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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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밥상] 겨울 이겨낸 쪽파와 시간 머금은 묵은 김의 만남

<20> 쪽파김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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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화요일, 밭으로 가는 날이다. 어제 급한 회의가 있어 파주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하룻밤 묵고 왔다. 아침에 일어나 부지런히 ‘팀화요’ 밭으로 갔다. 멀리 제주에서 다정이 오는 날이다. 다정은 서울에서 하던 일을 정리하고 제주로 일을 찾아 떠난 팀화요의 오랜 막내였다. 최근 더 젊은 친구들이 오면서 드디어 막내를 벗어났다.

다정은 요즘 제주에서 수확이 한창인 고사리를 꺾어 장아찌를 만들어온다고 한다. 새벽 비행기와 지하철을 타고 고사리 장아찌를 들고 밭으로 온다. 다정과 양수역에서 만나 함께 밭으로 이동했다. 오늘은 공동 옥수수밭 김매기로 작업이 시작되었다. 손이 여럿인 게 무섭다더니 그 넓은 옥수수밭의 풀이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할머니들이 말씀하셨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풀이 자라기 전에 미리 흙을 긁어준다고. 드디어 우리가 그 어려운 풀이 올라오기 전에 흙을 긁어준 것이다.

아직은 봄이었지만 낮의 햇살은 이미 여름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때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시원하고 부드러운 바람이었다. 할머니는 이런 바람은 친정엄마가 보내주는 바람이라 하셨다. 딸이 밭일하다 힘들까 봐 한 번씩 이렇게 바람을 보내 쉬게 해준다셨다. 할머니의 그 말이 기억나 우리 모두 뭉클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이제 1주기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옥수수밭 풀을 매고 난 후 공동 호박밭 만들기에 들어갔다. 애호박과 청호박의 모종을 받았지만 심으려면 우선 풀을 매야 한다. 우리는 호미와 낫을 들고 풀과 다시 씨름하기 시작했다. 풀을 모두 거둬내고 모종이 들어갈 구멍을 파고 물을 부었다. 뿌리와 흙 사이에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잘 다독여야 한다. 그래야 물을 줘도 뿌리가 흔들리지 않고 흙에 잘 활착한다.

호박을 심고 허리를 펴는데 옆에 있던 쪽파가 눈에 들어왔다. 겨울을 난 쪽파다. 눈이 오고 서리가 내리고 땅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는 동안 그 아래서 버텨온 쪽파는 단맛이 강하다. 이제 더는 밭에 두면 노랗게 돼버리니 캤다. 흙 묻은 뿌리를 털어내며 한 줌 한 줌 모으다 보니 제법 수북해졌다.

집에 돌아와 쪽파를 다듬으면서 선물로 받아두었던 곱창 김이 생각났다. 처음 받았을 때 너무 귀해서 선뜻 꺼내지 못하고 아껴두었던 것인데, 금방 먹지 않아 결국 묵은 김이 되었다. 쪽파를 보니 지금이 그 김을 먹어야 할 때임을 알았다.

쪽파는 봄을 알리는 채소다. 파 중에서도 가장 가늘고 여리지만, 그 속에 담긴 영양분은 절대 적지 않다. 비타민C가 풍부해 겨우내 지친 몸의 면역력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되고, 칼슘과 철분도 들어 있어 채식하는 사람에게 더없이 반가운 채소다. 겨울을 버텨낸 쪽파는 당도도 더 높아진다. 추위 속에서 얼지 않으려 스스로 당분을 끌어 모으기 때문이다. 그래서 겨울을 난 쪽파는 향이 깊고 단맛이 남다르다.

김은 바다에서 자란 채소다. 육지의 채소가 흙에서 미네랄을 끌어올리듯, 김은 바닷물에서 온갖 무기질을 머금는다. 칼슘·철분·아이오딘·마그네슘 등 채식인이 챙기기 어려운 영양소들이 김 한 장에 고루 담겨 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짚고 싶은 것이 비타민B12다. 비타민B12는 신경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적혈구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데, 자연 상태에서는 동물성 식품에만 거의 들어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서양의 채식인에게 B12 결핍이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지만, 김과 미역·다시마 같은 바다 채소를 먹어온 한국의 채식인에게는 결핍이 덜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쪽파는 그대로 먹어도 맛이 좋지만 이렇게 김과 함께 무쳐먹으면 궁합이 좋아 더 맛있다.

쪽파 김무침은 만드는 법이 단순하다. 양념도 많이 필요하지 않다. 간장·들기름·참깨면 충분하다. 간장이 짭조름한 감칠맛을 잡아주고, 들기름이 고소하고 구수한 향을 더하고, 참깨가 마지막에 톡톡 씹히는 재미를 준다. 간장 둘에 들기름 하나·참깨 하나. 이 비율을 기억해두면 요긴하다.

무친 뒤 바로 먹는 것이 가장 좋다. 시간이 지날수록 김이 쪽파의 수분을 먹어 바삭함이 사라진다. 이 무침은 만든 즉시 밥상에 올려야 한다. 쪽파의 알싸함과 묵은 김의 감칠맛이 밥과 어우러지는 순간, 봄이 입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겨울을 버텨낸 쪽파와 시간을 기다린 묵은 김. 둘 다 기다림이 만들어낸 맛이다. 서두르지 않고 제시간을 살아낸 것들이 만나면 이렇게 된다. 단순하고 깊고 향긋하다.
 

 

 

 

 


레시피 - 쪽파 김무침


재료 : 쪽파 한 줌, 곱창 김(묵은 김) 4~5장, 간장 2큰술, 들기름 1큰술, 참깨 1큰술


사전 준비

1. 쪽파는 뿌리와 시든 겉잎을 정리하고 깨끗이 씻어 채반에 건져둔다.

2. 곱창 김은 구운 후 손으로 잘게 부수어 둔다. 가위로 자르면 단면이 매끈해지는데, 손으로 부수면 결이 살아서 양념이 더 잘 배고 먹을 때 입 안에서 감기는 느낌이 다르다.



조리 순서

1. 물기를 뺀 쪽파를 4~5㎝ 길이로 썬다. 물을 끓여 쪽파는 데쳐준다.

2. 데친 쪽파는 찬물에 헹군 후 물기를 꼭 짠다.

3. 준비해둔 양념장을 쪽파에 넣고 살살 버무린다.

4. 부숴 둔 김을 넣고 한 번 더 가볍게 섞는다. 김은 맨 마지막에 넣어야 한다.

5. 접시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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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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