
요리 팁
매생이에는 자체 염분이 있다. 처음부터 간을 세게 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매생이는 먹기 직전에 넣는 것이 가장 좋다. 미리 끓여두면 색이 변하고, 향도 약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