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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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복음] 성자 그리스도

연중 제21주일 마태 16,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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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이 산 성 가타리나수도원 판토크라토르 그리스도.

현실의 불만족을 해소할 방안으로 과거의 인물과 사건을 소환하는 경향이 있다. 냉소적 평가를 받았던 인물과 사건이 긍정 이미지로 치장되어 불안정한 현실의 전환점으로 공인하는 사례도 있다. 개인을 넘어 사회로 확장된 극단적 불안은 세상 종말에 대한 염원을 품게 한다. 이는 ‘종말의 징조가 과거 현인의 귀환’이라는 양상으로 전개된다.

왕권의 몰락과 로마의 지배로 정체성이 요동치는 현실을 직면한 이스라엘 민족은 ‘이 사태를 타개하기 위해 하느님이 파견할 위인’(메시아, 그리스도)을 고대했다. 반면에, 로마인 관리들과 야합한 주류층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은 율법을 오남용하여 비주류의 세력 형성을 경계하고 비주류의 주모자처럼 급부상한 나자렛 예수님을 견제함으로써(마태 16,1 참조) 기득권을 사수하였다.

예수님이 자칭했다고 추정하는 ‘사람의 아들’은 구약의 맥락에서 ‘세상 종말의 공정한 심판자’(다니 7,13-14 참조)다. 예수님은 이 호칭을 통해 세평을 파악한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마태 16,13) 헤로데 일가의 간계로 희생당한 세례자 요한(마태 14,10 참조), 예언자 중 명성을 누렸던 엘리야 혹은 예레미야라는 평판은 난세를 수습할 인물로 과거를 소환하는 추세를 보여준다. 스승은 ‘사람의 아들’ 대신 일인칭으로 제자들에게 묻는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 16,15)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베드로의 대답에 담긴 두 가지 호칭 ‘성자’(聖子)와 ‘그리스도’는 성령 강림 후 교회의 본격적 등장과 더불어 예수님에게 적용하는 호칭으로 정형화되었다.

‘예수님의 신원’을 암시하는 ‘성자’는 하느님이 아들 예수님을 통하여 ‘바로 옆에 가까이 있는 분’,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존하는 분’임을 소개한다. 이는 성자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하느님’(요한 1,1 참조)이라는 신앙 고백으로 도약한다. ‘예수님의 역할’을 포괄하는 ‘그리스도’는 성자의 활동과 업적이 그 자체로 ‘기쁨과 희망’이며, 구원·심판이 시작되지 않은 미래형 사건이 아니라 ‘시작된 현재진행형 사건’임을 의미한다. 이와 연계된 로마서의 구절에 ‘영광송의 문구’를 대입하면 다음과 같다.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처음과 같이), ‘그분을 통하여’(이제와) ‘그분을 향하여’(항상 영원히) 나아갑니다.”(11,36) 권력자의 ‘한시적 영광’(이사 22,19 참조)과 대조하여, 성자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영원한 영광’을 계시한다.

복음서 중 마태오 복음만이 명시하는 ‘교회 설립’ 보도는 갈릴래아 호수의 발원지 “카이사리아 필리비”(마태 16,13)에서의 예수님에 대한 ‘신앙 고백’(성자 그리스도)에 기초한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복음 선포와 성사 거행으로 ‘옆에 계신 성자의 현존’과 그 현존으로 ‘기쁨·희망(자유·해방)을 선사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생동감 있는 증거다. 교회의 과제는 자신에게 위임된 권한을 상징하는 “하늘 나라의 열쇠”(마태 16,19)로 죄악을 ‘매고’(닫고) 자비와 정의를 ‘푸는’(여는) 소임이다. 열쇠의 무게가 성문을 여닫는 “빗장”(신명 33,25; 1사무 23,7)과 같기에, 교회는 ‘성자 그리스도’(신앙 고백)로부터 열쇠(빗장)를 어깨에 걸칠 체력을 얻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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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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