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30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순교한 형·누나 따라 조선 교회의 모범이 된 묵상가

[한국 교회 주역, 청년들] (37) 복자 이경언 바오로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복자 이경언(바오로)은 형 이경도(가롤로)와 누나 이순이(루갈다)의 모범을 따라 순교의 길을 기꺼이 걸어간 참 그리스도인으로, 죽을 때까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순명하라고 가르친 묵상가다. 이경언 복자화.


조선 왕조 치하 박해기 날마다 묵상과 삶의 모범으로 세상 사람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가르치는 이가 있었다. 그는 가족들로부터 물려받은 신앙과 애덕의 유산을 보화로 간직하고 형제자매 그리고 친·인척이 걸어간 순교의 길을 기꺼이 따랐다. 이번 호에는 묵상가이자 교회 재건을 위한 성직자 영입 운동을 지원한 복자 이경언(바오로, 1792~1827)을 소개한다.


박해로 몰락한 집안에서 신앙생활에 전념

이경언은 복자 이경도(가롤로)와 이순이(루갈다)의 동생이다. 신유박해로 형과 누나가 순교할 때 그의 나이 9살(또는 10살)이었다. 이경언은 조선 태종 이방원의 서장자 경녕군의 15대손이다. 아버지 이윤하(마태오)는 조선 가톨릭 신앙 공동체 설립 당시 주도적으로 활동했던 인물이고, 어머니 권씨는 권철신(암브로시오)와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여동생이다.

1801년 신유박해로 집안이 몰락한 이경언은 어머니 권씨와 형수(이경도의 부인) 오씨와 함께 가난하게 살았다. 왕족의 후손이었지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가문에서 아무도 그들을 돌봐주지 않았다. 그는 22살에 중인 집안의 한 여인과 혼인했으나 아내의 성질이 고약해 평생 크나큰 괴로움을 감당해야 했다. 어머니와 형수는 가난을 견디지 못해 1815년 충청도 연풍으로 이주했고, 이경언 홀로 남아 신앙생활에 전념했다.

“오직 그리스도인 삶의 본분에만 전념한 그는 외교인들을 신앙으로 권면하여 가르치고, 냉담자들을 고무하고, 이교인들을 회개시키는 데 정성을 기울이면서 교우들 사이에 널리 알려졌다. 자주 병약했던 그는 그의 고통을 나타내 보이지 않았고, 가르치고 권면하면서 종종 밤을 새는 것을 염려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그의 결점들을 그에게 알려줄 것을 청했고, 그에게 이러한 도움을 주는 이들에게 감사를 표했다.”(다블뤼 주교, 「조선 주요 순교자 약전」 63~67쪽 참조)

그는 교회 서적을 필사하고 성화를 제작 판매하면서 생계를 유지했지만, 자신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만나면 아낌없이 가진 것을 나눠줬다. 무엇보다 그는 신유박해로 산산이 무너진 신앙 공동체를 재건하는 데 힘썼다. 가난 속에서도 성직자 영입을 위해 북경을 오가는 정하상(바오로)의 여행 경비를 마련하는 데 앞장섰다.


묵상에 힘쓰며 교우들에게 순교 권면

이경언은 묵상가였다. 그는 늘 성경을 읽고, 깊은 묵상에 빠졌다. 기도하기 시작하면 사람의 왕래를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집중했다. 그를 만난 모든 이가 그에게 마음을 빼앗겼고, 어느 누구라도 그의 말을 무심하게 듣지 않았다.

그의 묵상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이었다. 주님의 십자가 수난을 묵상할 때마다 그는 순교의 열망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교우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조선 전역에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선 우리가 순교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는 만나는 교우들에게 늘 주님을 위해 죽을 준비를 하라고 권고했다.

1827년 전라도에서 정해박해가 일어났을 때 체포된 한 교우가 형벌을 견디지 못하고 교회 서적과 상본을 이경언으로부터 받았다고 진술했다. 이로 인해 그해 4월 21일 이경언은 한양 집에서 체포돼 전주로 압송됐다. 그는 쇠사슬에 묶이고 칼이 씌워진 채 투옥됐다. 다음날 그는 전주 관장 앞에 끌려가 문초를 받았다. 25년 전 누나 이순이가 수차례 문초를 받고 숱한 매질을 당했던 바로 그 장소였다. 그는 보름 이상 반복되는 형벌을 초주검이 될 때까지 받으면서도 형과 누나를 생각하며 그들의 순교 발자취를 따르겠다고 마음을 거듭해서 다잡았다.


신앙의 길 당부하는 편지 남겨

이경언은 전주 감영 옥에서 어머니와 가족, 아내, 명도회 회원에게 보내는 3편의 편지를 썼다. 그는 순교를 앞두고 어머니와 형수 그리고 아내와 자녀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몇 발자국 따라가게 해주고, 또 제 형님과 누님의 전구로 그분들의 뒤를 따라가게 해주시니 너무 슬퍼하지 말고 오히려 이 은총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십시오”라며 청했다. 더불어 그는 “매사에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고, 지난날의 모든 잘못을 뉘우치며, 남아있는 날들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하느님 앞에, 성교회 앞에 영광스럽게 살아달라”고 당부했다.

이경언은 명도회원들에게도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 이 세상의 불행을 두려워 말고 모든 힘을 써서 하느님의 집을 보존하는 것은 물론이오 확장하도록 애쓰십시오. 교우들을 굳건하게 지키면서 천주교가 꽃피우도록 일하십시오”라고 권고했다.

이경언은 형벌로 인한 몸의 상처가 너무 깊어 며칠 동안 의식이 없었다. 1827년 6월 27일(음력 윤 5월 4일) 겨우 의식이 돌아온 그는 함께 옥에 갇힌 교우들에게 다음과 같이 유언을 남기고 순교했다. 그의 나이 35세였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몸이 제 몸보다 틀림없이 더 강하지 못했을 터인데 올리브 동산에 피땀을 흘리셨고, 채찍질을 당하셨으며, 당신 십자가를 지고 산꼭대기까지 천 걸음도 더 되는 길을 걸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도 그분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어떤 교인도 그를 도우러 오지 않았는데, 저 같은 큰 죄인에게 사람들이 도우러 오고 또한 제게 의식이 되돌아오게 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니 제가 얼마나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까?”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6-09-30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9. 30

3요한 1장 2절
사랑하는 이여, 그대의 영혼이 평안하듯이 그대가 모든 면에서 평안하고 또 건강하기를 빕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