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무성한 텃밭의 풀을 정리하고 나니 풀 속에 숨겨졌던 작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중 반가운 것이 가지다. 보랏빛 가지 열매가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을 드러냈다.
보랏빛 가지들이 잎사귀 사이사이로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풀 속에서도 저렇게 자란 모습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가지 모종 2개를 농부님께 얻어 심었는데 줄기가 튼실하게 자라 가지가 주렁주렁 달렸다. 가지를 하나씩 따다 보니 제법 양이 많았다. 오늘은 6개의 가지를 수확했다. “이걸 언제 다 먹나?”하는 생각도 잠시, 내 머릿속엔 떠오른 음식이 있다.
바로 내가 즐겨 짓는 가지밥이다. 가지는 그 자체로 수분을 넉넉히 머금고 있어서, 물 없이 가지만 듬뿍 넣어 밥을 짓는다. 우선 가지를 굵은 크기로 썰어 간장 3큰술에 잘 버무려둔다. 10분 정도 두면 가지에서 물이 제법 나온다. 냄비에 가지를 넣고 들기름 2큰술을 두른 후 볶아준다. 그리고 쌀을 넣어 밥을 짓는다. 뜸이 다 들면 밥알 사이사이로 배어든 가지의 은은한 단맛과 간장의 깊은 감칠맛, 들기름의 고소함이 한데 어우러진다. 여기에 양념장을 올려 슥슥 비벼 먹으면, 별다른 반찬 없이도 한 그릇이 든든하다.
입추가 지나니 바람의 느낌이 달라졌다.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면서 한여름 속 가을을 만나게 한다. 아직 한낮의 더위는 이어지고 있지만, 계절이 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가지 맛도 변한다. 한여름 가지는 수분이 많고 부드러워 아삭한 식감이 살아있는 반면, 입추가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조직이 조금 더 단단해지고 단맛이 깊어진다. 밤낮의 기온 차가 커지면서 식물이 스스로 당분을 저장하기 때문인데, 그래서 늦여름에서 초가을 사이의 가지는 가지밥이나 나물로 무쳤을 때 훨씬 풍미가 진하게 느껴진다.
가지는 흔히 ‘속이 텅 빈 채소’라는 오해를 받지만, 사실 안토시아닌 색소가 풍부해 항산화 작용을 하고, 식이섬유와 칼륨이 넉넉해 몸의 순환을 돕는 채소다. 기름과 함께 조리하면 영양소 흡수도 더 좋아지니, 들기름을 두른 가지밥은 맛뿐 아니라 영양 면에서도 좋은 궁합인 셈이다.
가지밥의 부드러운 식감을 살려주며 아삭한 맛을 더하는 오이 간장을 듬뿍 곁들여 김에 밥 한 숟갈 올리면 최고의 조합이 된다. 오이는 작게 잘라 간장·참기름(혹은 들기름)·깨소금을 섞어 만드는데, 오이의 시원한 수분이 더해지면 자칫 무거울 수 있는 가지밥이 한결 개운해진다. 여름내 생으로 먹던 오이를 다르게 먹는 방법이다.
이 오이 간장의 맛을 좌우하는 건 결국 간장이다. 직접 장을 담근 지 이제 7년 정도 되어간다. 그 전에는 엄마가 담가준 장을 가져다 먹었다. 엄마가 아프고 나서는 내가 장을 담그기 시작했다.
요즘 반가운 변화 하나는 방송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 출연했던 선재 스님 덕분에 우리 전통 한식 간장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메주를 띄우고 소금물에 담가 발효시켜 만드는 재래식 간장 특유의 깊은 맛과 정성이 젊은 세대에게도 새롭게 다가가고 있다는 소식이 반갑기 그지없다.
한편으로는 이 기회에 우리가 먹는 간장 종류를 한 번쯤 짚어보면 좋겠다. 시중의 간장은 크게 전통 방식으로 오랜 시간 발효시킨 발효 간장과 양조간장, 콩 단백질을 산으로 가수분해해 짧은 시간에 만드는 ‘산분해 간장’, 그리고 이 둘을 섞은 ‘혼합간장’으로 나뉜다. 산분해 간장은 생산 속도가 빠르고 저렴하지만,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감칠맛과 향이 재래식 간장을 따라가기 어렵다. 혼합간장은 이 둘을 적절히 섞어 맛과 원가를 함께 잡은 제품인데, 라벨을 잘 살펴보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
밥 한 그릇, 간장 한 숟갈에도 만드는 사람들의 시간과 정성이 담겨 있다. 가지가 무성한 이 계절, 텃밭에서 거둔 가지로 밥을 짓고 정성껏 담근 간장 한 숟갈을 곁들이며, 우리 밥상이 어디에서부터 오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다.
지구밥상
재료:
가지 6개, 간장 3큰술, 들기름 4큰술, 쌀 2컵, 오이 1/2개, 간장 2큰술, 물 2큰술, 참기름(또는 들기름) 약간, 깨소금 약간, 홍고추 1/2개.
사전 준비
1. 가지를 깨끗이 씻어둔다.
2. 홍고추, 오이도 깨끗이 씻어둔다.
3. 쌀은 씻어서 불려둔다.(30분)
조리 순서
1. 가지는 도톰하게 썰어서 간장 3큰술을 넣고 절인다.
2. 오이는 작게 자른다. 홍고추는 씨가 있는 그대로 다진다.
3. 오이와 홍고추에 간장 2큰술, 물 2큰술, 참기름(또는 들기름) 2큰술, 깨소금을 넣어 오이 간장을 만든다.
4. 냄비에 절여둔 가지를 넣고 들기름 2큰술을 두른 후 볶아준다.
5. 물기 뺀 쌀을 넣고 1분간 볶아준다. 가지에서 나온 물을 넣고 가지와 쌀을 잘 섞어준다.
6. 강불로 5분 정도 끓인 후 중약불로 줄여 15분간 밥을 짓는다.
7. 15분 후 불을 끄고 5분간 뜸을 들인다.
8. 밥을 잘 섞은 후 그릇에 담아 오이 간장과 함께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