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은 삶의 태도로서
고유한 자기 세계관과 연결되며
자기와 타자 간의 긴밀한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내적 자세
오늘날 우리는 사회 전반에 걸쳐 ‘진정성’이 의심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정치는 국민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진심을 호소하지만, 그 뒤에는 권력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위선과 거짓이 숨겨져 있다. 정의 역시 정치적 도구화가 되어 정의라는 이름 뒤에 집단적 이익과 배타성이 자리 잡으면서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부추긴다. 아무리 좋은 말도 진정성이 결여되었다면 들리지 않으며, 오히려 마음에 상처를 준다.
진정성(authenticity)은 고대 그리스어 ‘아우텐테스’(α?θ?ντης)에서 유래한다. 이 단어는 ‘자기 자신’을 뜻하는 ‘아우토스’(α?τ?ς)와 관련되어 이해되며, 일반적으로 ‘자기 손으로 행하는 자’ 혹은 ‘행위의 근원에 있는 자’를 의미한다. 오늘날 진정성을 언급할 때 중요한 요소는 거짓됨이 없는 마음과 그것이 진리에 입각한 것인지가 관건이다. 진정성은 계보학적으로 보면 주체의 권위를 최고의 지위로 끌어올려 기존 질서에 얽매임 없이 개인의 정체성을 정립하려는 근대 휴머니즘 기획 아래 형성된 개념이다. 진정성은 우선 내 삶의 태도로서 고유한 자기 세계관과 연결되며, 그 안에서 자기와 타자와의 긴밀한 관계를 맺는 내적 태도를 의미한다. 즉 우리는 사람들과 올바른 관계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모든 면에서 진정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실존철학은 ‘자기 됨’과 관련하여 진정성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룬다. 특히 하이데거의 용어인 ‘본래성’(Eigentlichkeit)이 영미권에서 진정성으로 번역되면서, 진정성은 종종 자기 존재의 고유한 가능성과 관련된 현존재의 한 존재 방식으로 이해되곤 한다. 물론 이러한 이해는 원래의 존재론적 의미를 부분적으로 변형한 것이다. 이에 반해 아도르노는 이러한 사유를 비판하며, 진정성 담론이 존재론적 깊이를 가장하지만 실제로는 공허한 언어 형식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곧 진정성은 사회적 매개 구조를 은폐하고, 이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이데올로기적 언어 형식으로 기능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포터는 현대 사회에서 진정성이 모호한 개념 중 하나가 되었으며, 그것의 추구 역시 사회적으로 구성된 허상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즉 진정성이라는 이상은 오히려 위선과 연출을 수반하며, 소비문화 속에서 하나의 가치 코드로 기능한다. 이러한 논의에 따르면 진정성은 문화산업의 상품 코드로 작동할 뿐 아니라, 비판적으로 해체되어야 할 허위의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진정성과 관련하여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은 여전히 삶의 핵심 과제이다. 삶의 진정성을 상실할 때 우리는 행위의 방향을 상실하기 쉽고, 그 결과 삶의 의욕과 의미 역시 약화된다. 진정성의 결여는 곧 ‘마음의 병리’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의 정직한 대면이 요구된다. 노딩스는 참된 자기에 이르는 길을 ‘관계 속의 자기’(the self-in-relation)에서 찾는다. 오늘날 진정성의 왜곡은 타자와의 관계를 배제하는 데서 발생한다. 관계의 결여 속에서는 결코 진정한 자기를 발견할 수 없다. 자기는 돌봄의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며, 진정성 역시 타자에 대한 돌봄의 실천 속에서 드러난다. 따라서 위선과 거짓, 자기 이익으로 덧씌워진 오늘날의 왜곡된 진정성은 결국 타자를 진심으로 돌보지 않는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하겠다.
※지난 1년 5개월 동안 연재해주신 필자와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