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치하 박해 시기 순교자들 가운데 4쌍의 동정 부부가 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유중철(요한)·이순이(루갈다) 부부와 최필제(베드로) 부부, 1819년 기묘박해 때 순교한 조숙(베드로)·권천례(데레사) 부부,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배문호(베드로) 부부다. 유중철·이순이는 4년을, 조숙·권천례는 15년을 동정 부부로 살았다.
더불어 병인박해 순교자 황석두(루카) 성인은 세례를 받은 후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에게 금욕과 절제를 위해 아내와 별거할 것을 허락받고 이후로 정결을 지키며 독신생활을 했다.
이처럼 보편 교회사 안에서도 드물 정도로 100년 가까운 박해 시기에 4쌍의 동정 부부가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기 위해 정결의 덕을 지키겠다(마태 19,6-29 참조)는 젊은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느님 섬기고자 동정 생활 갈망한 젊은이들
무엇보다 이들 젊은이는 정결을 예찬한 「칠극」과 성인전(聖人傳) 「성년광익」을 통해 정결(동정)이 하느님의 선물이요 특별한 은총이며,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로 주님을 위한 온전한 자기 봉헌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많은 젊은이가 사제와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부터 동정 생활을 동경하고, 정결을 실천했다.
젊은이들의 이러한 신심과 선한 영향은 가족과 집안으로 전파됐다. 그 증거가 이종사촌인 이순이와 권천례다. 최양업 신부와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편지에도 동정 생활을 하는 조선 교회 젊은이들이 남녀 불문하고 적지 않다고 보고했다.
“신자 중에 더욱 치열하게 불타는 열성을 가진 많은 처녀가 하느님을 더욱 순수하고 더욱 열렬하게 섬기고 싶어서 평생토록 동정을 지킬 작정을 하는 사례가 흔히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의 법률과 풍속은 이 천사적인 정결의 덕행을 위하여 변호나 보호를 해주는 피난처가 전혀 되지 못합니다. 조선 백성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결혼하여 자식을 낳지 아니하는) 동정 생활을 불효로 매도합니다. 모든 이가 정결을 지키는 삶을 순전히 기만하는 위선에 불과한 것으로 야유합니다. (?) 그래서 동정 생활을 찬양하는 설교자인 우리 사제들이 오히려 어쩔 수 없이 결혼을 권유하거나 강제로 명령하는 자가 되어야 할 지경입니다.”(최양업 신부가 1850년 10월 1일 도앙골에서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
호남 지역 신앙 발상지에서 동정 부부로 서약
전북 완주군 이서면의 초남이 성지는 ‘호남의 사도’ 유항검(아우구스티노)의 생가와 교리당이 있는 성지다. 유항검은 신유박해 때 부인 신희, 동생 유관검 부부, 큰아들 유중철·이순이 부부, 작은아들 유문석(요한), 조카 유중성(마태오), 노비 김천애(안드레아)와 함께 순교했고, 초남이 집은 파가저택(죄인의 집을 헐어 없애고 집터는 웅덩이로 만들어 집안을 완전히 파멸시키는 형벌)이 됐다.
호남 지역 가톨릭 신앙공동체가 처음으로 시작된 이곳은 한국 교회 첫 번째 동정 부부인 복자 유중철·이순이 부부가 동정 서원을 하고 혼례를 한 곳이다. 또 복자 주문모 신부가 처음 전라도 공동체를 방문한 곳이다.
유중철(1779~1801)은 16세가 되던 1795년 자신의 집을 방문한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성사를 받았다. 이때 유중철은 “동정 생활을 하겠다”고 주 신부와 아버지 유항검에게 밝혔다. 사목 방문으로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온 주 신부는 이순이에게서 “동정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그러자 주 신부는 염두에 두고 있던 유중철과 이순이의 혼인을 주선했고, 1797년 10월 둘은 부모 앞에서 일생을 오누이처럼 살겠다며 동정 서약을 했다. 이후 유중철은 동정 서약을 어길 마음이 생길 때마다 이순이와 함께 기도와 묵상으로 이겨냈고, 함께 순교의 길로 나가자고 서로 격려했다.
복자 한정흠(스타니슬라오)은 유중철의 사람됨에 대해 “성실하고 솔직한 신심, 굳은 신앙과 열렬한 애덕을 갖추고 본분에 충실하며 올바른 생활을 하여 세속의 모든 허영을 업신여겼으므로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무게가 있고 점잖은 어른 대접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이순이(1782~1802)의 아버지 이윤하(마태오)는 성호 이익의 외손이다. 1802년에 순교한 이경도(가롤로)와 1827년에 순교한 이경언(바오로)이 오빠들이다. 어머니 권 씨는 권철신(암브로시오)과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여동생이다. 이종사촌으로 자신처럼 동정 부부로 살던 권천례는 권일신의 딸이며, 복자 권상문(세바스티아노)의 동생이다.
이순이는 1793년 아버지가 죽은 후 어머니와 함께 신앙에만 몰두했다. 1795년 주문모 신부에게 첫 영성체를 한 그는 주님을 위해 동정 생활을 결심했다.
‘천국에서의 재회’ 약속하며 순교
유중철은 1801년 봄, 이순이와 다른 가족은 그해 9월 중순 체포됐다. 1801년 11월 14일(음력 10월 9일) 22세 나이로 교수형으로 순교한 유중철은 ‘누이’라고 부르던 아내 이순이에게 “나는 누이를 격려하고 위로합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라는 유언의 쪽지를 남겼다.
이순이는 처음 함경도 유배형을 받았으나 “법에 따라 처형해 줄 것”을 요청했고, 결국 사형 판결을 받아 1802년 1월 31일(음력 1801년 12월 28일) 20살 나이로 다른 가족들과 함께 전주 숲정이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