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편이다. 내가 어릴 적에는 그런 아이더러 착한 아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첫째는 착한 아이인 걸까? 자는 걸로만 따지자면 결론적으로는 아니다. 녀석은 불침번을 서는 군인처럼 늦은 밤이나 새벽에 비척비척 일어나 침실이든 소파든 어디든 간다. 주로 엄마에게 가고 상황이 여의치 아니하면 아빠인 나를 찾는다. 그저 옆에 와서 조용히 자면 좋으련만 자신을 돌아보라며 고개를 휙 돌리고 볼에 뽀뽀를 퍼붓는다. 엄마에게는 최대한 품에 안기려 한다. 나에게 와서는 턱수염을 손등으로 쓰다듬는다. 언제까지 그러느냐고? 본인이 다시 잠들 때까지 한다.
그사이 우리 부부 중 하나는 어쩔 수 없이 잠에서 깨어난다. 눈을 비비며 일어나 머리맡의 스마트폰을 켜 시간을 확인하면 새벽 3시, 아니면 4시다. 다시 잠들면 좋겠으나 쉽지 않다. 그대로 눈뜬 채 아침을 맞이해 출근하고는 한다. 그런 날은 당연히 컨디션이 최악이다. 그러고 종일 하품하며 중얼거리는 것이다. ‘아이고, 이 녀석 잠버릇을 어떻게든 고쳐야지 원.’
그저 다음 날의 피로 때문에 아이의 습관을 문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새벽마다 자다 일어나 부모를 찾는 행동은 느린 발달 때문일 수도 있다는 전문가의 말을 어느 육아 프로그램에서 들었다. 그때부터 아이의 행동은 그저 엄마 아빠가 좋아해서 하는 어리광이 아닌, 문제 행동이 되어버렸다. 예전에는 자다가 아이가 오면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다시 재우면 그만이었는데, 지금은 오늘 밤에도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는 사실에 조금 실망하고 만다. 그래서 다시 잠들기가 더 어려워진 걸지도 모르겠다. 아이 걱정은 오던 잠을 쫓아내니까. 자식 생각은 눈꺼풀마저 이겨내고는 하니까.
어젯밤에도 첫째가 침실에 나타났다. 이제 몸 자체도 한 사람 몫을 충분히 하기에 두 명이 자야 할 침대가 세 명으로 가득 찼다. 나는 침대 모서리까지 밀려나 두 손을 배꼽에 모은 채 아이가 내 턱수염에 손등을 문대며 사각사각 소리를 내길 내심 기다린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문제 행동이라면 문제 행동이겠지만, 이게 어디서 무슨 문제를 어떻게 일으키는 행동이지? 아이가 아니라도 나는 종종 새벽에 깨어나 쓸데없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 잠 못 들곤 한다. 어릴 적에는 일찍 자라는 엄마 말씀을 어기고 밤새 무협지를 읽고, 라디오를 듣곤 했다. 그러다 아침이면 눈을 못 떠 가까스로 학교에 가서는 1교시부터 꾸벅꾸벅 졸았다. 자, 그렇다면 문제 행동은 누가 일으키는 거지?
물론 새벽마다 일어나 엄마·아빠를 찾는 게 저 나이에 맞는 행동은 아니겠지. 아이는 다운증후군 청소년답게 나잇대보다 어리게 산다. 아빠 무릎에 앉는 걸 좋아하고, 동요를 따라 부르며 아직도 아침에 ‘TV 유치원 하나둘셋’을 본다. 거기에는 특별히 문제를 느끼지 않았다. 그 행동이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생각할수록 어쩐지 나의 문제 행동, 아니 문제 마음이 드러나는 것만 같다.
서효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