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 시인의 특별하고 평범하게] (32) 할머니와의 날들을 추억하며
내가 대표로 있는 안온북스에서 만든 책이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되었다. 정확하게는 책의 저자가 출연했다. 책 제목이나 표지가 노출되지 않아서인지 드라마틱하게 판매량의 변화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독자에게 꾸준히 읽힐 가능성이 생겼다는 데에 감사할 따름이다. 방송 출연자는 「오늘내일하는 사이」의 임봉근, 임다운 작가. 할머니와 손녀 사이다. 둘의 사연은 방송과 책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아마 책이 더 상세할 것이다. 각자의 할머니가 다시 떠오를 만큼.
임봉근 작가의 나이는 올해로 96세. 1931년생이다. 공교롭게도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와 동갑이다. 임봉근 작가는 그 시대 명문대를 입학하고, 종군 기자로 활약했으며, 지금까지 책을 사랑하는 독자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 할머니는 이른바 까막눈이었다. 당신 이름 정도 읽었던 것 같다. 작은 공장에 딸린 식당을 운영하면서 장부에 ‘바를 정’자도 아니고 작대기를 긋는 방식으로 하루 매출을 기록했다.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인 내가 그 숫자를 옆에서 같이 세던 기억이 난다. 물론 전라도 사투리로. 하나, 두이, 서이, 너이⋯.
글을 모르는 할머니는 첫째 증손자가 태어나고 가끔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얘가 이제 말은 허냐?” 할머니 돌아가신 지 이제 5년이 지났지만, 그 아이는 아직 남들 하는 만큼 말하지 못한다. 할머니에게 아이의 장애에 대해 알리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서는 할머니의 거동이 편치 않아 자주 보지 못하기도 했고, 통화하더라도 굳이 그 이야기를 해야 하나 싶었다.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고모도 말렸다. 예의 노령의 부모를 둔 자녀가 하는 말을 덧붙이면서. “할머니가 더 살아봐야 얼마나 더 사시겠느냐.”
사실 그보다는 그 시절 어르신들이 갖고 있을 법한 장애에 대한 편견이 내 입을 막았다. 꼭 그 시절이라 한정 지을 필요는 없겠다. 아버지인 나조차 아이의 장애를 확인하고 지금까지 내 안의 온갖 편견을 마주하고 그 편견에 놀라고 남은 편견과 싸우고 있으니까. 내 손자가 장애아를 낳았다고 하면 할머니가 적잖게 놀라지 않을까. 이 아이를 미워하지 않을까. 하지 않을 생각이나 말을 해버리지 않을까. 이런 식의 걱정을 했다. 이 또한 할머니에 대한 나의 편견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쩌다 할머니를 뵈러 갈 때면 할머니는 읍내 시장에서 새 옷을 사서 증손녀들을 기다렸다. 쇼핑몰이나 인터넷에서 사는 옷과는 분위기가 달랐는데, 입혀놓으면 최신 유행하는 옷들보다 애들에게 잘 어울리는 듯했다. 나는 괜히 마음에 없는 소리를 내고는 했다. “돈도 별로 없을 텐데, 애들 옷은 왜 사셨어.” 할머니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고모가 사준 효도폰으로 새 옷을 입힌 애들 사진을 찍었다. 지금 그 휴대폰은 할머니의 유골함과 함께 있다. 그 옷들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글자도 모르는 할머니는 매번 어떻게 장에 나갔을까. 어떻게 먹을거리를 고르고 흥정하고 가끔 애들 입힐 옷을 샀을까. 할머니는 할머니의 감각으로 가능했겠지. 글자를 모르더라도 삶은 이어지니까. 알았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시간과 시절은 할머니를 글자를 모르는 현명한 사람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당신 돌아가시고 훌쩍 커버린 아이들을 보며, 오늘과 내일이 할머니에게 아직 존재할 때, 조금이라도 더 볼 걸 하는 후회가 든다. 매번 하는 하릴없는 생각이다.
서효인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