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7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가위바위보가 서툰 중학생과 노는 법

[서효인 시인의 특별하고 평범하게] (19) 어린이날을 앞두고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둘째는 올해가 마지막 어린이날이다. 아, 물론 어린이날은 앞으로도 해마다 다시 오겠지만, 어린이로서 어린이날은 마지막이란 말이다. 당장 중학생이 되면 어린이날 선물은 주지 않아도 되겠지 싶다. 나들이에 대한 압박도 끝이다. 내년부터는 우리 부부도 어린이날로부터 해방이다. 야호!

하지만 사실 영 말끔한 기분은 아니다. 모종의 섭섭함도 있다. 내 아이가 이제 더는 어린이가 아니라니. 아직 이렇게 어리기만 한데. 더 크면 자기 삶을 찾아 훨훨 날아가겠지, 생각하면 안쓰럽고 불안하다. 그날을 조금 미루고 싶다. 아니, 하염없이 보류하고 싶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마지막 어린이날을 꽤 벼르고 있는 듯하다. 왠지 두렵다.

그런 어린이날을 며칠 앞두고 아이는 고모와 고모부를 만나 게임 프로그램을 하나 얻어내는 성과를 냈다. 동생 집에 모여 한 끼를 나눠 먹고 산책 겸 나간 쇼핑몰이 문제였다. 아이가 좋아하는 게임 회사의 팝업 스토어가 하필 그날 문을 연 것이다. 아이는 원하는 걸 대놓고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요령 있게 선물을 얻어낸 후 뛸 듯이 기뻐했다. 어린이라고 하기엔 능숙하고, 성인이라 하기엔 천진한 것이 과연 마지막 어린이날을 보내는 어린이가 틀림없었다.

아이는 게임을 좋아한다. 게임 삼매경인 아이를 보면 내 어릴 적이 떠오른다. 나도 같은 회사의 게임기를 온갖 감언이설로 얻어내, 엄마에게 혼나기 직전까지 즐겼다. 지금 아이와 딱 같은 나이였을 것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나도 좋아했다. 한 판만 더해야지 마음먹고서는 멈추지 못하고 또 하고는 했다. 이왕 하는 김에 끝까지 가고 싶었다. 다음 스테이지는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었다. 옛적 내 모습을 생각하면 아이가 다소 오래 게임을 하는 것 같을 때도 아이를 말리거나 혼낼 마음이 딱히 생기지 않는다. 저맘때는 저러려니 하는, 느슨한 생각에 젖는다. 게다가 ‘곧 어린이날이잖아. 게임도 새로 샀고. 어린이가 순수하게 기뻐하는 시간을 그냥 두어도 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둘째가 이토록 열심히 하는 게임 화면을 가만 쳐다보는 이가 있으니 바로 첫째다. 첫째는 올해 중학교에 입학함으로써 발달장애 어린이가 아닌, 발달장애 청소년이 되었다. 둘째에게 괜한 사례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이번 어린이날에 첫째에겐 선물을 주지 않았다. 게다가 첫째는 이상하게 물욕도 없어서, 무슨 선물에도 시큰둥하긴 했다. 첫째는 둘째의 게임 화면을 마치 제가 하는 양 집중해서 본다. 화려하고 예쁜 화면이니 그럴 만하다. 그런데 직접 하지는 못한다. 발달장애 청소년이 할 수 있는 게임이 있을까? 아직 찾지 못했다. 인지 문제도 있고 소근육 문제도 있을 것이다. 게임은커녕 가위바위보도 잘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이럴 때 어린이와 어린이 아님을 본질적으로 넘어선 차이를 느낀다.

나는 첫째에게 말을 건다. ‘무엇을 좋아해?’ ‘우리 놀이할까?’ 아이가 더는 어린이가 아닐 때까지 나는 아이와 할 만한 게임을 개발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이는 내게 시간을 더 주는 듯하다. 아직 아이에 머문 상태로, 나와 함께할 놀이를 찾아내라고, 시간은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건 닌텐도도 아니고 모바일 게임도 아니고 부루마블도 아닌데?. 아직 모르겠다. 더 찾아봐야겠다.

서효인 시인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05-06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5. 7

마태 10장 22절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