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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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교회의 중심 ‘유항검 일가’의 십대 순교자들

[한국 교회 주역, 청년들] (30) 복자 유문석과 유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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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유문석(왼쪽)과 유중성은 사촌 간으로 17살 어린 나이에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며 순교했다. 유문석·유중성 복자화.


전주에서 여러 명의 순교자 배출한 가문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는 복자 유항검(아우구스티노) 가문에 대해 “그리 높지 않은 양반 계급에 속한 사람이었으나, 그 덕망과 많은 재산으로 인해 세력이 컸다”고 서술하고 있다.(상권, 313~314쪽) 아마도 유항검의 직계 가문에서 8대조 이래로 과거 급제자가 나오지 않았기에 이러한 평가가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유항검 가문이 달레 신부의 서술처럼 변변찮은 지방 토호만은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유항검 가문은 지체 높은 가문의 유력 집안들과 혼인 관계를 지속해서 맺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유항검의 7대조 유석준의 처가는 대사헌과 이조판서를 역임한 전주 이씨 이수광의 집안이며, 동정부부로 유명한 유항검의 아들 유중철(요한)의 처인 이순이(루갈다)도 이수광의 후손인 이윤하의 딸이다. 이처럼 유항검의 가문은 전주에서 제법 알려진 가문이었다.

유항검의 아버지 유동근은 안동 권씨 권기징의 둘째 딸과 혼인해 3남 1녀를 낳았다. 권기징의 맏딸이 복자 윤지충(바오로)의 어머니이므로 유항검과 윤지충은 이종 사촌 간이다.

유항검의 형제로는 형 유익검, 홍득연과 혼인한 누나, 동생 유진검, 그리고 아버지가 새어머니 유씨 사이에서 낳은 배다른 동생 유관검이 있었다. 형 유익검은 혼인해 유중덕과 유중성(마태오)을 낳았다. 유항검은 부인 신희 사이에 4남 2녀를 뒀다. 장남 유중철, 장녀, 차남 유문석(요한), 차녀 유섬이, 삼남 유일석, 막내 유일문이다.

유항검 일가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전주에서 순교했다. 먼저 유항검과 그의 배다른 동생 유관검은 10월 24일(음력 9월 17일)에 능지처사형으로, 장남 유중철과 차남 유문석은 11월 14일(음력 10월 9일) 교수형으로, 유항검의 부인 신희, 맏며느리 이순이, 조카 유중성, 동생 유관검의 부인 이육희는 1802년 1월 31일(음력 1801년 12월 28일) 전주 숲정이에서 참수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유항검의 어린 자녀들인 9살 유섬이와 6살 유일석, 3살 유일문은 관비로 경상도 거제부, 전라도 나주목 흑산도와 강진현 신지도로 유배됐다.

이번 호에는 유항검의 차남 유문석(요한, 1784~1801)과 조카 유중성(마태오, 1784?~1802)을 소개한다.


옥에 갇힌 가족들과 순교 약속

유문석은 어릴 때부터 전라도 교회의 중심이었던 자신의 집에서 아버지 유항검의 가르침으로 가톨릭 신앙 안에서 성장했다. 그는 1795년 전주 초남이 자신의 집을 방문한 주문모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그의 아버지 유항검이 가장 먼저 체포돼 한양으로 압송됐고, 이어 형 유중철이 체포돼 전주 옥에 갇혔다. 이때 유문석은 다행히 체포되지 않아 여름 내내 전주 옥을 오가며 형에게 음식을 넣어주는 등 옥바라지를 했다.

1801년 음력 9월 15일께, 유문석도 남은 가족과 함께 체포돼 전주 옥에 갇혔다. 그는 이때 가족과 함께 순교를 약속하면서 마음을 다졌다.

“옥에서 시댁 친지 두 분(시어머니 신희와 시숙모 이육희)과 시동생 두 명(유문석과 유중성)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서로 바라보며 눈물을 짓고 말은 한마디도 못했습니다. 이윽고 밤이 찾아오고 때는 거의 보름달인지라 달은 가을 밤하늘에 휘영청 빛을 발하고 있었으며, 옥 창을 통해 들어오는 밝은 달빛으로 서로는 각자의 속마음을 쉽사리 볼 수 있었는데, 누우나 앉으나 저마다 나지막이 기도하고 있었으며, 저마다의 기도요 갈망은 순교의 은총이었습니다. 이 갈망을 억누를 길이 없어 서로 그것을 털어놓으려 했는데, 그러다 보니 다섯 사람이 동시에 마치 한 입에서 나온 소리처럼 ‘우리 모두 하느님을 위하여 죽읍시다’하고 말했습니다.”(이순이 루갈다 옥중 서한 중에서)

그는 1801년 11월 14일 먼저 옥에 갇혀 있던 맏형 유중철과 함께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그의 나이 17세로 형처럼 동정이었다.


유배 대신 순교의 영광 선택

유중성은 유항검의 맏형 유익검의 차남으로 유문석과는 사촌 간이다. 아버지 유익검이 35세 나이로 요절해 유중성은 작은아버지 유항검의 집에서 자랐다. 유중성은 작은아버지 가족에 의해 자연스럽게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였다. 1801년 음력 9월 중순께 그는 어머니를 비롯해 사촌인 유문석 등 친척들과 함께 체포돼 전주 옥에 갇혔다. 그의 어머니는 체포된 지 얼마 안 있어 석방됐으나 그는 5명의 친지와 함께 순교를 약속했다.

하지만 먼저 순교한 유중철·문석 형제와 달리 그와 옥에 갇힌 다른 친지들은 유배형을 받았다. 그러자 유중성은 사촌 형수인 이순이와 함께 친척들을 대표해 “법에 따라 처형해 줄 것”을 관장에게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뿔뿔이 관비로 끌려가는 친척들을 보면서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로 “관장이 국법에 따라 천주교인들을 처형하지 않고 유배 보낸다”고 외쳤다. 그러자 전주 감사는 유배지로 향하던 친척 가운데 아이들을 제외한 어른들을 다시 잡아오도록 해 옥에 가뒀다.

이후 유중성은 다시 감사 앞에 끌려가 문초와 형벌을 받았으나 “천주교는 집안에서 전해오던 신앙입니다. 유항검 등 삼촌들이 영광스럽게 죽었으므로 그들과 같이 죽기를 바랄 뿐입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라고 굳건하게 신앙 고백을 했다.

유중성은 1802년 1월 31일 친척들과 함께 전주 숲정이 형장으로 끌려가 그가 원하던 대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그의 나이 약 17(18)세였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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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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