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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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봉투로 전하는 진심

[서민선 아녜스 작가의 노년을 읽습니다] 32. 박희순 「하얀 봉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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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봉투에 담긴 그것은
돈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이제 더 이상 어머니에게
봉투를 드릴 수 없다




시골 마을에 사는 주인공 옥자씨는 동네 사람들과 경로당에 모여 일상을 주고받으며 산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을에 멋들어진 한옥이 들어서더니 세련된 서울 할머니와 말쑥한 자식들이 드나들기 시작한다. 어버이날, 경로당에서는 돈 봉투와 선물과 카네이션이 자연스럽게 오고 간다. 누구는 무엇을 받고 누구는 해외여행을 가고, 보고 듣고 있자면 은근히 속이 상한다.

와중에 서울 할머니 순애씨는 멋들어지게 챙김을 받는다. 질투와 부러움에 마음이 불편한 옥자씨는 기어이 자식들에게 화를 내고야 만다. 다른 집 자식들은 어버이날이라고 선물 사다 나르고 난린데, 내 자식들은 왜 그러지 않느냐고. 용돈 많이 줄 것 아니면 오지 말라고. 시니어 그림책 「하얀 봉투」 속 이야기다.

어버이날이 뭐라고, 부모는 선물과 봉투와 카네이션을 기다린다. 그것들은 자식들과 함께 오기도 하고 그것들만 오기도 한다. 모든 선물은 자식들과 함께 와야 제맛이지만 자식들이 오지 못하고 선물만 온다면 이왕이면 크고 좋은 것이었으면 싶다. 그래야 다른 노인들에게 자랑할 수 있으니까.

돌아가신 할머니의 생신 파티에 따라갔던 기억이 난다. 칠순 때였던 것 같다. 엄마와 아빠가 떡과 고기와 과일 등을 준비했고 손주들이 실어 날랐다. 할머니는 장성한 손주들을 대동해 음식이 가득 담긴 소쿠리들을 들고 노인회관 문을 기세등등하게 열어젖혔다. 음식을 그릇에 담아 나르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고 있자니 할머니가 우리 이야기를 하는 게 들렸다. “저 가시내가 근홍이 작은 딸인데, 서울대 다닌당께.”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는 나는 어느샌가 서울대에 다니는 손녀가 되어 있었고, 말썽꾸러기 사촌 동생은 듬직한 장손이 되어 있었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다 들리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신나게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아니, 들려도 아무 상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이런 곳이 있구나. 그리고 난생처음 알았다. 나는 할머니의 자랑이구나. 할머니는 이곳에서 자랑하는 맛에 사는구나. 자랑의 진실보다는 자랑의 횟수가 더 중요하고, 효도받고 싶은 마음이 날것으로 표출되는 공간. 「하얀 봉투」 속 경로당이 딱 그런 곳이었다.

결혼해서 챙겨야 하는 부모가 두 배가 되었을 때, 각종 기념일과 명절이 되면 마음은 무겁고 몸은 바빴다. 처음엔 이런저런 선물을 직접 알아보고 고르고 사러 다녔지만 점점 게을러졌고, 나중엔 돈으로 드리는 것에 익숙해졌다. 얼마의 돈을 넣어야 하나 매번 고민했지만, 항상 돈으로 하는 효도가 제일 쉽다는 결론을 내리고 조금 더 넣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화장대 서랍에 각양각색 봉투들을 상비하면서, 솔직히 부모에게 주는 돈이 세금 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돈을 만들기 힘들 때면 한 번쯤 건너뛰면 안 될까 진심으로 고민하기도 했다.

하얀 봉투에 넣어 부모에게 건네는 돈, 그것의 진정한 의미는 코로나 때 알았다. 부모의 생일에 모이지 못했고 친구의 부모가 돌아가셔도 조문하지 못했다. 할 수 있는 건 돈뿐이었다. 돈이란 생각보다 매우 진심이 담긴 선물일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한 통화의 전화, 애정이 담긴 메시지, 그런 것으로는 절대 충분치 않았다. 돈이라는 것은 마음이 담긴 귀한 것이었다. 돈 말고 다른 것들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는데, 결국 돈이었다.

순애씨에 대한 질투로 애가 끓던 어느 날, 옥자씨는 마냥 부러웠던 그 집의 참모습을 알게 된다. 하하호호 즐거워만 보이던 순애씨네 가족이지만, 사실 잘난 자식들은 재산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서로 더 달라고, 이미 준 것도 모자라 집을 담보 잡아 돈을 더해 달라고 생떼를 부리는 중이었다. 반면 마을에서 가장 쓸쓸하고 외로워 보였던 두순씨를 찾는 것은 이제 막 사회인이 된 손자 한 명뿐이다. 두순씨는 가슴팍에 빈약하게 달린 카네이션 한 송이로도 충분하다면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그 속에서 옥자씨는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된다. 많이 주지 못해 놓고 많이 받고 싶어 하는 본인의 욕심이 후회됐고 그저 자식과 손주가 너무 보고 싶었다.

어린이날이면 옆집 어린이는 무슨 선물을 받았나 내 선물과 비교하던 마음은, 어버이날 옆집 노인은 무엇을 받았나 내가 받은 것과 비교하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어린이날이면 무슨 선물을 해줄까 설레던 마음은, 어버이날이면 돈을 얼마나 드려야 하고 식사는 어디로 예약해야 하나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바뀐다. 받다가 주다가, 주다가 받는다. 가족을 중심으로 본 이 시대 인간의 일생이다.

돌아가신 시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드린 생신 선물도 돈이었다. 어머니는 필요 없으니 너 가져다 쓰라고 몇 번 사양을 한 후, 온몸으로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봉투를 받았다. 요양병원에서 먹고 자고 치료받고. 바깥출입을 못 한 지 1년이 훌쩍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그 안에서 돈을 어디에 쓸까. 쓸 곳 없는 용돈이지만 어머니도 나도 알았다. 하얀 봉투에 담긴 그것은 돈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이제 더 이상 어머니에게 봉투를 드릴 수 없다. 봉투를 마음껏 드릴 수 있었던 그때가 참 호시절이었음을 이제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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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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