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대 북경교구장 구베아 주교가 포교성성 장관 안토넬리 추기경에게 보낸 1790년 10월 6일자 서한.
“조선에 사제가 들어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1791년 진산사건, 곧 신해박해 이후 초기 조선 가톨릭 신앙공동체는 많은 변화를 보였다. 내부로는 조상 제사 금지 조치로 양반 출신 교우들이 많이 교회를 떠났다. 그들은 가톨릭교회 가르침이 유교를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진산사건 이후 둘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외부로는 가톨릭 신앙을 배척하던 이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할 명분을 얻게 됐다. 그들은 제사를 폐하고 조상의 신주를 불태운 진산사건을 통해 가톨릭을 ‘아버지도 모르고 임금도 모르는 비인륜 종교’로 인식하게 됐다.
이때 ‘성직자 영입 운동’이 추진됐다. 윤유일(바오로)·최인길(마티아)·지황(사바)·강완숙(골룸바)·유항검(아우구스티노) 등이 주도했다. 성직자 영입 운동은 제5대 북경교구장 알렉산더 구베아(Alexander de Gouvea, 1751~1808) 주교가 조선 교회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사제가 조선으로 들어갈 방법을 하루빨리 찾아야만 합니다. 아울러 아무리 노력해도 그 길을 찾을 수 없다면 적어도 젊고 총명하고 열심한 교우 몇 사람을 선발해 이곳 북경으로 보내도 좋습니다. 그들을 이곳 신학교에서 장차 성직자로 양성하는 방법도 있습니다”라고 요청해 시작됐다.(1790년 구베아 주교가 조선 신자들에게 보낸 사목 서간 중에서)
윤유일 통해 파악한 조선 교회 상황 보고
구베아 주교는 1790년 조선 교회 밀사인 윤유일을 북경 남당에서 2번이나 만나 그가 가져온 평신도 지도자들의 편지와 보고를 통해 조선의 신앙공동체에 대해 누구보다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게 됐다. 그는 윤유일을 통해 조선 교회에 성직자 파견을 약속했다. 그리고 교황청 포교성성(현 복음화부) 장관 레오나르도 안토넬리 추기경과 후임 자친토 시기스문도 제르디르 추기경에게 서한을 보내 선교사 없이 조선에 복음이 전래된 내용과 현 조선 교회 상황을 보고하고, 조선 교회의 발전을 위해 책임자를 임명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구베아 주교가 1790년 10월 6일 자로 안토넬리 추기경에게 보낸 2통의 서한은 윤유일이 북경에 있을 때 작성한 것이다. 그리고 제르디르 추기경에게 보낸 1통의 서한은 1792년 4월 비오 6세 교황으로부터 북경교구 관할이 아닌 개인으로 조선 선교지의 보호와 지도를 맡게 된 후 조선 밀사 황심(토마스)이 전해준 조선 교회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1797년 8월 15일에 작성한 것이다.
구베아 주교가 포교성성 장관에게 전한 서한
이번 호에는 초기 조선 교회 평신도 지도자들이 전개한 성직자 영입 운동의 배경을 폭넓게 이해하기 위해 조선 교회와 관련해 구베아 주교가 포교성성 장관에게 보낸 3통의 서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했다. 이 내용은 한국교회사연구소 「교회사 연구」 제8집(1992년)에 실린 우리말 번역본을 인용했다.
“올해(1790년) 교우들이 협의한 후 유능한 신입교우 한 사람을 편지와 함께 비밀리에 북경으로 파견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편지를 검토하고 사목 서한을 작성해 반드시 믿고 실천해야 할 교리와 사제가 없을 때의 신앙생활과 그 방법을 간단히 요약해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늘 하느님께 감사하고 사제를 영입할 방안을 마련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윤 바오로가 8월 북경에 다시 왔습니다. 그는 선교사를 보내줄 것을 간곡히 청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교사 1명을 파견할 것을 약속하고, 그 시기와 장소, 방법과 그밖에 일들에 관해 합의했습니다. 저는 미사경본과 성작, 성사 집전에 필요한 성물들을 준 다음 이듬해 3월에 중국 만주와 조선 사이의 정해진 장소로 와서 성직자를 맞이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저는 조선에 파견할 선교사로 요안 도스 레메디오스 신부를 임명했습니다. 그는 마카오교구 사제로 북경에서 저에게 교육을 받고 4년 전부터 성무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새 선교지 조선에 책임자나 대리자를 두어 선교사를 파견하는 일을 지도하고 관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 입국은 북경을 거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북경에는 포교성성 소속 선교단, 프랑스 선교단, 포르투갈 선교단 등 세 선교단이 있습니다. 아마 성성에서는 이 셋 중 한 선교단에서 조선 선교지의 관리를 위임하게 될 것입니다.
포교성성 선교단이 맡으면 본 교구의 평화를 위해 두려워할 바가 없을 것입니다. 포르투갈 선교단에 대해서는 새 선교지에 대한 리스본 당국의 의도를 모르므로 본인으로서는 조선 선교지를 맡아주도록 청할 수도 없고 거절할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만일 프랑스 선교단에 위임한다면 그때는 특히 성교회에 손해를 끼치게 되고, 또 포르투갈 당국의 항의로 인해 북경교구의 평화가 장기간 사라지게 되지 않을까 크게 두렵습니다. 조선은 북경교구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인접해 있다는 이유 외에는 본인의 관할과 도무지 상관이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청에서 임명하는 선교단에 기꺼이 조선을 맡기겠습니다.
조선에 그리스도교를 보호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선교사와 교우들이 제의한 방법 중에서 무엇보다도 다음 것이 가장 좋아 보입니다. 곧 포르투갈의 여왕에게 수학과 의술의 지식을 갖춘 선교사들이 수행하는 한 사절을 조선 왕에게 파견해 조선의 수도에 이르러 여왕의 이름으로 임금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와 우호조약을 맺도록 간청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