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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노년은 자녀에게 남기는 마지막 가르침

[서민선아녜스 작가의 노년을 읽습니다] 30. 황보름 「윗집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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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남동 서점입니다」로 유명한 황보름 작가의 신작 「윗집 부부」가 나온다고 했을 때, 종이책보다 오디오책이 먼저 나올 거라고 했을 때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구독 서비스를 재개했다. 무려 8시간 25분짜리 오디오북이었다. 출퇴근 시간이 비교적 긴 나는 하루에 두 시간씩 책을 들었고, 책을 ‘귀로 들어 완독하는 데’ 일주일이 걸렸다.

오디오북으로 책을 듣는 것은 쉽지 않다. 이야기의 맥락과 관계없이 목적지에 도착하면 읽기를 중단해야 하고, 중간중간 내비게이션 소리나 다른 소리에 묻혀 이야기를 건너뛰게 되기도 한다. 가장 난감한 것은 다시 듣고 싶은 부분이 생겼을 때다. ‘아, 이 문장 너무 좋다’ 싶어도 밑줄을 그을 수 없고, 잘 생각이 안 나도 페이지를 앞으로 넘겨 다시 읽을 수 없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헷갈릴 때도 마찬가지다. 책장을 넘겨볼 수 없는 답답함, 그것은 매우 크다. 그럼에도 나는 일주일 꼬박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날은 주차를 마치고도 더 듣고 싶어 시동이 꺼진 차 안에 앉아있기도 했다. 그리고 출근길에 시동을 켤 때면 「윗집 부부」를 이어 들을 생각에 설레었다.

‘늙은 부모는 자식에게 더는 필요치 않은 걸까.’ 「윗집 부부」의 주인공 경직의 독백이다. 경직 부부는 어느 날 딸이 맹장수술을 받은 것을 알게 된다. 혼자 사는 딸은 수술 전 보호자 동의를 위해 남동생에게 다섯 번 전화를 한다. 무려 다섯 번이나. 아픈 와중에 동생이 전화를 받지 않아 노심초사했을 텐데 그 대안으로 부모를 떠올리지 않았다니. 아내는 그 사실을 알고 노발대발하며 남편에게 소리친다. “가장 최악의 부모가 어떤 부모인지 알아?” 고통스러운 절규다. 성우의 목소리에 감정이 실려 있어서 그런지 절규는 더욱 생생하게 와 닿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내의 자문자답. 답은 이것이었다. “걱정만 많고 능력은 없는 부모래. 딱 우리잖아!”

딸의 수술을 몰랐다는 사실뿐 아니라 위기의 순간에 자식이 부모를 찾지 않았다는 것은 부부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그 대사들이 가슴 깊이 와 닿았다. 그것이 9시간에 가까운 오디오북을 다 듣고 나서 또 「윗집 부부」 종이책을 사게 된 이유였다. 다시 한 번 읽고 싶었다. 그 부분, 경직의 독백을. ‘늙은 부모는 자식에게 더는 필요치 않은 걸까.’

내 아이는 고등학교 3학년이다. 고3 엄마가 처음인 나는 우당탕·좌충우돌, 매일·매월·매 순간 난감하다. 짐작하고 미리 알아보고 계획하지만 자주 놀라고 낙담하고 후회한다. 나는 진심으로 잘 해내고 싶다. 단단하고 혜안이 있는 부모가 되고 싶은 나에게 다른 어떤 시기보다 지금, 고3 학부모 역할이 가장 버겁다. 사실 돌아보면 어느 한순간도 쉽지 않았다. 아이는 계속 쉬지 않고 컸기에 조금 익숙해졌다 싶으면 다음 단계가 왔다. 그런 것들은 아이와 함께한 기쁨의 순간들과는 별개였다. 매 순간, 매 단계 새롭게 부모의 자리를 생각해야 했다.

낯선 설렘과 어려움은 종종 삶이란 고단하다고 생각하게 했다. 아이가 중학교에 가면 다 키운 거라고 했는데, 스무 살이 되면 이제 정말 끝이라고 했는데, 결혼해서 가족이 생기면 남과 다름없다고 했는데, 아니었다. ‘내가 자식에게 뭘 해줄까’를 생각하는 그런 부류의 것이 아닌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나는 열여덟 살 자식을 처음 가져봤고, 마찬가지로 스무 살의, 서른 살의, 마흔 살의 자식을 처음 가져볼 것이다. 그리고 때마다 부모의 자리를 잘 살아내기 위해 애쓸 것이다. 그것은 어린 자식을 성인으로 양육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다. 일단 자식을 낳았다면, 자식을 낳은 자들의 인생은 부모로서의 인생이 팔 할이다.

경직과 경직의 아내 화정, 경직의 친구 항구는 모두 70대 초반이다. 경직 부부에게는 젊은 가족인 아들과 딸이 있고, 화정에게는 함께 덕질하는 젊은 친구가 있고, 경직에게는 생각을 나누는 젊은 편의점 직원이 있으며, 그들 모두에게는 사랑스럽고 안쓰럽고 젊은 윗집 부부가 있다. 그들은 젊은이들과 관계하며 위로를 주고받고 그러면서 배운다. 이것은 그들의 상대방의 자리에 있는, 노년기의 친구·지인·이웃을 가진 젊은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양육을 끝낸 부모, 노년기 부모는 더 이상 자식에게 필요치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노년기 부모의 자리는 사느라 고단한 청·장년기 자식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어떤 말을 하지 않아도, 어떤 것을 주지 않아도, 부모가 보이는 노년의 모습은 그 자체로서 무궁무진한 의미를 담는다. 그러니 끝까지 성찰하고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노년에 풀어야 할 마지막 숙제를 그것으로 정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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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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