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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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두 신부의 생활속의 복음] 순교 신앙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루카 9,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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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작 ‘ 성 베드로의 순교’, 1601년.


국민의 생명·안전을 수호하기 위해 헌신한 유공자들, 특히 순국·순직한 이들을 향한 합당한 예우는 국가의 도리다. 애국·애민을 입증한 순국과 같이, 박해 시대의 순교는 처형당함으로 증거한 ‘애교’(愛敎)이며 ‘크고 깊은 신앙’이다. 그런데 형식상 순국과 유사한 양상을 보여주는 순교의 본질은 신앙의 결실인 생명이다.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24) ‘자기 목숨’과 ‘목숨’의 의도적 분리가 암시하듯, 교회가 순교자를 공경하는 근본 이유는 신앙으로 ‘잃은 생명’(자기 목숨) 때문이 아니라 신앙으로 ‘찾은 생명’(목숨) 때문이다.

세례 예식의 도입부에서 예비 신자는 “신앙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줍니까?”라는 집전자의 물음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구원과 생명을 연계한 요한 복음은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17,3)라고 정의한다. 정보 습득과 원리 통달로 오인될 소지가 있는 ‘지혜’(아는 것)를 경계했던 바오로 사도(1코린 1,27 참조)와 달리, 창조하고 구원하는 ‘하느님의 지혜’를 부각하는 지혜서는 ‘신앙이 주는 생명’을 이렇게 표명한다.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3,9)

사람에 대한 신망, 가치에 대한 신념, 사물에 대한 신용, 권위에 대한 신뢰 등 우리말 ‘믿다’(信)에서 파생하는 다양한 의미가 신을 향한 신앙 안에 수렴된다. 신앙인은 ‘예수님의 말씀’(진리)을 믿고, ‘예수님과의 관계’(사랑)를 믿으며, ‘예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선포) ‘말씀하는 예수님을 현존케 하는’(성사) 교회의 권위를 믿는다. ‘신앙이 주는 생명’(하느님을 아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동의’(진리를 깨달음)이며, ‘아들이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아들 안에 있는’(요한 14,10 참조) 성부와 성자의 관계처럼 ‘예수님과의 친밀한 만남’(사랑 속에 있음)이다.

조선 후기 세상의 도(道)나 이치를 새롭게 해명하는 학문인 서학(西學)으로 전래된 천주교는 ‘절대 존재’(신)를 인격적 대상인 ‘아버지’ 혹은 ‘님’으로 소개했다. 세례로 천주교에 입문한 이들은 ‘하느님의 자녀’라는 파격적 신원을 부여받았다. 오늘날과 같은 성경 지식을 접하지 못했던 신앙 선조들은 간단명료하게 집필된 한문 교리서를 기반으로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을 믿으면 생명을 얻으리라는 희망을 강렬하게 품었다.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9) 이 정황을 기존 사회 질서에 대항한 도발로 규정한 위정자들은 천주교인을 숙청하는 박해를 자행하였다.

순교는 죽음으로 입증한 신앙이 아니라 ‘신앙으로 증거한 생명’이다. 순교자는 복잡하지 않은 단순함과 난해하지 않은 명료함을 특징으로 하는 ‘진리’와 계산하지 않은 확고함과 간사하지 않은 순박함을 특징으로 하는 ‘사랑’에 근거하여 ‘하느님 밖에 사는’ 자기 목숨을 내어놓고 ‘하느님 속에 사는’ 목숨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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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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