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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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날 만난 ‘미소 천사’

[서효인 시인의 특별하고 평범하게] (30) 퇴근하는 청년과 길을 건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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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야근을 앞두고 허기를 채우러 밖에 나섰다. 여름 해는 길고 더위는 쉬이 가시지 않았다. 사무실 에어컨을 벗어나니 그제야 폭염이 실감 났다. 날이 더우니 입맛도 없어 대충 때웠다. 국수였나 비빔밥이었나 무엇이든 맛이 없을 수 없는 메뉴가 없건만 무엇을 먹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밥이고 삶이고 좀처럼 집중되지 않는 계절이다. 혹자가 말하길 가장 시원한 여름은 바로 올여름이라고 하던데, 앞으로의 여름은 더욱 지독하게 더워진다는 뜻일 테다. 이제 지구 온난화라는 말보다 기후위기라는 말이 더 적절하게 들린다. 아닌 게 아니라 진짜 위기니까.

지구는 더 뜨거워지고 있다, 인간에 의해. 뜨거워진 지구에서 인간은 살 수 있을까? 건널목에 늘어선 인간들은 뜨거워지는 지구보다는 당장 더운 게 더 화급한 사정으로 보였다. 누군가는 손차양을 만들었다. 누군가는 휴대용 선풍기를 목덜미에 댔다. 누군가는 가로수 조각 그늘에 숨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모두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였다. 그중 가장 인상을 쓰고 있는 사람은 나였다.

보행자 신호가 파랗게 바뀌자 사람들은 일제히 길을 건넜다. 그때 키가 조금 작고 약간은 통통한 청년이 유독 천천히 걷는 게 보였다. 그는 얼음이 든 음료를 손에 들고서 빙긋이 미소를 머금었다. 이렇게나 더운데 웃고 있다고? 청년과 나는 가는 방향이 같았다. 괜한 곁눈질을 해가며 몇 발짝 떨어져 걸었다. 그의 손에 들린 음료는 빨간색이었다. 수박 주스일까. 그걸 빨대로 한 모금 마시더니 활짝 웃는다. 빨대에서 입을 떼고 다시 방그레 웃었다. 활짝 웃다 방그레 웃길 반복했다. 사무실 모퉁이에서 그는 나와 다른 길로 방향을 꺾었다. 그는 다운증후군 청년이었다.

저녁 6시가 넘은 시간이었으니 퇴근길이었을 것이다. 발달장애인, 그중에서도 다운증후군 청년은 반복적인 일을 꼼꼼하게 잘해 단순노동이 필요한 곳에서 잘 적응하여 일한다고 한다. 주어진 레시피를 철저하게 지키는 편이라 바리스타로 일하기도 한다. 우체국에서 분류 업무를 맡기도 한단다. 청년은 어디서 일하고 집에 가는 길이었을까? 우리 집 딸아이는 부모 손을 잡지 않고서는 동네 슈퍼도 가지 못하는데, 혼자서 웃으며 퇴근을 하는 청년의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웃고 있었다. 이토록 유난한 더위 아래, 웃고 있는 사람은 청년뿐이었다.

다운증후군을 천사병이라 일컫기도 한다. 의학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옳은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웃음이 잦다는 점에서 그렇게 호명한 것 같다. 비관과 짜증의 늪에 빠져 있을 때, 그는 웃고 있었다. 저 웃음을 장애라고 할 수 있나? 나는 도리어 비장애인이 더위를 대하는 자세가 (특히 나의 자세가) 삶의 장애를 만들지는 않는가 싶다. 청년의 뒷모습을 보았다. 사실 그는 천사도 아니고 병자도 아니다. 그저 우리와 함께 이 여름을 통과해나가는 동료일지도 모른다. 그의 미소를, 참을성과 점잖음을 악용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에게는, 아니 모두에게 그러한 일은 없길 바라며, 그와 우리가 이 여름을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며 사무실에 들어섰다. 밀린 일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서효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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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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