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생활속의 복음] 과거도 미래도 버린 사나이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마태 10,17-22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외벽에 설치된 김대건 신부 성상. 가톨릭평화신문 DB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1821년 8월 21일 충청도 내포 솔뫼에서 김제준 이냐시오와 고 우르술라의 아들로 태어나셨습니다. 1836년 12월 3일 한양을 떠나 마카오와 마닐라를 오가며 5년간 사제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셨습니다. 1844년 12월까지 최양업 토마스와 신학 공부를 마치고 그해 12월 5일 부제품을, 1845년 8월 17일에는 만 24세에 사제서품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2개월을 바다에서 보내야 했고 1845년 10월 충청도에 상륙하셨지만, 1846년 6월 5일 순위도에서 잡혀 4개월을 감옥에서 지내다가 9월 16일에 새남터에서 참수치명 당하셨습니다. 그리하여 13개월의 사제 생활 중 2개월은 바다에서 지냈고, 7개월은 숨어 살았으며, 4개월은 감옥 생활을 하고 순교하셨으니, 10년을 투자해서 7개월을 써먹은 셈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참으로 효용성이 떨어지며 실패에 가까운 선교 활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출발부터 순교까지 성인께서는 절망적 상황을 여러 번 겪으셨습니다. 예를 들면 1839년 기해박해로 앵베르(Imbert) 주교님과 모방(Maubant), 샤스탕(Chastan) 신부님께서 교우들을 위해 자수하여 순교하셨고, 자기 부모와 친구 최양업 토마스의 부모를 비롯하여 70명이 넘는 교우가 순교하였으며 많은 이가 강제로 종교를 저버리게 되었고, 살아남은 신자들도 깊은 산골짜기로 숨어들면서 조선 교회는 절망의 상태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김대건 신부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예수님께서 절망적으로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46) 외치셨을 때 돌아온 하느님의 침묵이 하느님의 무능함이나 사랑의 멈춤이 아니었음을 말입니다.

그래서 성인은 어려움 속에서도 늘 기도하면서 성실하게 살아가셨습니다. 마지막 최후의 순교 순간까지도 교우들에게 사목 서한을 보내며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셨습니다. 하느님과 성모님께 의탁하고, 고문의 고통 중에도 참 기쁨을 누리며 마지막까지 “여러분은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아 돌보고 불쌍히 여기십시오”라고 권고하기도 하셨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솔뫼를 떠날 때 과거를 버렸고 새남터에서 목숨을 바칠 때 세상이 초대하는 미래를 버리셨습니다. 그렇게 영웅이길 마다하셨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고 계신다는 진리를 깨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그저 겸손하게 기대와 용기를 가지고 자기보다는 하느님을 드러내며 하느님의 일을 하는 종이셨습니다.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오늘, 우리나라 성직자들이 하느님의 계산법을 헤아리며 소영웅주의적 태도를 버리고, 내 기획보다는 하느님을 드러내며 ‘하느님의 일’을 하는 순교 정신을 묵상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07-01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7. 2

1코린 6장 14절
하느님께서 주님을 다시 일으키셨으니, 우리도 당신의 힘으로 다시 일으키실 것입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