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녀 관계에는 원심력과 비슷하게 안에서 밖으로, 가까운 데서 먼 데로 밀어내는 운동이 있다. 엄마 몸 ‘안에 있는’ 태아는 일정 기간 후에 엄마 몸 ‘밖에 있는’ 아기로 태어난다. 부모와 ‘가까이 있는’ 어린이는 점차 부모와 ‘멀리 있는’ 어른이 되어간다. 자녀 교육은 부모 없이도 인생의 시련을 버티며 꿋꿋하게 살아내는 인간으로의 양성이다. 자녀가 부모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에 따라, 부모와 가까이 있는지 멀리 있는지에 따라 자녀 사랑의 강도와 기술이 조절될 필요가 있다. 밖에 있는 자녀를 안에 있게 할 때, 멀리 있는 자녀를 가까이 있게 할 때, 곧 자녀를 부모 밑에 영원히 두려고 할 때, 부모와 자녀 사이에 갈등이 발생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 관계에도 밀어내는 운동이 있다. 처음·중간·마침이 동일한 형태의 관계는 없다. 지금 가까이 있는 사람은 어떤 계기로 공간적으로, 심리적으로 멀리 있게 된다. 자주 만나는 상대가 가끔 연락하는 사람이 되어 있고, 시간이 지나면 소통을 단절한 사람이 되어 있다. 만남은 이별의 시작이듯, 가까이 있다가도 멀어지는 양상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처음처럼’이란 낭만적 구호도 때로는 필요하지만, ‘처음과 똑같아야 한다’라는 강박은 오히려 관계를 파괴한다. 관계에 집착하거나 관계를 조종함으로써 관계의 밀어내는 운동을 외면하면 서로에게 깊고 아픈 상처가 남겨진다.
관계의 밀어내는 운동이 가져오는 상실감과 허무감을 인생에서 당연히 감내해야 할 불편으로 수용하는 이는 ‘잃는 사람이 얻을 상’(마태 10,39 참조)처럼 밀어내는 운동의 역방향인 ‘밀려오는’(끌어오는) 운동을 감지할 수 있다. 자신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인간을 향하여 ‘숨어 있는 하느님’(이사 45,15 참조)이 ‘가까이 있는 분’(당신)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옆에 있는 하느님’으로 다가오신다. 그리스도가 파견한 성령은 믿는 이들 ‘안에 있는 하느님’이다. 바다의 썰물처럼 밖으로 멀리 밀어내는 세상살이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믿는’(로마 6,8 참조) 신앙인은 밀물처럼 다가와 자기 옆과 안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하느님으로부터 평화와 안식을 체험한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사된 하느님과의 관계인 “새로운 삶”(로마 6,4)이며 “영원한 생명”(요한 3,16)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마태 10,37)은 관계의 밀어내는 운동을 거부하고 울타리를 쳐서 가두려는 사람을 가리킨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마태 10,38)은 불가피한 상실감과 허무감의 불편을 부정하려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수넴을 지나가는 엘레사에게 음식을 대접한 여인’(2열왕 4,8 참조)처럼 관계 속에 만나는 이를 ‘자기 인생에서 지나가는 손님’으로 대하는 태도가 요청된다. 생애 처음으로 만난 손님인 부모, 생애 마지막까지 만날 손님인 배우자와 자녀, 인연을 맺어 길게·짧게, 깊게·가볍게 만난 손님인 소중한 사람에게 “시원한 물 한 잔”(마태 10,42)을 마시게 하는 이로서의 자의식이 관계의 유지와 완성을 위해 합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