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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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자란 노년이 나의 노년, 나의 노인상은 무엇인가

[서민선 아녜스 작가의 노년을 읽습니다] 17. 안드레아 칼라일 「나는 언제나 늙기를 기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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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기는 도착하는 곳이 아니라
다층적이고 복잡한 곳…

보고 자란 노년이 내 노년이 되며
내면의 아이만큼이나
내면의 노인은 우리 노년에 영향을 끼친다



돌아가신 시어머니께서는 신세 한탄이 없는 분이셨다. 한 번도 ‘내가 이 나이에’라든지 ‘내 팔자에’라든지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었다. 그랬던 분이 마지막 1~2년은 같은 한탄을 반복하셨다. 바로 “남에게 못할 짓 안 하고 착하게 산 것 같은데, 왜 제때 죽지 못하고 이렇게 아파야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말이었다. ‘착하게 살았는데 왜?’라는 지점도 그렇지만 나는 어머니가 말한 ‘제때’란 언제일까, 그것에 대한 생각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그리고 왜 그런 생각을 하셨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렇게 연결할 수 있었다. 요양병원에 들어가시고 나서 어머니는 새로 입원하는 환자의 나이가 몇 살인지, 중증 환자 병동으로 옮겨진 환자는 몇 살이었는지, 어제 그리고 지난달에 떠난 환자는 어머니보다 위로 몇 살이 많고 아래로 몇 살이 적었는지 그런 것들을 유심히 살피셨다. 그리고 그걸 나에게 상세히 전하셨다. 남들은 잘도 죽는데 왜 나는 제때 죽지도 못하는지 모르겠다고 신세 한탄을 하신 것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른들이 하는 말씀 중 이런 말이 있다. 노인이 하는 ‘빨리 죽어야지’ 또는 ‘얼른 죽고 싶다’라는 말은 완전한 거짓말이라고. 어릴 때 나는 그 말을 당연하게 믿었다. ‘죽고 싶다니 말도 안 되는 그런 말이 어디 있을까? 그러니 그 말은 거짓말일 수밖에 없지’ 그렇게 생각했다. 과연 내 어머니의 바람은, 너무 오래 살지 말고 제때 죽고 싶다는 말은, 진실이었을까 거짓이었을까.

책 「나는 언제나 늙기를 기다려왔다」의 저자 안드레아 칼라일은 이런 말을 한다. “우리가 모든 면에서, 또 대부분의 방식으로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수명을 연장할 방법을 찾는 게 좋은 생각처럼 보일 수 있지만 모든 노인이 점점 더 많아지는 시간을 반기는 건 아니다.” 작가는 여든을 앞두고 있으며 100세까지 산 어머니를 7년간 간병했다. 그러니 이것은 노년의 최후의 최후를 본 자의 말이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말은 진심이었나? 그런데 책을 더 읽다 보니 이번에는 작가가 이렇게 말한다. “지구에 좀 더 오래 머물고 싶다”라고. 그럼 어머니의 말은 거짓이었나?

저자는 나의 의문에 대한 답을 하듯 이렇게 말한다. “노년기는 치과 진료실처럼 우리가 도착하는 곳이 아니라, 다층적이고 복잡한 곳이다.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는 데다가 할 말도 느끼는 것도 많고,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역시 산더미 같다.” 나는 저자의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말았다. 이제 나는 노년의 누군가가 적당한 때에 죽고 싶다고 말한다면 그것이 진심임을 의심 없이 믿을 것이다. 그리고 그 주장이 진실임을 거들기 위한 수십 가지의 근거는 거뜬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어머니의 말이 진심이기도 진심이 아니기도 했던 것을 나는 이제야 이해한다.

저자는 고통이 노년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고, 90에도 구글링이 즐겁다고 말하며, 노년기는 일견 성장과 극복의 측면에서 청소년기와 동일한 부분이 있음을 합리적으로 파헤친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도 나는 나이며 ‘내면의 아이’ 못지 않게 ‘내면의 노인’ 즉 우리 안의 노인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심리적 위기를 겪을 때마다 근본적 원인으로 내면의 아이를 짚는다. 그리고 그 아이는 과거에 오랜 기간 상처를 받았고 그것이 치유되지 못해 성인이 되어서까지 내내 영향을 끼친다고 믿는다. 그러니 내면의 아이를 돌보는 것으로 현재의 아픔을 치유하고자 한다. 저자가 말하는 ‘내면의 노인’이란 이제껏 살아오면서 내가 만들어내고 내가 이해한 노인의 모습이다. 노년에 대한 자화상이라고 할까. 작가의 말대로 내면의 아이만큼이나 내면의 노인은 우리의 노년에 영향을 끼친다.

어릴 때부터 그리고 조금씩 늙어가면서 우리는 나의 노년이 어떨까, 노화는 어떻게 진행되며 종래에 나는 어떤 모습일까 예측한다. 그것은 거의 정형화되어 있어 긍정적인 상상이라기보다는 정해진 어떤 것에 대한 예상이다. 그리고 노년기의 나는 어때야 한다, 어떠면 안 된다, 그런 생각을 한다. 알다시피 살면서 어떤 것을 보고 듣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다수가 갖는 노년에 대한 선입견·편견·고정관념들이 노인이라는 캐릭터를 완성한다.

보고 자란 노년이 내 노년이 된다. 이것은 개인의 노력이 미치지 않는 영역이다. 그런데 세상이 노년을 어떻게 그리는가는 어마어마한 영향력이 있다. 그러니 우리는 노년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많이 말해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 지금보다 좋은 노인상(像)이 완성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세대가 함께해야 하며, 그 과정에는 염려와 숙고가 함께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께 모두의 노년이 좋은 노년이 되도록 애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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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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