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증후군 발달장애 아이를 낳은 후 누구나 그러하듯 이런 일이 내게 벌어지리라 생각조차 못 했으므로 황망하고 두려웠다. 주변에 알려줄 사람도 없었다. 인터넷의 정보는 무엇이 믿을 만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도움이 절실했지만 어디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몰랐다.
각종 복지 혜택을 신청하기 위해 떼야 할 서류가 한둘이 아니었다. 아이 수술 후 보험금을 청구하느라 또 진을 뺐다. 30대 초반, 아이를 낳고서야 어른이 되어가는 듯했다. 이런 식으로 어른이 될지는 몰라 당황했다. 아빠는 처음인데, 심지어 장애아동의 보호자는 생각지도 못한 처음이었으니까. 하나 어떤 아이를 맞이한다더라도 부모 됨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처음이 아니겠나. 그 사실이 지금까지도 묘한 위로가 된다.
그러고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근래에 출생률이 조금 늘었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실제 주변 친구들이 아이를 낳았거나 가졌다. 최근 겨우 짬을 내 만난 친구는 다니는 회사에서 최초로 장기 육아휴직을 낸 남성이 되었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두어 달 뒤에 가족끼리 자그맣게 돌잔치를 할 거란 계획을 말하는데, 나는 조카의 돌 선물로 뭐가 좋을까 떠올리다가 그맘때 밤잠을 설치며 육아하던 아내와 나의 그 시절을 자연스럽게 연상하고 말았다.
“한창 힘들 때지. 동시에 너무나 예쁠 때다. 내 아이는 이제 중학생인데 네 아이는 이제 한 살이로구나.” 나는 힘든 숙제를 미리 마친 학생처럼 뿌듯하고 개운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친구는 한시가 급하다는 듯 맥주를 들이켰다. 오늘의 외출이 끝나면 다시 전담 육아가 시작되니, 조급히 구는 것도 이해되었다.
더 며칠 전에는 일하는 자리에서 오랜만에 후배를 만났다. 시를 쓰면서 팟캐스트 제작도 하는 후배는 대기실에 찾아와 웃으며 인사했다. 반가워 안부를 나누는데 손목으로 자꾸 허리춤을 받치는 게 눈에 보였다. 두 달 있으면 산달이란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 축하를 건넸다. 후배는 아이를 낳고 일하고 글 쓰고 할 게 걱정이라고 했다. “잘할 수 있을까요? 잘 되겠죠?” “그럼! 무엇이든 다 되고말고. 시간 지나고 보면 결국 다 해내고 있더라.”
힘든 일은 전혀 없고 오로지 기쁜 일만 생기면 좋겠지만, 그럴리가 있겠는가. 후배의 생에 엄마는 처음일 텐데. 그러나 힘들고 기쁜 일의 반복과 섞임 속에서 우리 삶은 어디로든 나아간다. 그렇게 어느 방향이든 나아간 이후 돌아보면, 이만큼 와있는 게 늘 놀랍다. 후배와 곧 태어날 후배의 아이도 그러할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 또한 오늘도 처음을 수행 중이다. 초콜릿과 사탕은 싫어하나 구운 김에 싸먹는 흰 쌀밥을 사랑하는 발달장애 청소년의 학부모 노릇은 처음이다. 미술학원을 열심히 다니며 친구들에게 만화 캐릭터를 그려주는 걸 낙으로 삼는 6학년의 아빠 됨도 처음이다. 이 처음이 예전의 처음보다 쉬운 것도 아니다. 이차성징과 사춘기가 동시에 오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나는 이 게임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이 모든 처음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된다는 데 이상한 위로를 얻는다. 이 모든 처음을 겪을 동료들을 응원한다. 물론 나를 포함하여.
서효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