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종과 환경에 따라 생장 속도와 발육 과정이 각기 다른 대나무들은 공통으로 ‘하늘(sky)을 향해’ 솟아오른다. 세월의 경과를 반영하는 마디는 높이 솟는 대나무를 안정적으로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나그네살이”(1베드 1,17) 인생에도 과업을 수행한 후에 생성되는 마디가 있다. 과제를 자기 주도로 완수한 후에 성공 여부를 떠나 진행 과정을 성찰하는 이는 능력보다 ‘행운’(능력 밖)이 큰 영역을 차지했음을 감지한다. 이 반추는 인생의 마디를 구축하여 견실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주기를 하루에 적용하면, 평범한 일과 중에 자신에게 부여된 행운에 대한 자각이 ‘하루살이’(잠언 27,1 참조) 인생의 마디다.
복음서의 부활 보도는 두 양식으로 구성된다. 순차적으로 열거하면, 하나는 ‘빈 무덤’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 발현’이다. 간접적 표징으로 해석되는 빈 무덤 보도에는 천사가 예수님의 부활을 통보한다.(마태 28,6-7 참조) 직접적 체험으로 묘사되는 발현 보도에는 부활한 예수님이 몸소 제자들 앞에 등장한다. 그런데 이들은 스승을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마리아야!”(요한 20,16)라는 음성을 들음으로써, 제자들은 수난의 상처를 봄으로써(요한 20,20 참조) 스승의 부활을 인지했다. 마르코 복음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예수님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16,12) 스승은 공생활 중에 ‘다른 모습’의 전망을 미리 언급하였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두 제자는 스승의 십자가형이 선고·집행된 도성 예루살렘을 떠나 근거리의 마을 엠마오로 향했다. 이들은 여정 중에 만난 낯선 이와 대화하고 숙소에서 식사하였다.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린 다음 떼어 나누어 준’(루카 24,30 참조) 낯선 이를 통해 제자들은 스승의 ‘죽음 전 언행’을 기억하였다. 이는 과거에 대한 회상을 넘어서 스승의 ‘죽음 후 현존’을 깨닫게 하였다.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32) 이 체험은 신앙 고백으로 정립된다.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사도 2,32) “눈이 가리어”(루카 24,16) 스승이 패배한 현장 예루살렘을 벗어나던 두 제자는 스승을 다시 만난 후에 “눈이 열려”(루카 24,31)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고 제자단에 합류했다.
스승과의 만남은 두 제자에게 ‘신앙의 마디’를 선사하였다. 제자들의 부활 체험은 육안으로 다른 모습이지만 일관된 언행과 동일한 상처를 지닌 스승과의 재회였다. 이는 과거로의 회귀 본능이나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유발한 환각이 아닌 일상에서 성사된 실제 만남이었다. 예수님의 지상 생활은 죽음으로 종료되었지만, 예수님의 구원 업적은 “세상 끝날까지”(마태 28,20) 지속된다는 신앙이 부활로 자리 잡은 신앙의 마디를 통해 확고해졌다. 이 마디는 패배(죽음)를 승리(영광)로 전환한 스승을 ‘하느님으로 고백하고 찬미하는’(알렐루야) 동력이 되었다. 파스카 신비는 구원 역사의 마지막 마디이며, 이 마디를 토대로 설립된 교회(에페 2,20 참조)가 ‘하늘(heaven)을 향해’ 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