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다니는 학교는 봄이면 운동장에서 운동회를 하고 지금 같은 초여름이면 물놀이를 진행한다. 늦은 출근길이면 괜히 아이 학교 앞을 지나 회사에 간다. 담장 넘어 아이들 함성이라도 들어보려고. 담벼락의 나무 사이로 우리 아이들 뛰노는 모습이 보일까 싶어서. 오늘이 물놀이하는 날이어서 역시 학교 앞을 서행으로 지나쳤다. 사실 엄연히 운전 중이라 한눈을 팔기 힘들다. 신호도 걸리지 않아 별다른 보람없이 가던 길을 가야 했다. 창문을 열어두었으나 들리는 소리 없었다. 좀 뛰고 있으려나, 물장구치고 있으려나, 괜히 중얼거리며 핸들을 틀어 차선을 바꿀 뿐이었다.
나는 요즘 일주일에 한두 번 뛰어다닌다. 꽤 오래 사회인 야구를 하였는데 실력은 형편없고 그저 자리만 지키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문득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왕 하는 거 한두 해는 잘해보고 그만두고 싶은 것이었다. 그래서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교외 실내 야구 연습장에서 러닝도 조금 뛰고 캐치볼도 했다. 스윙도 마음껏 돌리다 집에 오면 생각보다 꽤 땀이 나 있다. 코치님이 마음먹고 수비 연습을 시키는 날이면 숨이 턱턱 막힌다. 야구 실력만 저질인 게 아니라 체력마저 저질이었던 거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날이 갈수록 체력이 처진다. 지금보다 몇 살 더 먹기 전이 나았던 것 같다. 더 나아가 어린이 시절에는 지치는 게 뭔지 도통 몰랐다. 사실 사회인 야구를 하는 이유가 그 시절 동네에서 하던 야구의 추억 때문인 것 같다. 그때보다 더 재미있는 야구를 아직도 경험하지 못했다. 우리 아이들도 그러할까? 나는 매주 운동을 나가면서 아이들이 운동하는 걸 본 적 없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체육 수업은 줄어드는 것 같고, 구기 종목 같은 규칙을 지키며 하는 운동을 진지하게 해봤다는 이야기를 아이들에게서 들은 적 없다.
배드민턴 채라도 ‘사서’ 아파트 단지 공원에 나서볼까, 글러브와 연식 공을 ‘사서’ 캐치볼을 할까, 그것도 아니면 다 같이 러닝화를 ‘사서’ 단거리 마라톤 같은 걸 도전할까? 누구와도 상관없이 나 혼자 고민하는 중이다. 둘째는 더운데 어딜 나가느냐 반문하고, 첫째는 무얼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둘째의 사춘기인 듯 사춘기 아닌 사춘기 같은 발언은 애써 못 들은 척하고, 첫째를 곰곰 바라본다.
발달장애 어린이는 무슨 운동을 할까? 친구나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운동이 있을까? 아이의 활동은 운동보다는 재활에 가까워 보인다. 일주일에 한 번 나는 야구 연습장에 가고 아이는 재활센터에 가는 셈이다. 가서 새끼손가락까지 힘을 주어 쓰는 법, 발뒤꿈치를 세우고 버티는 법, 90도 옆을 볼 때 동공이 아닌 고개를 돌리는 법 같은 걸 배운다. 그걸 운동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여튼 아이는 센터에 다녀온 날이면 유독 이른 밤에 곤히 잠든다. 운동은 운동이었는가 보다. 그 옆에서 나는 무슨 거창한 운동을 한답시고 장비부터 살 생각 말고, 이번 주말에는 가볍게 아이와 산책을 나서자고 다짐한다. 그렇다면 햇빛을 가릴 모자를 하나⋯.
서효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