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성경을 읽었을 때 제일 먼저 들었던 의문은 성경 속에 100세를 훌쩍 넘는 인물이 더러 있다는 것이었다. 옛날에는 평균 수명이 더 낮았을 것 같은데 이상했다. 심지어 100세 넘은 나이에 출산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린 나는 성경에서 그것이 가장 궁금했다.
칼럼을 쓰기 위해 책을 고르던 어느 날, 성경 속 노인들을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에서 다루는 노년은 어떤 모습이고 성경이 노년에게 주는 지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러다 서명옥 작가의 「나이듦의 영성」을 알게 되었다. 딱 내가 찾던 책, 성경 속 인물들의 나이 듦을 다루고 있었다. 영성의 완성에 이르는 길에서 나이란 무엇인지,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러한 맥락에서 책에는 성경 속 스무 명의 인물이 나온다. 나는 이야기책을 읽는 기분으로 흥미롭게 책을 읽었다.
아브라함은 175년, 야곱은 147년, 모세는 120년을 살았다. 창세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수명은 이에 비하면 더욱 압도적으로 길다. 여기서 오랫동안 살았고 늦게 죽었다는 것은 핵심이 아니다.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영성의 완성에 인간의 나이 듦이 깊이 관계한다는 진리다. 모세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나이가 80세였고 토빗이 실명에 이른 나이가 62세였다. 하느님의 역사에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나이 듦은 바로 목적성이 확실한 여정이다.
나는 야곱과 요셉 이야기에 특히 관심이 갔는데, 먼저 야곱을 보자. 저자는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개울을 몇 번 건넌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야곱이 몇 번의 개울을 건넌 끝에 다른 이들을 축복하는 존재로 인생을 마무리하게 된 것에 집중한다. 개울을 많이 건널수록 타인을 축복할 품이 넓어진다는 것, 그것은 진리다. 그런데 축복이란 것도 해봐야 가능하다. 내 아이가 올해 고3이 되었다. 그런데 아이를 위한 기도를 드릴 때면 나는 망연해진다. 어떤 기도를 드리고 어떤 지향을 해야 할까. 좋은 대학에 가게 해달라고, 아니면 마음 관리를 잘하게 해달라고? 그것도 안 맞는 것 같고 그저 건강하게 해달라고 해야 할까. 아이를 향한 기도는 늘 그렇듯 조심스럽다. 무엇이 진정 아이를 위하는 기도인지 자신이 없어서다. 그래서 결국 “제 아들 프란치스코를 위해 기도합니다”라는 선택을 한다.
다른 누군가를 위한 기도, 특히 타인을 향한 축복을 청함에 있어서는 숙고가 앞서야 한다. 무엇보다 축복이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는데 그것의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는 본인의 인생 전체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야곱이 몇 번의 개울을 건너고 나서야 타인에 대한 축복을 할 수 있는 존재로 생을 마감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완벽한 결말이다.
다음으로 성경 속 화해의 아이콘 요셉 이야기다. 요셉은 중년의 나이에 본인을 시기 질투했던 형들을 살릴 수 있는 권력을 갖는다. 그리고 요셉의 힘으로 형들을 고향에 돌려보내고 가족과 화해한다. 청년에서 중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요셉은 형들을 용서하며 깨닫는다. “초년기 나의 고생, 외롭고 험했던 나의 청년기는 모두 다 이를 위함이었구나. 하느님께서 이를 역사하셨구나.”
나는 요즘 불화에 대해 생각한다. 특히 가족과의 불화. 가족과 불화한 채로 생을 마감하는 많은 가족을 본다. 어느 한쪽의 잘못인 경우도, 함께 잘못한 경우도,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닌 경우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이유의 우위에 힘과 지혜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참이다. 작가도 책 속에서 “화해, 그것은 진정 힘 있는 사람, ‘어른’이 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제 노년이 되었다면 먼저 안아주고 먼저 용서하여 관계든 사람이든 정리해 보자”고 덧붙인다.
나는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을, 그리고 ‘형만 한 아우 없다’는 말을 믿는다. 거기에 하나 더 보태 ‘나이는 못 속인다’는 말도 역시 믿는다. 한데 나는 이 속담을 좋은 쪽으로 해석한다. 나이 든 사람의 품이 어린 사람보다 당연히 크다는 뜻으로. 나아가 언젠가 내 아이가 사전에서 ‘나이는 못 속인다’는 속담의 뜻을 찾았을 때 이렇게 나왔으면 한다. ‘옛날에는 나이가 쌓이면 겉으로 드러난다는 뜻으로 쓰였는데 시간이 흐르며 그 뜻이 변했습니다. 요즘은 나이 든 사람의 이해심과 관록은 더 어린 사람의 그것보다 훨씬 높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그래서 나는 인심 좋은 곳간이 되기 위해 돈을 많이 벌고 싶고, 미래의 속담 사전이 바뀔 수 있게 이해심 많고 품이 넓은 노인이 되고 싶다.
작가는 ‘노인은 젊은이의 미래’라는 표현을 썼다.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라는 표현은 많이 들어봤지만 ‘노인은 젊은이의 미래’라는 표현은 매우 낯설다. 밝고 희망차서다. 우리가 흔히 갖는 노인의 이미지에 반한다. 하지만 영성의 관점에서 본 성경 속 나이 듦은 그게 가능하다. 종종 잊지만 우리가 다 아는 성경 속 이야기들은 귀한 메시지를 무궁무진하게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