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철학에서 자기 돌봄은
단순한 관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는 철학적 실천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잘 돌봐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치유를 위한 ‘자기 돌봄’은 철학상담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주제이다. 오늘날 돌봄은 매우 다양한 영역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는 개념이다. 마이어로트(1925~)는 돌봄을 타인의 성장과 자아실현을 돕는 ‘자기 확장’의 행위로 규정함으로써 돌봄이 타인뿐 아니라 자기를 포함하는 포괄적 행위임을 강조한다.
영어 ‘care’의 번역어인 우리말 ‘돌봄’은 어원적으로 라틴어 ‘cura’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 단어는 걱정·근심의 ‘마음의 부담’과 배려·보호의 ‘마음 씀’의 뜻을 지니고 있다. 돌봄은 역사적으로 ‘영혼의 돌봄’의 형태로서 ‘자기 수행’의 철학적 의미와 ‘타인의 영혼 구제’의 종교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소크라테스(기원전 470년경~399)의 자기 수행으로서의 ‘자신을 돌봄’은 자기 성찰과 수행을 통한 영혼의 돌봄을 의미하며, 이는 ‘자기 자신을 아는 것’과 직결된다. 소크라테스는 자기 돌봄의 전제 조건으로서 자기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반면, 종교적 의미의 돌봄은 영혼의 치유에 무게를 둔다. 죄와 악, 영적 메마름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돌보는 것은 곧 영혼의 치유와 구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중세 때 이러한 영적 돌봄은 가난한 자·병자·고아·과부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구제적 돌봄 행위로 확장되어 오늘날의 ‘건강 돌봄’과 ‘사회적 돌봄’의 기원이 된다.
실존철학의 관점에서 돌봄은 인간이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존재’로서 드러나는 근원적 ‘자기 관련성’으로 이해될 수 있다. 키르케고르(1813~1855)에 의하면 인간은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관계’로서 자기의 궁극적 근원, 즉 신과의 관계 속에서만 비로소 참된 자기가 성립한다. 인간은 일상에서 이러한 자기 관계를 올바르게 맺지 못한 채 살아가지만, 불안 속에서 자기의 본래적 가능성이 드러나며, 자기 자신이 문제로서 드러난다. 절망은 이러한 자기 관계가 어긋난 상태, 즉 자기를 정립한 근거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가 자기를 올바르게 정립하지 못한 실존의 파열을 의미한다.
하이데거(1889~1976)에게 ‘돌봄’(염려, Sorge)은 현존재의 존재 구조를 이루는 실존론적·존재론적 근본 현상이다. 현존재는 ‘세계-내-존재’로서 자기 가능성에로 선취적으로 열려 있으며, 이 구조 전체가 염려로 규정된다. 염려는 현존재가 자기 가능성에로 앞서 나아가면서 이미 세계 속에 던져져 있고, 그 세계 안에서 만나는 존재자들과 관계하는 통일적 구조로서 피투성·기투·퇴락을 포괄하며, 세계 내부 존재자와의 관계에서는 ‘배려’, 타자와의 공존에서는 ‘심려’로 구체화된다. 일상적 현존재는 비본래성에 머물지만, 불안과 죽음을 향한 존재를 통해 본래적 존재 방식에로 이행할 가능성이 열린다.
푸코(1926~1984)는 자기 돌봄에서 진리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주체의 변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보며, 이를 ‘영성’이라 부른다. 여기서 영성은 주체가 진리에 접근하기 위해 자신을 변형하고 정련하는 실천의 총체를 의미한다. 그는 이러한 자기 돌봄의 고대 기술로서 ‘담론의 축적 및 재배치를 통한 자기 형성 기술’, ‘위험을 수반하는 진실 말하기’, ‘내면적 사유 훈련’, ‘실천적 행위 훈련’을 계보학적으로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