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특수학교 학부모 모임에서 친한 언니 A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아파트 맨 꼭대기 층에서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모양인데, 가정집 공사치고는 오가는 자재며, 소음이며 하는 것들이 유난하고 크더라는 것이다. 공시 기간도 길고 하여 망치 소리, 톱 소리 요란한 며칠을 보내자 괜한 짜증이 밀려왔다고.
지은 지 20년도 채 되지 않는 집인데 저렇게 공사를 할 일인가? 하는 참견의 마음도 누군가 들었을 것이다. 물론 새로 이사 오는 집도 염치는 있어 공사 전에 집마다 동의서를 받고, 엘리베이터에 읍소하는 글을 써 붙여두었으며, 아랫집 윗집 옆집에는 간단한 먹을거리도 건넸다. 그런 사소한 정성이 이웃들의 참을성을 다소 키워주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오기 전에 공사는 끝났다. 시끄러웠던 공사도 이제는 기억나지 않고, 세상은 주식이며 전쟁이며 기름값이며 선거며 복잡하게 돌아갔다. 그러다 엘리베이터에서 낯선 이웃을 만났다. 중년 여성과 전동 휠체어를 탄 어린이. 엄마와 딸인 걸까? 그녀는 밝은 표정으로 A씨 부부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휠체어에 탄 어린이도 마찬가지로 “안녕하세요” 먼저 말을 걸었다. 엘리베이터는 마지막 층 번호가 눌러진 채였다. 그들은 새로 이사 온 꼭대기 층 이웃이었다. 유난하고 시끄러운 공사를 했던 곳. 꾹꾹 눌러 쓴 손 글씨 메모를 게시판에 붙여놓은 이. 나에게 끼치는 불편을 제외하고는 관심을 주지 않았던 그저 어떤 사람들.
그들은 휠체어 장애인의 생활에 맞게 집을 바꿔야 했을 것이다. 복도에 난간을 설치하고, 싱크대나 식탁 같은 가구도 높이를 조금 낮추어야 한다. 욕실 바닥을 부드러운 소재로 바꾸고, 집 안에서 낙상 사고가 날 수 있는 거의 모든 가능성을 미리 방지해야 했을 것이다. A는 이런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공사 기간이 길었고, 그래서 드나드는 자재가 더 많아 보였고, 그래서 조금 더 시끄러웠을지도 모른다고, 그제야 그런 생각이 들어 조금은 부끄러웠다고. 이웃은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 빠르게 말을 이었다. “공사하느라 시끄러웠을 텐데, 죄송합니다.” 사과의 상대는 손사래 치며 아니라고 말하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이야기는 조금 더 이어진다. A의 남편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현관문을 밀며 말하기를 “어머니가 참 밝으시더라, 웃으며 인사하시는 걸 보니”하는 것이다. A는 괜히 쏘아붙였다. “저렇게 웃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렸겠어? 나도 엘리베이터든 어디서든 아이랑 같이 있는데 사람들 만나면 괜히 밝게 웃게 되더라니까. 애가 또 문제 행동으로 사람들 놀라게 할지도 모르고?.” 남편은 조금 샐쭉해져 말했다. “왜 예민해. 무슨 일이라도 있어?” A도 본인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잘 모르겠단다.
우리에게는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각자 무슨 사정이 있어서 웃고 울고, 무표정인 걸까. 우리는 각자에게 사정이 있고, 그에 대해 대체로 이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나의 사정은 복잡하고 어쩔 수 없는 일. 남의 사정은 단순하고 왜 저렇게 하는지 모를 일. 이웃의 밝게 웃는 얼굴, 그 반대의 얼굴 혹은 아무것도 아닌 얼굴 뒤의 사정을 헤아려본다. 몹시 어려운 일이 될 테지만, 시도라도 해보자는 것이다.
서효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