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연식 작가의 웹툰 ‘늙은 아버지의 나날’을 인상 깊게 봤다. 글과 그림이 매우 진솔하고 몰입감이 있어서 무거운 주제인데도 술술 읽고 보았던 기억이 난다. 픽션이지만 논픽션 감성이 무척 강했는데, 어떤 장면은 너무 현실감이 있어서 그림으로 보는데도 무척 마음이 불편했다. 참담함도 생생했다. 노년의 끝자락에서 병이 매우 중해진 아버지는 의료진도, 자식도, 스스로도 감당하기 힘들 만큼 무너져 갔다. 그럼에도 삶이 그런 것처럼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고 나도 계속 연재를 따라 읽었다.
웹툰을 의미 있게 읽던 중 발견한 책이 심우도 작가의 「우두커니」라는 만화였다. 마찬가지로 나이 든 부모에 대한 이야기였고 글과 그림이 함께였다. 만화와 그림책은 볼 때마다 약간씩 감동이 다르다. 어떤 이야기는 글자로 풀어내는 것이 고단함을 가중한다. 쓰는 사람은 쓰는 사람대로, 읽는 사람은 읽는 사람대로, 둘 다 고단하다. 한데 일부는 글로 풀고 일부는 그림으로 풀어내면, 서로 다른 감각을 써서인지 조금 빈 공간이 생긴다. 글에서 조금, 그림에서 조금, 서로 덜어내고 서로 채운다.
「우두커니」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는 젊은 딸 부부의 이야기인데 사실에 기반한 픽션이다. 어릴 적 아빠에게서 아주 다정하고 깊은 사랑을 받은 딸은 결혼해서도 남편과 함께 줄곧 아버지를 모신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나이가 많은 작가의 아버지는 마지막에 치매를 앓는다. 그리고 전혀 다른 아버지가 된다. 달라진 아버지는 특히 말로 딸과 사위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데, 진심이 아님을 알면서도 딸은 흔들린다. 아버지에게 애정이 있기에 병으로 인한 것임을 알면서도 매번 줄곧 흔들리는 딸을 보면서, 딸만큼이나 나도 마음이 아팠다. 그런 일로 고난을 겪기에는 딸과 사위가 너무 젊었고, 아버지와의 좋은 추억이 너무 많았다.
그런 일을 겪을 때 나이는 분명 도움이 된다. 10대와 20대가 다르듯 30대와 40대가, 40대와 50대가 다르다. 나이가 들면 어느 면에서 사람은 조금 단단해진다. 그래서 작가가 젊은 것이 매우 마음에 걸렸다. 치매 부모를 돌보기에 청춘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 젊음은 젊음으로 내버려두어야 한다. 젊음을 온전히 누리고 겪어야 다음에 올 중년에 무리 없이 안착할 수 있다.
작가는 치매의 여러 증상 중 아버지의 성정이 달라지는 것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드라마에서 자주 다뤄지는 중증치매 증상은 대소변 실수라거나, 길을 잃는다거나, 불을 잘못 관리해 화재가 난다거나 그런 것들이다. 그런데 「우두커니」에서는 아버지의 성정이 변하는 것에 집중한다. 만화 속 아버지는 딸과 사위가 속상해 할 부분을 콕 집어 가혹하게 들쑤신다. 정도가 심해지면서 나중에는 독자도 기함할 정도의 세고 강한 말들. 그것이 돈을 잃어버린다거나, 집안 살림의 일부가 불에 타는 것보다도 더 큰 일임을 제대로 보았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도 그게 아니었을까. 치매라는 병에 있어 작가에게 가장 난감하고 어려웠던 지점, 성정의 변화. 당연히 아버지에게서 발견되는 것들은 불안·의심·비난·분노·공격·폭력,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이다. 변화는 점점 더 세고 강해진다. 공격성과 폭력성이 극에 달했을 때 도리 없이 경찰을 불러 응급실에 간다. 응급조치를 받고 아버지는 비로소 진정된다. 감당이 안 되는 아버지는 자연스레 요양시설로 가는 수순을 밟는데, 그 과정에서 의료비가 언급된다. 의료비는 가족들이, 특히 젊은 부부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작가는 치매 환자가 하는 말은 진심이 아니므로 흘려들으라는 조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말은 매우 절망적인 말이다. 말을 안 믿으면 무얼 믿나.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고, 말 한마디에 성난 마음도 눈 녹듯 녹는데.
「우두커니」라는 제목은 우두커니 서서 창밖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나온 제목이다. 나중에는 작가도 우두커니 서서 창밖을 바라보는 모습이 나온다. 아버지는 병으로 넋이 나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우두커니 서 있고, 딸은 돌봄과 삶의 허무함에 지쳐 외로이 망연히 서 있다. 둘 다 너무 외롭다. 질병과 죽음 앞에서 우리는 모두 너무 외롭다.
작가의 이름 심우도는 필명인데, 글을 쓰는 아내와 그림을 그리는 남편의 부부 공동 필명이다. 책의 마지막쯤에 작가는 남편에게 치매 아버지와 살아가는 본인들 이야기를 만화로 쓰고 그리자고 말한다. 속에 담아두면 썩어서 안 된다고. 적당히 각색을 거치면서, 본인들의 이야기를 쓰면서, 부부는 어느 정도 치유를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속에서 썩지 않게 갈무리를 했고, 그렇게 그들의 사연들로부터 놓여났을 것이다.
이번에 「우두커니」가 재출간되었다고 들었다. 이 좋은 책을 많은 이가 읽었으면 좋겠다. 늙은 부모를 돌보는 젊은 자식이 읽어도 좋겠지만, 그 누가 읽어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 늙을 것이고 젊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게 가족이든 의료인이든 봉사자이든 어쨌든 사람일 것이다. 우리 모두 그 광경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