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마지막 주 수요일, 독서 모임을 하기 위해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백운호수로 향했다. 거리가 좀 있지만, 집에서 가장 가까운 교외인 백운호수, 그곳에서 독서 모임을 할 생각에 2~3주 전부터 꽤 설레었다. 1년 전 독서 모임을 시작한 우리 6명은 삼복더위에 700쪽에 달하는 벽돌책을 읽은 후 그곳에서 모이기로 했다. 독서에 진심이기에 가능한 계획이다.
구성원들의 나이는 다양하다. 40대 초반부터 50대 중반까지. 살아온 경험도 지금 하는 일도 사는 모습도 다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같은 것을 가졌다. 바로 독서하는 눈, 그것이다. 나는 책 이야기는 끝없이 할 수 있다. 작가 이야기도 출판사 이야기도 책을 원작으로 한 영상물에 대한 이야기도. 책에 심드렁한 사람들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매우 김이 빠진다. 뭔가 시작도 안 했는데 상대방이 지루해하는 것이 공기에서 느껴진다. 하지만 이들과 있을 때는 안 그렇다. 우리는 무궁무진하게 생산적이 된다. 어떤 날은 안부 인사만 나누었는데도 1시간이 훌쩍 가버린다. 함께 읽은 책이 쌓여 갈수록, 만난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는 담쟁이 넝쿨처럼 엮여 단단하고 풍부해진다.
어느 날 한 출판사 홈페이지에 눈이 가는 포스팅이 올라왔다. “독서모임 회원 모집합니다.” 그런데 조건이 매우 흥미로웠다. ‘평균 나이 85세’ ‘지병 있으신 분 환영’ ‘남의 말 안 들어도 됨’ ‘자기 이야기만 해도 됨’ ‘책 좋아하면 더 좋음’. 이것이 신간 「읽고 읽고 말하다」를 홍보하는 카드뉴스인 것을 바로 알았지만, 순간 마음이 설레었다. 내 취향에 이보다 더 꼭 맞을 수가 없었다. 아마 많은 이가 진짜 독서모임 멤버 모집 광고인지를 확인하는 문의 DM을 보냈으리라.
본격적으로 책장을 펼치니 책은 광고보다 더 흥미로웠다. 「읽고 읽고 말하다」는 무려 20년째 이어지는 독서모임에 관한 이야기였다. 현재 평균 나이 85세이니 20년 전이라면 65세에 시작한 모임이 아닌가. 20년 동안 함께 읽은 관계란 어떤 관계일까. 책 속에서 멤버들이 읽는 책 제목은 「아무도 모르는 작은 나라」. 나는 그 책 또한 궁금해서 바로 주문했다. 모름지기 책 덕후의 삶은 이렇다. 책 속의 책, 책 속의 유니버스까지 궁금해하고 그걸 현실 세계로 가져온다.
독서모임의 이름은 ‘언덕 중간에서 책을 읽는 모임’이다. 이 또한 의미가 있는데,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 언덕에서 읽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산을 힘겹게 올라가다 언덕 어딘가에 앉아 쉬면서, 올라온 경치를 바라보면서 읽는 모임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하산하는 길에 내려가는 몸과 마음을 잠시 쉬며 책을 읽는 모임이었다.
책의 시작은 오랜만에 재개된 독서모임 날 정경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장기간 쉰 후 다시 시작된 독서모임 날, 신규 멤버로 20대 책방 직원 야스다가 영입된다. 최연소 직원인 그의 눈으로 본 20년 차 독서모임 분위기는 그야말로 해사했다. 서로 자기 말만 하고 남의 말은 안 듣고 웅성웅성 왁자지껄한 그들. 간식 당번을 정한 것이 무색하게 너도나도 음식을 풀어놓고, 만나는 시간은 왜 정했나 싶게 1시간도 더 일찍들 모인다. 그리고 “안 들려도 들리는 척 합시다”라는 문제적 말을 해서 야스다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는다. 아마도 야스다가 ‘아, 이 노인들 너무 유쾌하고 유머러스하잖아’라고 속으로 생각했을 것만 같다. 책을 읽을수록 그들의 그 두서없고 떠들썩한 읽기 모임이 눈앞에 그림처럼 그려지면서 마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해사하게 노년을 통과하는 중인 그들의 소리가.
그런데 사실은 멤버 중 누구 한 명이 언제고 먼저 갈지도 모르는 상황, 그것이 그들의 일상이다. 모임 구성원들의 나이가 그 사실을 잊지 않게 한다. 아슬아슬한 위기감을 온몸으로 느끼는 하루하루지만 그들은 만나서 늘 하던 방식으로 읽고, 말하고, 그 와중에 죽음에 대해 사색하고 철학한다. 그들은 죽음이 무서워서 큰 소리로 울기도 하고, 그 절망감을 농담 섞어 시니컬하게 뱉어버리기도 하고, 아쉬운 마음을 서로 달래기도 한다. 진솔하고 담대하다. 언제고 부르면 가야 한다고 반복해 말하며 연습하지만, 실제 그런 일이 닥치니 모두 얼어붙는다. 슬프다.
소설 속 화자인 야스다는 책 속 책 「아무도 모르는 작은 나라」를 그들과 낭독하고, 해석하고, 감상하면서 함께 읽는 것의 의미를 생각한다. 그 깊이와 맛에 대하여. 그걸 읽는 나 또한 그럴 기회를 갖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죽을 운명의 당사자인 우리는 죽음의 본질에 대해 철학하기보다는 외면하고 멀리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독서모임을 하는 사람들이란 본질적으로 이야기와 사색에 길든 사람들이다. 그러한 속성을 가진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자신들이 하던 방식으로 삶을 꾸리는 것 그리고 죽음에 대한 담론을 펼친다는 것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노년에는 많은 것을 버리고 간소화해야 하며 쇠약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끌고 가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나에겐 읽고 쓰는 것 그리고 같이 읽는 것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 같다. 끝까지 한번 끌고 가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