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6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명도회’ 모임에 집 내어준 형제, 순교로 복음 증거

[한국 교회 주역, 청년들] (33) 복자 김이우·김현우 형제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김범우의 배다른 동생 복자 김이우(왼쪽)·현우 형제는 자신들의 명례방 집을 명도회 ‘육회’ 모임 장소로 제공하며 복음 선포에 앞장섰다. 김이우·김현우 복자화.


1794년 12월 말 조선에 들어온 중국인 주문모 신부는 교우들을 조직적으로 사목하기 위해 중국 교회가 운영하던 ‘명도회’(明道會)를 1797년께(1799년 초라는 주장도 있음) 도입했다. 성모 신심을 기반으로 한 명도회의 주요 활동은 전례와 교리교육, 전교, 죽음이 임박한 이들에게 대세를 베푸는 일 등이었다.

조선 후기 이 땅에 선포된 복음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넘어 ‘사회 복음’이었다. 개인의 믿음뿐 아니라 조선 사회의 관습과 체제를 뛰어넘는 ‘새 하늘 새 땅’의 징표로 복음이 선포됐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신앙 공동체 안에서 신분을 뛰어넘어 서로를 돌보며,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 복음이 스며들도록 열린 환경을 만드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초기 조선 가톨릭 신앙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회 복음으로 확산시킨 조직이 바로 명도회였다.

명도회는 회장과 6개 소공동체 곧 ‘육회’(六會)로 조직, 운영됐다. 초대 회장은 복자 정약종(아우구스티노)이었고, 육회는 한양 창동 홍필주(홍문갑, 필립보)의 집, 송현 홍익만(안토니오)의 집, 아현 황사영(알렉시오)의 집, 사창동 김여행의 집, 회현 현계흠(플로로)의 집, 그리고 알 수 없는 한 집이었다.(「추안급국안」 1801년 10월 9일 황사영 공초 참조) 양업교회사연구소 명예소장 차기진 박사는 수원교구 「윤유일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의 시복 자료집 1집」에서 황사영이 진술한 ‘알지 못하는 한 집’을 명례방 김이우(바르나바)의 집으로 추정했다. 그의 집에서 명례방 모임이 정기적으로 열렸기 때문이다.

명례방 모임은 매달 7일에 육회에서 열렸다. 주 신부는 육회를 돌며 미사와 성사를 집전했다. 명도회원으로는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김건순(요사팟)·김한빈(베드로)·윤유일(바오로)의 숙부 윤현·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최창현(요한)·최필공(토마스)·최필제(베드로)·정인혁(타대오)·정광수(바르나바)·강완숙(골룸바)·윤운혜(루치아)와 정조의 이복 동생 은언군 이인의 부인 송 마리아, 은언군의 장남 상계군 이담의 부인 신 마리아 등이 있었다.


김범우의 이복 동생들, 맏형 따라 입교

이번 호에 소개할 인물은 숨겨진 육회의 마지막 인물 김이우(바르나바, ?~1801)와 그의 동생 김현우(마태오, 1775~1801)이다. 이들은 하느님의 종 김범우(토마스)의 배다른 동생들이다. 아버지 김의서는 세 번 혼인했다. 첫째 부인 전주 이씨와 둘째 부인 연안 이씨가 자식 없이 죽었고, 셋째 부인 남양 홍씨 사이에서 범우·형우·관우·적우 4형제와 딸 한 명을 낳았다. 또 첩 사이에 이우·현우(순우) 형제와 딸 한 명을 뒀다. 8남매 중 장남 김범우와 이우·현우 세 형제만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인이 됐다. 김범우와 막내 김현우는 21살이나 차이가 났다. 김이우·현우는 어릴 적부터 의지하고 따르던 맏형 김범우에게 10대 때 가톨릭 교리를 배웠고 이승훈(베드로)에게 세례를 받았다.

1785년 3월 을사 추조 적발 사건으로 맏형 김범우가 단양으로 유배된 후 그곳에서 순교하자 두 형제는 큰 충격을 받고 숨어서 조용히 신앙생활을 했다. 이들 형제에게 김범우의 빈자리를 채워준 영적 형님이 바로 현계흠이다.


주문모 신부와의 인연 계기로 명도회 활동

경주 김씨 김범우 집안과 천녕 현씨 현계흠의 가문은 혼인으로 겹겹이 관계를 맺어왔다. 김의서는 네 아들 중 첫째 김범우와 둘째 형우, 셋째 관우의 부인이 모두 천녕 현씨이다. 그중 현계흠의 숙부인 현재연은 두 딸을 김범우, 김관우와 나란히 혼인시켜 겹사돈을 맺었다. 따라서 현계흠은 김범우의 사촌 처남이다. 현계흠은 김범우가 순교한 후에도 김이우·현우의 집을 왕래하며 그들을 신앙으로 이끌었다.(정민,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 680쪽 참조)

현계흠의 지도로 두 형제는 최필공·최필제·정인혁 등과 함께 자주 기도 모임을 하고 교리를 공부했다. 형제는 1795년 홍필주의 집에서 주문모 신부를 만났고, 이것이 인연이 돼 신분이 발각된 주 신부를 자신의 집에 숨겨줬다. 이러한 친분으로 주문모 신부가 명도회를 설립했을 때 김이우·현우 형제는 명도회원으로 활동했고, 그의 명례방 집은 육회의 한 거점이 됐다.

현계흠·이합규·손인원·정인혁·오현달 등은 달마다 7일이면 김이우·현우 형제의 명례방 집에서 명도회 모임을 했다. 주문모 신부는 때때로 이 모임에 참석해 미사와 성사를 집전했다. 미사가 봉헌될 때면 김이우의 집 아래 사랑 벽장 속에 감추어뒀던 주님 성화를 꺼냈다. 또 교리 공부가 있는 날이면 남교우들은 방에서, 여교우들은 밖에서 창문 틈으로 새나오는 교리 내용을 들으며 자신들의 부족한 신앙 지식을 채웠다.


‘빛나는 십자가’ 인도 따라 순교의 길로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마자 김이우·현우 형제는 체포돼 포도청으로 끌려갔다. 형제가 포졸들에게 잡혔을 때 찬란하고 커다란 십자가가 나타나 앞에서 옥으로 가는 길을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둘은 혹독한 문초와 형벌을 받았다. 형제의 집이 교우들의 모임 장소였고, 주문모 신부를 숨겨준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포도청은 형제에게 그간의 행적을 엄하게 추궁했다.

김이우는 여러 차례 가혹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신앙의 힘으로 이겨냈고, 결국 1801년 7월(음력 5월) 포도청에서 곤장을 맞고 순교했다. 동생 김현우는 사형선고를 받고 1801년 7월 2일(음력 5월 22일) 강완숙·김연이(율리아나)·강경복(수산나)·한신애(아가타)·문영인(비비안나)·최인철(이냐시오)·이현(안토니오)·홍정호 등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그의 나이 26세였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08-26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8. 26

2역대 19장 7절
그대들이 주님을 경외하기를 바라오. 명심하여 일하시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