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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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스승’ 어머니와 초기 조선 교회 일구고 순교

[한국 교회 주역, 청년들] (35) 복자 홍필주 필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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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홍필주(필립보)는 새 어머니 강완숙과 함께 주문모 신부를 6년간 곁에서 보필하면서 조선 교회를 성장시킨 청년 순교자이다. 홍필주 복자화.


그리스도교 신앙은 주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라고 고백하는 이 신앙은 교회를 통해 선포되고 전승되고 있다. 더불어 이 신앙을 바탕으로 교회의 모든 가르침이 정립됐다. 그래서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참된 신앙은 그리스도 안에 그 원천을 두며, 교회의 교도권은 그 원천의 수로”라고 강조했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여느 종교의 믿음과 차이 나는 근본은 바로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당신 사랑을 계시하시는 살아계신 하느님과의 만남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신앙은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하느님 사랑에서 주어지기에 단순히 개인의 믿음 차원에만 머물 수 없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삼위일체 하느님 사랑을 근간으로 모든 인간의 삶을 파악하기 때문에 공동체, 곧 교회 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그리스도교 신앙은 모든 이의 공동 선물이다. 모든 이를 위한 하느님의 선물인 그리스도교 신앙은 하느님 사랑을 세상 안에 실천하는 것이므로 근본적으로 인류의 공동선에 이바지한다.

이번 호에는 조선 왕조 치하 박해 시기에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신뢰로 신앙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복자 홍필주(필립보, 1774~1801)를 소개한다.


신앙 이유로 쫓겨난 어머니 따라 한양행

홍필주는 충청도 덕산 별라산 출신이다. 아버지 홍지영은 영의정을 지낸 홍낙성의 5촌 서조카로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7촌 서조카가 된다. 또 복자 홍낙민(루카)과도 먼 친척뻘이다. 아명은 ‘문갑’(文甲)이다.

홍지영은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에게 교리를 배워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는 자신의 집에 그리스도인들을 받아들여 별라산 신앙 공동체를 이끌었다. 하지만 달레 신부는 「한국천주교회사」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부인 강완숙(골룸바)를 쫓아낸 우유부단한 인물로 홍지영을 묘사한다.(상권 384쪽 참조) 홍지영이 강완숙의 빈자리를 첩으로 채웠고, 그의 어머니 유 아녜스와 아들 홍필주, 강완숙 사이에서 낳은 딸 홍순희가 자신을 두고 강완숙을 따라 한양으로 간 것으로 보아 달레 신부의 판단이 옳은 듯하다.

홍필주는 새 어머니 강완숙(골룸바)에게 가톨릭 교리를 배워 그리스도인이 됐다. 홍필주는 1791년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이 제사를 폐하고 신주를 불태운 ‘진산 사건’으로 ‘신해박해’가 일어나자 박해를 피해 1793년 어머니와 할머니를 따라 한양으로 이주했다.


‘주문모 신부’ 보배처럼 여기고 섬겨

홍필주는 강완숙의 철저한 신앙 교육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하느님께서 주신 가장 소중한 선물로 받아들여 영적으로 성장해갔다. 무엇보다 그는 1795년 5월 배교자 한영익의 밀고로 체포령이 떨어진 주문모 신부가 자신의 집으로 몸을 숨기자 그의 복사로 조용히 활동했다. 더불어 그는 홍익만(안토니오)의 딸과 혼인해 어머니 강완숙을 도와 동정녀 공동체를 돌보고, 정약종(아우구스티노) 등 지도층 교우들과 교류하면서 교회 조직을 안정적으로 다져가는 데 힘을 보탰다.

홍필주의 한양 충훈부 후동 집은 1794년 말 조선에 입국한 주문모 신부의 거처로 사용하기 위해 황사영(알렉시오)·김계완(시몬)·김이우(바르나바)·이취안 등이 100냥씩을 내놓아 마련한 안전 가옥이었다. 그는 이 집에서 어머니 강완숙과 할머니 유 아녜스, 여동생 홍순희, 처와 처형, 조카딸과 함께 살았다. 그리고 주문모 신부뿐 아니라 동정녀 윤점혜(아가타)·정순매(바르바라) 등 최소 20여 명이 그의 집에 상주하며 신앙 공동체를 이루었다.

홍필주는 이 집을 근거지로 주문모 신부가 자수해 순교할 때까지 6년간 주 신부를 보필했다. 주 신부가 지방으로 사목 방문을 떠날 때도 동행했다. 특히 1800년 12월부터 3개월간 그는 폐병을 치료한다는 핑계로 집을 떠나 주 신부가 이집저집 옮겨 다니며 몸을 숨길 때 그의 곁에서 수발을 들었다. 그는 주 신부를 얼마나 존경했으면 체포돼 심문당할 때 “주 신부를 보배처럼 보아 아버지처럼 섬겼다”고 진술했다.


어머니와 같은 자리에서 순교

1801년의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홍필주는 일찍부터 체포 대상이 됐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포졸들이 그의 집에 들이닥쳤고, 어머니 강완숙을 비롯한 가족과 함께 체포됐다.

포도청으로 끌려간 홍필주는 혹독한 형벌을 받으면서도 주 신부의 행방과 그와 관련한 그 어떤 것도 실토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혹한 고문이 지속되자 그는 배교하겠다고 관장에게 밝혔다. 때마침 심문을 받기 위해 끌려 나온 강완숙이 이 광경을 보고 홍필주에게 “필립보야! 네가 어찌 네 머리 위에 예수님이 임하시어 비추고 계심을 못 보고 스스로 그릇된 길로 가려느냐”고 꾸중했다. 강완숙의 나무람에 정신을 차린 홍필주는 즉시 배교를 철회하고 관장에게 “절대로 신앙을 버릴 수 없다”고 고백했다.

이후 홍필주는 1801년 7월 2일 어머니 강완숙이 서소문 밖 네거리 형장에서 먼저 순교했음에도 조금도 마음이 약해지지 않고 신앙을 지켰다. 그리고 3개월 뒤 10월 4일에 어머니가 순교했던 그 자리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그의 나이 27세였다.

복자 홍필주는 주문모 신부를 신앙의 아버지로, 강완숙을 영적 어머니로 섬기며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신뢰 속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죽음으로 고백한 청년 신앙인이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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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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