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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을 그냥 흘려보내기 아쉬워서

[서효인 시인의 특별하고 평범하게] (17) 가족과 떠난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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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평창으로 가족 여행을 갔다. 주말마다 일이 있어 봄나들이 엄두를 못 내다가 이러다 좋은 날씨는 다 지나버릴 것 같아 큰맘 먹고 숙소를 예약해 두었다. 일은 여전히 쌓여 있었다. 몸과 마음이 분주해 계절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그사이 먼 나라의 전쟁으로 기름값이 올라 그 또한 부담이었다. 숙소 취소 시 물어야 하는 위약금이 아니었으면 역시 집에 주저앉아 소파에서 TV를 보며 시간을 축냈을 것이다.

오랜만에 나서니 좋기는 좋았다. 대관령 근처 숙소에 가기 전 강릉 바닷가에 잠시 들렀다. 시원한 파도 앞에서 사진을 찍고 모래 위를 걸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해변의 횟집에 들러 점심을 해결했는데 썩 맛이 좋지는 않았다. 그마저 우리가 관광지에 온 증거처럼 느껴졌다. 관대한 기분은 계산을 치르면서 다소 희미해졌지만, 놀러 온 흥취마저 깨트릴 정도는 아니었다. 유명 카페에 들러 아내와 나는 커피를, 아이들은 에이드를 마셨다. 사람들은 저마다 봄날이었다. 날씨가 그들을 돕고 있었다.

평창 농협에 들러 간단히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둘째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카트에 맥주를 담아 조금 민망했다. 물론 카트에서 맥주를 도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야구를 틀어놓고 바비큐를 먹었다. 아이가 종알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어쩐 일로 야구를 이겼다. 어쩐 일로 아이들도 별 탈 없이 일찌거니 잠들었다. 새삼 올봄도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싶었다. 때마침 벚꽃도 거지반 떨어져 나무들이 제법 푸릇해졌다.

이틀째에는 월정사에 갔다. 월정사는 두 번째 방문이다. 지난해 가을 단풍철에 갔는데 조금 과장해 사람이 단풍보다 많았다. 사람이 입은 등산복도 단풍만큼 화려했다.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안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아몬드나 땅콩 따위를 가져와 다람쥐를 꼬드겼다. 우리는 먹이를 받지 못한 다람쥐 가족처럼 쓸쓸하게 주차장으로 돌아갔다.

그런 기억에도 불구하고 다시 방문했는데, 그날 근처 식당에서 먹은 산채 정식이 훌륭하기도 했고, 아침 일찍 나서면 사정이 낫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과연 고즈넉한 월정사와 전나무숲 길은 더욱 좋았다. 몇몇 다람쥐가 먹이를 주지 않을까 싶었는지 우리 가족에게 다가왔지만, 우리는 줄 게 없었다. 주차장 초입에서 산 뻥튀기는 우리의 몫이었다.

절은 곧 있을 초파일을 준비 중인 듯했다. 5000원을 내면 쪽지에 발원문을 적어 한편에 걸 수 있었다. 물론 내가 불교 신자도 아니거니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이지만 우리는 기분을 내보기로 했다. 첫째가 어서 말 좀 하게 해달라고 적으련다고 하니, 둘째가 펄쩍 뛴다. “말은 어차피 곧 할 텐데 무슨?” 아, 첫째를 믿지 못하는 건 나뿐이었나. “그럼 뭘 쓸 건데?” 둘째가 당당하게 답한다. “아빠 하는 일 잘되게 해주세요.” 아?. 둘째가 믿지 못하는 것도 오직 나였던 것이었다. 우리는 결국 발원 대신 소원을 비는 사람들 옆에서 각자 속으로 기도하기로 했다. 나는 우리 가족의 건강을 빌었다. 종교가 통합되는 작은 현장이었다.

서효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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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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