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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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요비 주교의 생활속의 복음]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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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작 ‘해 질 무렵의 형제들’.


저는 신학생 시절 윤리신학을 공부하며, 성경을 통하여 계시된 여러 계명이 하느님의 영원한 법을 이루고 있음은 자명한데, 자연법(自然法)도 신법(神法)에 속한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자연법은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부여하신 지성의 빛입니다. 이 빛을 받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창조 때에 인간에게 이 빛과 법을 주셨습니다.”(토마스 아퀴나스)
이는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은 그분의 창조 질서와 구원 계획을 올바로 깨닫고 이에 참여함으로써, 그 뜻이 세상과 역사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협력하는 존재임을 잘 보여줍니다. 이 세상과 우주 만물 안에 하느님의 법과 질서가 아로새겨져 있고 인간은 이성의 빛으로 그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과 손길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 예언자의 사명과 역할이 이 지점에서 이루어졌습니다.(에제 3,17 참조) 예언자의 말씀은 단지 인간의 죄와 과오에 대한 하느님의 징벌과 질책을 전달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나와 너’의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고, 인간의 회심과 개과천선을 바라시는 애정 어린 하느님의 호소입니다. 이렇듯이 하느님은 단지 당신의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을 당신의 파트너로 격상시켜 동등한 존재로 대해 주시는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1요한 4,17 참조)

그러므로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구체적 규범인 율법도 사랑이어야 하며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로마 13,10 참조)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외아들로서 하느님의 사랑을 살아가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오늘 복음에서 설명해 주십니다.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마태 18,15–17)
죄란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피조물에게로 향하는 것’이라고 할진대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이웃이 나에게 죄를 지은 경우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그 죄가 어떠한 것이든 나에게 해를 입힌 사람들의 불의와 잘못을 나의 주관적이고 세상적인 규범으로 판단하고 단죄하고 처벌하려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나 자신이 먼저 하느님의 생각과 마음을 깊이 헤아리고 그분 사랑의 본성 안으로 들어가 머무름으로써 그분을 대신하여 그분의 심정으로 나에게 죄지은 사람을 대하라는 사랑의 초대입니다.

이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의 본성 안에 새겨져 있기에 자녀들인 우리는 이 내면의 사랑을 계속 키우고 활짝 꽃피워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하여 예수님은 공동체적인 기도의 위력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십니다.(마태 18,19–2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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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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