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 시인의 특별하고 평범하게] (39) 첫째에게 질문을 던지며
첫째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이 “아니야”다. 다른 말도 하긴 하지만 그 말만큼 정확한 발음으로, 빠르게 반응하지는 않는다. 화장실 다녀올래? 아니야. TV 그만 볼까? 아니야. 김치도 먹어볼래? 아니야. 옷 갈아입을래? 아니야. 무슨 질문이든 입도 뻥긋하지 않고 몸과 표정으로 답하던 시기보다야 낫지만, 좋은 소리도 한두 번이지 심히 짧은 부정문을 연달아 듣고 있자니 슬슬 약이 오른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본다. 버블잼(요즘 좋아하는 TV 애니메이션 캐릭터) 볼까? ⋯. 아니야, 라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긍정의 답도 하지 않은 채 나에게 리모컨을 가져다줄 뿐이다. 이 요망한 것.
첫째가 태어나고 많은 이가 조언하길, 다운증후군 아이들은 기다리면 결국 다 해낸다는 거였다. 내가 할 일의 최우선은 차분히 기다리는 거였는데, 내가 가장 못 하는 일도 그것이다. 급한 성격은 회사 일을 처리할 때나 급한 마감을 앞두고 있을 때 꽤 쓸모 있다. 약속 시간에 늦는 일도 거의 없다. 내가 누굴 기다리는 일이 유쾌하지 않기에 남에게도 그러하고 싶지 않다. 누가 나에게 “좀 기다려 줄래” 묻는다면, 내 마음속 진짜 대답은 “아니야”이다. 물론 나는 아이가 아니니 아니야, 하는 말을 남발할 수는 없는 법이다. 상황에 맞춰 기다리기도 하고, 늦은 이의 사정 같은 걸 헤아리기도 해야 한다.
나는 무엇보다 아이의 발화를 기다리고 있다. ‘아니야’ 하는 소리를 듣는 일도 그래서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아니야, 라는 말은 어쩌면 살면서 가장 정확하게 해야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싫은 일에 거절 의사를 표시하고, 부당한 일을 거부하며, 곤란한 일에 솔직해지는 일. 어른이 되면 그 일이 참 힘들다. 그때 그 일을 거절해야 했는데 후회하며 낭패 보는 일이 많다. 거부하고 싶어도 차마 거부할 수 없는 처지일 수도 있다. 그건 안 되겠다고, 그렇게는 아닌 것 같다고 하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서 그럭저럭 상황을 넘길 때, 위기는 반드시 찾아온다. 그러한 위기 뒤에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거절 대신 수락을 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싫다고 다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아이는 아침마다 (중학생이나 되었으면서) TV 하나둘셋 유치원을 꼬박꼬박 보는데, 심지어 마지막 노래와 광고까지 다 보는 게 습관이다. 그럼 묘하게 등교 시간이 빠듯해져 아이 엄마는 자동차 키를 손에 들고 현관에서 발을 동동 구른다. 이제 고만 봐야지, 나와야지! 아이가 언제나처럼 대답한다. 아니야. 그러면 결국 큰소리가 나고 마는 것이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이는 샐쭉한 얼굴이 되어 손목을 붙잡혀 현관을 나선다. 그런 날은 자동차 뒷자리에서 씩씩거리기 일쑤라고. 그래 봤자 아닌 건 아닌 거다. 너만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아야 할 게다.
알고 보면 우리는 언제나 아니라는 말과 아니긴 뭐가 아니라는 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게 아닐까. 그건 진짜 아니라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이고, 아닌 건 아니라서 결국은 해야 할 일이 있다. 세상 모든 일에 “그래!” 대답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일은 없다. 아니 일어난다. 그러하니 아이에게 이제는 그래, 라고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충분히 해야겠다. 앞으로 그런 일은 점점 줄어드니까. 그런 마음으로 아이에게 말을 건넨다. “잠깐 와볼래?” 아이가 대답한다. “아니야.”
서효인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