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선 아녜스 작가의 노년을 읽습니다] 26. 다비드 칼리 「인생은 지금」

구글 제미나이 제작
“아빠가 3년 뒤 팔순이세요. 팔십에 하는 유럽 여행, 괜찮을까요?” 우리는 아빠 팔순 기념으로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아빠는 팔순, 내 아이는 열아홉이 되는 해.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독일 맥주 축제를 꿈꿔왔다. 할아버지와 손주가 함께 맥주를 마신다면 얼마나 신날까. 그런데 팔순이라는 나이가 긴 비행에 적합할지 몰라 지나가는 말로 60대 고모부께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도현 엄마, 3년 뒤에 할 마음이 있다면 지금 하세요.” 우리는 그게 무슨 말인지 3초쯤 생각하고 나서야 알아들었다. 맞다. 그때 했어야 했다. 여러모로 그랬다. 지금의 나는 그것이 참 후회된다.
처음 만났을 때 시어머니는 75세셨다. 92세에 돌아가셨다. 나의 큰 아쉬움은 어머니가 그렇게 오래 사실 줄 꿈에도 생각 못 했던 것이다. 그렇게 길게 오래 사실 줄 알았다면 미래를 낙관하며 더 많은 것을 도모했을 텐데, 아쉬움이 크다. 어디 크게 병이 있거나 아프지도 않으셨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그저 나이가, 숫자가 많다는 것만으로 미리 기대를 접었던 것 같다.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굴면서 동시에 내일모레 죽을 것처럼 군다.
다비드 칼리가 쓰고 세실리아 페리가 그린 그림책 「인생은 지금」의 원제는 「Now or Never」다. 지금 아니면 절대, 결코 안 된다. 인생은 바로 지금이다. 책 표지에 노년의 부부가 있다. 서로 안고 있는 모습인데 서로 반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둘은 허공을 향해 손을 뻗어 허공을 안고 있다. 둘이 서로 끌어안아 완전체가 되려면, 서로 뒤돌아서야 한다. 마주 봐야 한다. 지금은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 뭔가 메시지가 있는 그림인 것 같다.
“드디어 은퇴야!”라고 말하는 남편은 신이 난다. 아내에게 많은 것을 하자고 한다. 여행도 가고 외국어도 배우고 밤낚시도 가자고 한다. 하지만 아내는 나중에 하자고 한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핑계로 미루기도 하고 더 좋은 계절에 하자고 미루기도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제안을 미루는 아내는, 화가 난 모습은 아니지만 약간 지쳐 보이기는 한다. 이해한다. 그들은 노년이니까. 체력도 의욕도 예전 같지 않을 테니까. 남편은 그런 아내를 설득한다. 인생은 지금이니까, 지금 가자고. 지금 이 순간을 살자고. 아내는 결국 남편에게 설득되었나 보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부부는 해질 녘 노을을 바라보면서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반전은 이것이다. 운전은 아내가 한다. 그리고 부부는 아주 신이 나 있다. 서로 의견이 달랐던 것은 의미가 있다. 만약 끝끝내 남편은 ‘하자고 하자고’만 하고 아내는 ‘나중에 나중에’라고 말했더라면, 그것을 새드 엔딩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함께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기쁜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외롭지 않다. 이제 그것을 안다. 내가 가난한 남편과 결혼한 이유는 가난을 떠나 그와 미래를 함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로움과 충족감은 가난 또는 부와 별개로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서 그것을 더 절실하게 깨닫는 중이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납골당에 모시던 날, 사위인 아빠는 주변 납골함과 이름표를 찬찬히 살피고 있었다. 자손이 많은 외할아버지는 납골함 이름표에 공간이 모자라 손주들 이름을 모두 적지 못하고 적당히 선별해 올려야 했다. 남들은 그러한 경우 어떻게 하는지, 아빠가 그런 걸 보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느냐”고 묻는 내게 아빠는 말했다. “죽은 사람들 나이가 다 내 또래다.” 큰 사위인 아빠는 장인과의 나이 차이가 19세밖에 나지 않는다. 이제 집안에서 제일 나이 많은 어른이 돼버린 아빠는 본인도 멀지 않았다고 생각했을까. 그래서 쓸쓸해하는 중이었을까. 나는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 아빠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가 더 서둘렀어야 함을 깨닫는다. 시기를 놓쳤을 수도 있겠구나. 유럽 여행은 생각났을 때 바로 가야 하는 거였어.
작년 겨울 시어머니와 외할아버지를 잃었다. 두 분 모두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함께하지 못한 것들이 우후죽순 떠오른다. 항상 춥게 살았던 시어머니. 추운 겨울 따뜻한 방에서 이불을 덮고 있자면 어머니가 생각나곤 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다만 며칠이라도 내 방에서 지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으면서도, 거동이 어렵고 화장실을 자주 가는 분을 차에 태워 어떻게 서울 우리 집까지 데려올 것인가, 막상 실행하려면 난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생각만 하다가 끝났던 일들. 그런데 이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그건 공상이다. 이제 어머니가 없는데, 어떻게.
「인생은 지금」을 읽을 때 나는 죽음의 실제를 보는 중이었다. 죽음의 끝은 소멸이다. 남아 있는 사람에게 정말 그렇다. 그래서 아름다운 글과 그림이 나에게는 슬프고 절실했다. 오늘도 용기를 내어, 지금 할 일들을 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