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양파 듬뿍 보리 쌈장

양파를 까면 눈물이 난다. 양파를 자르는 순간 세포가 파괴되면서 황 화합물이 효소와 반응해 휘발성 가스를 만들고, 이 가스가 눈에 닿으면 눈물샘을 자극한다. 그러니 양파 앞에서 흘리는 눈물은 슬픔이 아니라 화학반응이다.
그런데 요즘 양파밭에서는 정말로 눈물 날 일이 벌어지고 있다. 뉴스를 보다 깜짝 놀랐다. 양파밭을 갈아 엎고 있는 모습에. 올해 양파는 단위면적당 수확량이 평년보다 8.8 늘었다. 재배면적은 전년보다 줄었는데 작황이 워낙 좋아 생산량이 크게 늘었다. 농사철이면 풍년을 기원하지만 정작 현실은 풍년이 들자 가격 조정이란 이름으로 밭에서 양파를 갈아 엎고 있다. 생명을 이어가는 농민들이 스스로 생명을 파괴하는 일은 그들에게 어떤 상처를 남길지 상상이 안 된다.
조생종 양파 경매가격은 평년보다 42나 떨어져 생산비조차 건지기 어렵다. 그 끝은 늘 같다. 산지 폐기다. 한 농협 상임이사는 양파를 캔 자리에 후작 벼를 심어야 하니 폐기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한다.
참 이상한 일은 양파가 풍년이어도 수입되는 양파는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2025년 중국산 양파 수입량은 2022년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정부가 열어주는 저율관세할당(TRQ) 물량이 작황과 무관하게 관성적으로 들어오고, 한번 외국산을 쓰기 시작한 식당과 가공업체는 시간이 지나면 고정 수요로 굳어버리기 때문이다. 우리 양파가 밭에서 갈려 나가는 동안 외식업체 식자재 창고에는 수입 양파가 쌓여가고 있다.
나는 올해 노지에 양파 한 이랑을 심었다가 모두 잃었다. 쌀겨를 깔고 나뭇잎과 깻단을 덮어 겨울을 나게 했지만, 매서운 추위 앞에서 어린 양파들은 결국 모두 죽어버렸다. 까맣게 무른 모종들을 들여다보며 농사란 결국 석유로 짓는 일임을 깨달았다. 비닐 멀칭·부직포·보온덮개 등 겨울을 견디게 하는 방한 자재 대부분이 석유에서 나온다. 귀하게 길러진 양파가 누군가의 밭에서는 풍년이라는 이유로 트랙터에 갈려 땅에 묻힌다. 내 밭의 양파는 추위에 죽고, 다른 이의 밭의 양파는 풍년이라 버려진다.
이 모순을 농민 개인의 의지나 소비자 선의만으론 풀 수 없다. 지금 정부 대책은 풍년이 터진 뒤에야 수습하는 사후 대응에 머물러 있다. 정작 풍년이 들기 전에 구조를 바꾸는 상시책은 더디고 유통구조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정책과 유통 구조 개선을 위해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고 싶다. 첫째, TRQ를 국내 작황과 연동하는 자동조절 장치가 필요하다. 매년 거의 고정된 물량을 들여오는 방식이 아니라, 생산량 예측치에 따라 수입 쿼터를 선제 조정하는 시스템을 법제화해야 한다.
둘째, 문제의 핵심은 외식·가공 시장이다. 국내산 비중이 높은 학교급식처럼 공공급식·군대급식·외식업체와 가공업체도 국내산을 우선 사용할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풍년일 때 이 시장이 국내산을 흡수하도록 가격 차액 지원, 계약재배 확대 같은 상시 제도가 필요하다. 국민 건강권을 위해서라도 버려지는 양파를 모든 업장에서 적정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게 차액 보존책을 써야 하지 않을까?
셋째, 지역 단위 공동가공체계가 필요하다. 양파뿐 아니라 여러 농산물을 연중 처리할 가공시설과 안정적 판로를 함께 구축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시설을 넘어 여성농민과 고령농이 참여하는 일자리와 지역 경제 순환 기반이 될 수 있다.
넷째, 유통구조 혁신이 필요하다. 대부분 농산물이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서 경매에 참여 후 도매·소매로 넘어간다. 오랫동안 농민들이 요구했던 일들이다.
겨울을 넘기지 못해 죽은 내 이랑의 양파와 너무 많이 살아남아 버려지는 밭의 양파. 둘 다 누군가의 땀과 석유와 시간을 먹고 자란 생명이다. 이 생명이 헛되지 않으려면 작황과 수입, 소비를 함께 묶는 상시 제도가 필요하다. 풍년은 재앙이 아니라 축복이어야 한다. 양파를 자를 때 흐르는 눈물은 어쩔 수 없는 화학반응이지만, 풍년 때문에 흘리는 농민의 눈물만큼은 우리의 선택과 제도로 충분히 줄일 수 있다.
나는 요즘 매일 양파를 하루 한 개씩 먹고 있다. 풍년이라 가격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양파가 더 서럽지 않게 나라도 열심히 소비하기 위함이다. 양파는 혈액 속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혈전 생성을 억제해 심혈관 건강에 도움을 준다. 항산화 성분인 퀘르세틴이 풍부해 염증을 줄이고 면역력을 끌어올려 준다. 알리신 성분은 항균·항바이러스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예로부터 민간에서는 감기가 심할 때 방 안에 깐 양파를 두는 풍습이 있었다. 휘발성 황 화합물과 알리신의 살균 작용이 실내 공기 중 세균 활동을 누그러뜨려 기침과 코막힘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겨져서다.
내 밭의 양파 농사를 망쳐 슬펐는데 오히려 양파 소비에 적극 참여하게 됐다. 통보리와 양파를 듬뿍 넣은 쌈장으로 밭에서 쏟아져 나오는 쌈채류와 친구가 보내준 감자로 매일 저녁을 맛있게 먹고 있다.
레시피
재료 : 보리쌀 1컵, 된장 1컵, 양파 1컵, 통들깨 2큰술
사전 준비
1. 보리쌀 1컵을 씻어 밥을 짓는다.
2. 양파는 껍질을 벗겨 둔다.
조리 순서
1. 보리밥이 지어지면 식혀둔다.
2. 양파는 좀 굵게 다진다.
3. 쌈장 담을 통에 모든 재료를 넣고 섞어준다.
4. 저염 쌈장을 맛있게 먹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