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 시인의 특별하고 평범하게] (38) 추석, 고향으로 향하며
몇 해 전부터 첫째는 명절마다 컨디션이 안 좋아진다. 우리 가족은 설이고 추석이고 다름없이 자차로 고속도로를 이용해 고향에 가는 고행을 감행하는데, 아기일 때는 잘 견디던 아이가 되레 좀 크니 멀미에 시달리는 것이다. 경기 남부에 들어서면 점점 안 좋은 신호를 보내는데, 서해안고속도로에 올라타 행담도 휴게소를 지날 때 절정이 된다. 지난 설에는 한바탕 구토하기도 했다. 아침 일찍 출발하느라 먹은 것도 별로 없는데, 아이가 게워 낸 걸 치우면서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열차를 예약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방에서 수도권에 올라와 자리 잡은 이라면 모두 알다시피 명절 차표 예약이라는 게 상당한 순발력과 운을 요구한다. 심지어 온 가족이 탈 수 있도록 네 자리를 한꺼번에 예약하는 일은 나로서는 엄두 내지 못할 일이다. 매해 명절 용산역이나 서울역에서 아이들 손을 잡고 뉴스 인터뷰에 응하는 가장을 볼 때마다 나는 그 비결을 묻고 싶었다. 열차를 탄다고 해도 문제는 있었다. 같은 지역이지만, 본가에서 처가로 이동하는 열차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결국 운전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결론은 정해져 있다. 일고여덟 시간 운전해서 가거나, 가지 않거나. 후자를 택한 적은 거의 없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으면 귀향을 생략하고는 했는데, 아쉽게도 피치 못할 사정이란 게 자주 생기지는 않았다. 아이는 멀미하고, 차는 막히고, 체력은 점점 달리고, 기름값은 오르고⋯. 이게 고향행인지 그저 고행인지 모를 일이다.
본래 이렇게까지 툴툴댔던 건 아니다. 첫째의 멀미가 참고 담아왔던 불평을 폭발시킨 것이다. 멀미약을 먹으면 조금 덜했으나 얼굴빛이 창백해지는 건 마찬가지였다. 차가 막히지 않아 제 속도로 달리면 그나마 괜찮았지만, 교통 상황이 안 좋아지면 여지없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다행히 구토는 하지 않았으나 끙끙 앓는 소리가 뒤에서 들리니 운전하면서도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내가 아이와 같은 나이일 때 나는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긴 거리를 이동할 필요는 없었다. 할머니 음식은 평소에 먹을 수 있었으니 특별한 건 아니었다. 고향에 살았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고향을 떠나 수도권에 정착한 신도시 주민이 되었고, 아이들은 졸지에 차를 타고 몇 시간이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아, 마음을 편히 먹어야 하는데 또 불평을 늘어놓고 있다.
올해 추석은 연휴 전날 오후 2시에 출발해 8시에 도착했다. 연휴 전이라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그래서 멀미도 덜했던 것 같다. 아이 할머니는 여전히 아이를 반겨주었다. 아이는 피곤한 듯 굴다가 도착하니 금세 괜찮아져 할머니가 차려놓은 갈비며 잡채, 육전 같은 걸 잘도 먹는다. 어머니도 오랜만에 보는 아이들이 반가운 것 같다. 이 음식은 혼자 또 언제 해놓은 건지 싶다. 작년보다 허리가 살짝 더 굽은 것도 같고, 주름도 더 생긴 것 같고⋯. 하긴 몇 개월에 한 번씩 만나니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한다면 둔감한 아들이겠지.
세상은 이런 사람더러 불효자라 부른다. 불효자인 나는 고향집에서 기다리는 부모님은 잘 모르겠고 내 아이의 멀미만 예민하게 신경 쓰인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어쩔 수가 없네요. 불효자는 웁니다⋯’가 아니라 불평한다. 이렇게 이번 추석도 궁시렁궁시렁 지나가고 말았다.
서효인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