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9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혐오’ 담긴 말은 쓰지 않기로 약속

[서효인 시인의 특별하고 평범하게] (28) 아이에게 유행어를 배우며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첫째의 언어 능력은 아직 단어를 뱉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목이 마르면 물. 배가 고프면 밥. 뭔가 맘에 들지 않으면 아니. 그래 이거다 싶으면 좋아. 와중에 문장형으로 할 수 있는 말도 있어 앞날을 기대케 한다. “엄마, 텔레비전 보고 싶어요.” 아침마다 하는 말이다. 녀석은 일어나서 ‘TV 유치원 하나둘셋’을 보는 습관이 있다. 그중 ‘한글용사 아이야’ 코너를 무척 좋아한다. 중학생이나 됐으면서. 중학생인 주제에.

그에 반해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는 이제 어엿한 청소년의 언어 습관을 보인다. 가끔 저도 모르게 요즘 유행하는 말을 툭툭 뱉는데, 얼마 전에는 저녁을 먹으면서 ‘야르’라고 말하는 것이다. 야르가 뭐지? 나도 유튜브에서 들은 것 같긴 한데, 그저 지나가는 유행어려니 하고 관심 없이 넘겼다. 아이의 말로는 맛있는 거 먹을 때 하는 말이라는데, 내게는 어색하기만 하다. 그 외 ‘밤티’랄지, ‘67’이랄지 하는 말은 왜 유행하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유행어가 단순한 유행이 아닌 공적 언어가 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사회적 약속이라는 게 특정한 세대나 계층에서 저들끼리 손가락 건다고 발생하는 게 아니다. 유행이 현상이 되고 현상이 현실이 되어야 유행어는 단어로서 등재된다. 그렇지 않다면 ‘따봉’이니 ‘캡숑’이니, ‘방가방가’니 하는 말도 지금까지 쓰지 않겠는가? 그러하니 아이가 유행어를 좀 쓴다고 하여 과민 반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말은 길어야 1~2년, 짧으면 한 달 안에 없어질 테니까.

한데 ‘샤갈’이라는 말에는 내게도 반응이 일었다. 어감이 아무래도 비속어 같은데, 무심코 그 말을 쓴 아이에게 물어보니 왠지 얼버무린다. 찾아보니 역시나 그러하다. 아이를 타이르며 그런 말은 쓰지 않기로 약속했는데, 이 약속이 또래 아이들과의 ‘작은 사회적 약속’보다 우선할는지는 모르겠다.

다시 첫째 이야기로 돌아가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언어는 이 사회를 연결하는 주요한 끈이다. 인간이 언어를 구하지 못했다면 사회를 구성할 수 있었을까? 돌고래마저 의사소통 수단이 있기에 간단한 집단생활이 가능하다. 그런 생각을 할수록 아이에 대한 내 생각은 복잡하고 스산해진다. 그나마 ‘한글용사 아이야’를 많이 봐서인지, 세종대왕의 탁월함 때문인지 간단한 한글은 읽어내기도 한다. 그 뜻을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 뜻을 풀어낼 만큼 길게 말하지는 못하니까.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다. 언어가 있어 인간은 이만큼 발달한 문명을 이룩했다. 그리고 이렇게나 발달한 문명은 보통의 언어를 수행하지 못하는 동료를 품는 방식으로 연대와 사랑을 키워왔다. 그렇다고 믿고 싶다. 타인을 혐오하고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우리는 약속했고, 그 약속 아래에서 같은 언어를 쓰고 있다고 믿고 싶다. 이것이 우리가 맺은 진정한 사회적 약속일 것이다. 첫째는 텔레비전으로 볼 것 다 보고 학교에 가기 전에 이렇게 말한다. 사랑해. 쏟아지는 온갖 혐오와 차별의 단어 속에서, 녀석의 단 한마디가 작은 빛을 낸다.

서효인 시인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07-08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7. 9

시편 54장 6절
보라, 하느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 주님은 내 생명을 받쳐 주시는 분이시로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