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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복음] 하느님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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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산드로 알로리 작 ‘물 위를 걷는 성 베드로’, 1590년대.


호렙 산의 ‘동굴’(1열왕 19,9)로 피신하기 전, 엘리야는 이렇게 간청했다. “주님, 이것으로 충분하니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1열왕 19,4) 엘리야가 은둔한 동굴처럼, 방어와 고립을 위한 ‘정서적 동굴’은 타인에게 쉽게 노출되지 않는 도피처이고, 자기 내면을 상대로 한판 대결을 펼치는 격투장이며, 자아의 과거·현재·미래를 무작위로 상영하는 영화관이다.

‘과거를 상영하는 동굴’은 예전의 명예·성공 혹은 상처·실패로부터 기인하는 상실감과 죄의식을 자극한다. ‘현재를 상영하는 동굴’은 ‘지금을 즐겨라’(carpe diem)는 긍정적 세뇌 혹은 당면 과제를 시급히 해결하려는 압박으로 어제와 내일을 배제하게 만든다.

‘미래를 상영하는 동굴’은 근거 없는 확신이 촉발한 막연한 기대감 혹은 불확실성과 불투명성이 유발한 두려움에 점령당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라는 물음으로 숨어 있는 첫 인간을 찾는 하느님이 동굴 속 엘리야에게 명령하신다. “나와서 산 위, 주님 앞에 서라.”(1열왕 19,11)

복음 선포의 거점이었던 갈릴래아는 인구가 호수 주변으로 밀집된 지역이기에, 전직 어부였던 제자들이 ‘스승 때문에 버린 배’(마르 1,20 참조)는 유용한 교통수단(마태 9,1 참조)과 군중들 앞에 서는 강단(마태 13,2 참조)으로 활용되었다. 버린 배를 다시 타는 제자들은 ‘복음 선포를 위한 배’(현재)의 불안정과 무의미를 체감할 때마다 ‘생계유지를 위한 배’(과거)를 회상하였다.

배 운항의 전문가들이 바다도 아닌 ‘호수의 풍랑 때문에 잠자고 있는 스승을 깨웠다는 보도’(루카 8,24 참조)는 제자 신원에 대한 회의와 의심을 시사한다. 나아가 제자들은 ‘스승이 없는 배’(미래)를 직간접적으로 예감하였다. 배에서 호수의 맞바람에 헤매던 제자들과 산에서 기도하신 스승과의 물리적·심리적 거리감은 ‘훗날 어부로 복귀할 배’(요한 21,3 참조)를 선명하게 각인시켰고, ‘허상’(유령: 마태 14,26)을 추종했다는 의구심을 증폭시켰다. 이를 극복하려는 베드로가 스승처럼 호수 위를 걷다가 거센 바람을 보고 ‘두려움’(물)에 빠지자, 스승은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신다.(마태 14,30-31 참조)

‘커다란 슬픔과 끊임없는 아픔이 마음속에 자리 잡은’(로마 9,2 참조) 이들은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키는 동굴로 잠적한다. 하느님이 동굴 안에서 밤을 지새우는 엘리야에게 ‘동굴 밖으로 나와 산 위에 서기’를 요청한 바와 같이, 예수님은 배 안에서 맞바람이 부추기는 상념에 휩싸인 제자들에게 ‘배 밖으로 나와 호수 위에 서기’를 주문한다.

중력의 법칙만을 강변하는 ‘신 없는 세상’을 향해, “만물 위에 계시는 하느님”(로마 9,5)은 산 위, 호수 위로 우리를 초대하신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손”(지혜 3,1)이 ‘어두운 동굴, 흔들리는 배에 갇혀’(과거·현재·미래에 묶여) 신음하는 이들을 붙잡기 위해 내밀어지고 있고, “하느님의 손가락”(루카 11,20)이 이들을 악으로부터 보호하고 있다. 산 위, 호수 위에 서려는 이들의 불안과 의심을 해소하기 위해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히브 13,8)이 손을 내밀며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1열왕 19,12)로 이렇게 말씀하신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마태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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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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