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 시인의 특별하고 평범하게] (33) 둘째와 야구장에 다녀오며
사춘기 둘째 딸과 같은 취미를 가질 수 있을까. 아이는 가끔 일본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이나 게임 유튜브의 짧은 영상을 눈앞에 들이밀며 함께 보자고 권한다. 나는 보는 시늉은 하지만 도통 무슨 재미와 뭔 의미인지 알 수 없어 오래가지 못한다. 아이도 내가 보는 것에 대해 마찬가지겠지. 그렇다고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함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화 취향도 이제 너무 달라졌다. 이번 주말에도 나는 ‘오디세이’를 보고 싶었고 아이는 ‘귀멸의 칼날’을 더 원했다. 협상은 결렬됐고 영화관행은 취소되었다. 방학 동안에 각자 소설을 읽고 글쓰기가 어려우면 말로라도 독후감을 나누자고 했건만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이건 순전히 아이 잘못은 아니고, 아빠인 내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책을 읽지 않은 탓인데, 그렇다고 녀석이 책을 읽은 것 같지도 않으니 공동 책임이라 하겠다. 독서를 강요하기에 이 세상엔 재미있는 것들이 요즘 많기도 많은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번 여름 같은 취미를 만들었다. 바로 프로야구 직관. 별로 외출하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를 가까스로 설득해 인천까지 나섰는데, 응원하는 팀이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가는 길에 간단히 야구 규칙도 설명해줬는데, 알고 보니 더 재미있다고 했다. 거기에 응원가와 응원 동작도 모두 신이 났다고. 그날따라 외야석에 앉은 우리 근처로 홈런이 몇 개 나와서 그런지도 모른다. 기아 타이거즈 김호령 선수가 눈앞에서 슬라이딩 캐치를 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아이는 김호령 이름이 박힌 유니폼을 샀다.) 그보다는 집에 있으면 엄마가 못 먹게 하는 컵라면과 콜라도 맘껏 먹을 수 있었기에 더 좋았을 수도 있다. 어쨌든 아이는 그날 이후 야구에 빠져버렸는데⋯.
나도 아주 어릴 때부터 야구를 봤다. 내 아이와 마찬가지로 아버지 때문이었다. 광주 무등경기장에 두어 번 함께 갔고, 주말에 TV 중계를 할 때면 같이 보았다. 야구는 인생과 같다는, 하나마나 한 말을 자주 들었다. 업 앤드 다운이 있다는 점에서는 일정 부분 맞다.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나는 그다지 안정적인 인간이 아니라서, 좋을 때 환호하고 나쁠 때 좌절한다. 야구는 매일매일 하므로 매일같이 환호하고 좌절한다. 좌절이 너무 잦을 때는 야구를 좋아하게 된 순간을 원망하기도 했다. 아버지와 무등경기장에서 선동열을 처음 본 그날이었을 것이다. 야구가 좋을 때는 그런 순간을 구태여 떠올리지 않는다. 지금의 즐거움을 즐길 뿐이다. 확실한 사실은 야구가 없었다면 덜 즐거웠을 거란 것.
내 사춘기 아이도 앞으로 그러할까? 지는 날은 나를 원망하고 이기는 날은 그저 즐거울까? 단지 그뿐이라도 괜찮겠지만, 우선 지금은 아이와 함께 취미를 즐기는 내가 좋다. 지난 주말에는 당일치기로 광주에 다녀왔다. 밤늦은 운전을 하면서 옆자리에 얕은 잠에 든 아이를 힐끗 보았다. “야구, 몰라요”라는 격언이 있다. 인생도 모르긴 매한가지. 곧 중학생이 될 녀석과 야구장에 계속 자주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일단 함께하는 지금을 즐기자. 물론 이러한 생각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날 우리가 응원하는 팀이 이겨서다. 졌다면 좀 달랐을 것이다. 야구가 원래 그런 것이다.
서효인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