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30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꿈이 있으니 멈춰있을 수는 없잖아

[서효인 시인의 특별하고 평범하게] (37) 둘째의 일리 있는 걱정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요즘 둘째가 부쩍 미래를 걱정한다. 그 미래에는 진로에 대한 걱정이 포함되어 있다. 거기에 지구와 인류에 대한 걱정도 덧붙여 포함되어 있다.

아이의 별명은 ‘그림 에이스’이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이유로 친구들이 붙여준 거라는데, 초등학생다운 직관성에 웃음이 난다. 별명대로 아이는 그림깨나 그리는 편이다. 좋아하는 만화는 뚝딱뚝딱 따라 그리고, 창의적이라 할 만한 무언가도 한 번씩은 그려 보여준다. 미술학원에 오래 다녔는데, 학원 선생님도 늘 재능이 있다고 칭찬해주신단다. 미술에 문외한이라 소질이 있는지 없는지 내가 알 수는 없지만, 한 반의 ‘에이스’가 되는 재능과 그림으로 삶을 꾸려가는 재능에는 큰 차이가 있음을 알기에 약간은 불안한 마음도 있다. 애매한 재능은 확실한 고통을 수반한다. 어쩔 수 없다. 예술이라는 게 그렇다.

갤러리에 작품을 내거는 화가든, 플랫폼에 웹툰을 연재하는 작가든, 거기까지 이루는 데 재능은 물론 피땀 어린 노력이 필수였을 것이다. 그에 도달한다고 끝이 아니다. 언제나 새로운 걸 만들어야 하고, 언제든 타인의 평가에 놓여야 한다. 탄탄한 재능을 기반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아이가 그 정도로 타고났을까? 그저 남들처럼 국어·영어·수학 열심히 공부해 성적에 맞는 대학에 가고, 졸업할 시기에 맞춰 평범한 직장에 들어가는 게 낫지 않겠나? 예술은 매혹적인 만큼 위험하니까. 안정적인 삶이라는 걸 자꾸 밀어내니까.

아직 초등학생에 불과한 아이를 두고 너무 과한 걱정일지도 모른다. 아이는 다른 게 걱정이다. “앞으로는 AI가 온갖 그림을 다 그린다는데, 내가 AI를 이길 수 있어?” 안타깝게도 아빠인 나는 미술에 문외한임은 물론, 과학기술에는 더 젬병이다. 하지만 나도 듣는 소리가 있다. 정말 그럴는지도 모른다.

이어서 아이가 말한다. “기후위기로 어차피 다 종말이라는 데 내가 노력하는 게 의미가 있어?” 이 또한 그럴듯하다.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 없고, 열심히 하는 게 없고 그리하여 꿈이 없어 문제라는 데 아이들의 꿈을 없애버리는 건 누구인지. 나는 목을 가다듬고 말한다. “그래도 뭐든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지. 미리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그러고는 방금까지 SNS를 뒤적거리는 데 썼던 스마트폰을 슬며시 내려놓는다.

웹툰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하니 내가 그림을 가르쳐줄 순 없고, 소설을 함께 읽자고 했다. 언젠가 웹툰도 소설도 AI가 인간보다 더 잘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언젠가 지구가 너무 더워져 지금의 삶이 더는 유효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인간은 무언가를 하고 있을 것이다. 바로 지금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 그때에도 무언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무언가가 무엇이냐고? 글쎄, 뭐라도 하면서 생각해봐야겠지. 책을 읽거나 달리기를 하거나 분리배출을 꼼꼼히 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무엇보다 이웃을 사랑하면서. 그게 우리에게 남은 가장 큰 재능 같기도 하다.

서효인 시인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09-30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9. 30

히브 9장 11절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이루어진 좋은 것들을 주관하시는 대사제로 오셨습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