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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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방송 따라하는 나홀로 여행객

[서효인 시인의 특별하고 평범하게] (35)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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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지방 출장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늦은 저녁까지 일을 마치고 밤 10시가 다 된 시간에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렸다. 갑자기 피곤이 몰려와 어딘가에 앉고 싶었지만 자리가 없었다. 오도카니 서서 도착할 기차를 기다리는데 바로 한 청년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중얼거린다기에는 필요 이상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서울행 KTX 열차, 곧 도착합니다. 서울행 KTX 열차, 곧 도착합니다. 승객 여러분은⋯.” 가만히 들어보니 그는 역의 안내방송을 따라 하는 중이었다.

왜 그러는지, 과연 그의 안내방송이 상황에 맞는 것인지 궁금해 더 귀를 기울이니 그는 단순히 방송 음성을 따라 하는 게 아니라 나름의 안내를 스스로 하는 것이었다. ‘참 희한한 취미가 있군’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그의 얼굴을 슬쩍 보았다. 그의 시선은 흔들렸고, 무언가 불안한 듯 두리번거렸다. 손도 가만두지 못하고 짧은 범위지만 자꾸만 휘적휘적 움직였다. 그리고 안내 방송하듯 반복해 말했다. “열차가 도착했습니다. 열차가 도착했습니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그가 자폐 스펙트럼 청년임을. 어쩌면 발달장애인 청년일지도 모를 그는 대견하게도 홀로 여행 중이었던 게다. 무슨 용무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하다 싶었다. 안내방송을 하는 건 그의 특이 행동인 듯싶었다. 그러나 누구에게 크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니었다. 크게 소리를 지르는 것도 아니었고, 계속되지도 않았다. 다만 열차가 서고 출발할 때마다 그는 말했다. “우리 열차 이제 곧 동대구역에 도착합니다. 우리 열차 이제 곧 대전역에 도착합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가 장애인임을 알고 되레 반갑기까지 했다. 동시에 조금 걱정도 들었다. 주변에서 불편해하면 어떡하지. 누군가는 저 소리가 싫을 수도 있을 텐데.

역시나 역무원이 한두 번 와서 그에게 주의를 줬다. 청년은 죄송하다고 말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 다음 역이 되면 참지 못하고 아까보다는 작은 목소리로 제 할 일을 했다. “우리 열차 천안아산역에 도착했습니다.” 화장실에 가려고, 아니 상황이 궁금해 복도를 지나쳐 청년이 앉은 좌석 근처를 보니 사람들은 다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었다. 별일은 없어 보였다. 왜 내가 나서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모두의 평화를 빌며 우리 열차가 서울역에 닿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다 깜박 잠들었다. 청년의 목소리가 날 깨웠다. 종점이라 지나칠 염려는 없었지만 그래도 고마웠다. 짐을 챙겨 열차에서 내리는 청년 뒤에 섰다. 문이 열리자, 청년의 부모로 보이는 노신사가 보였다. 그는 청년의 가방을 받아 들고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나도 어쩐지 그 친구의 어깨를 토닥이고 싶었지만 애써 참았다. 괜히 집에서 이미 잠들었을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첫째도 혼자서 어디든 갈 수 있을까. 그날이 올까. 그날에 주변 사람들은 아이를 불편해할까. 장해(障害) 할까. 아무렇지 않아 할까.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우리는 함께 기차를 탔고 별일 없이 잘 도착했다. 확실히 우리는 같이 살고 있었다. 삶의 기차를 올라탄 별별 사람으로서, 갖가지 다름을 각자의 짐가방처럼 짊어진 채. 인파 속으로 부자는 사라졌고, 나는 속으로 청년에게 안내방송을 했다. “우리 열차, 잘 가고 있습니다. 부디 무사히 도착하시길.”

서효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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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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