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 시인의 특별하고 평범하게] (42) 말문이 트인 첫째
요새 다운증후군인 첫째 아이의 말이 부쩍 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단어가 아닌 문장을 말하고, 대화처럼 주고받는 말도 가끔 한다는 것이다! 같이 사는 아빠인데 이 반가운 소식을 무슨 동네 뉴스처럼 전해 듣다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집에서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입이 학교에서는 최근 이런저런 말을 뱉느라 바쁘다는 것이다. 어제는 학교 파하고 차에 가는 길에 “오늘 센터에 가요?” 하고 먼저 물었다고 한다. 아이 엄마가 모르는 척 “오늘 수요일인데?” 하니 “오늘 센터 안 가요?”라고 대답했다고. 묻고, 답하고, 다시 묻는 그러니까 대화가 이뤄진 것이다! 아이 엄마는 학교 앞이라 티는 못 내고 속으로 상당히 감격했다고 한다.
아이의 말 트임은 엄마, 아빠가 아닌 상대로 더 빠른 듯하다. 학교 선생님과 곧잘 대화가 이뤄진다는데, 전해 들을 때마다 과장처럼 들려서 나는 시큰둥했다. 예를 들어 아이를 유독 좋아하는 부담임 선생님이 아이를 가만 쳐다보고 있으면 아이가 이렇게 말한다는 것이다. “나 귀여워요?” 그러면 선생님이 활짝 웃으며 대답한다고. “어! 예쁘지.” 아이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나 예쁘지요?” 그저 흘려들으면 세상에 무슨 이런 대화가 다 있어, 싶겠지만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을 주어, 서술어를 활용해 한다는 것이니 나쁘지 않았다. 선생님은 아이가 집에서 예쁨을 많이 받으며 자라는 게 보인다며 역시 나쁘지 않다고 하셨다. 아니, 좋다고 하셨다.
“예쁘다” “귀엽다” 하는 이야기를 자주 아이에게 건네다 보니 그런 말을 먼저 하는 게 아닐까. 하긴 아이가 그보다 자주 하는 말은 “아니야”이니 아마 그럴 것이다. 집에서는 간단한 질문에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면서 밖에서는 잘도 써먹고 있군. 괘씸한데 기특하다. 사정이 이러하니 대답을 잘하든 아니든, 반응이 이렇든 저렇든 집에서 최대한 말을 많이 걸어야겠다 싶은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입을 영 열지 않으니 못 알아듣는 줄 알고 아무런 말이나 하는 걸 조심해야겠다. 아이는 다 듣고 있고, 언젠가 그 말을 하고야 말 것이다. 내가 욕을 하면 욕을 배울 것이다. 내가 바른말을 하면 바른말을 배우겠지.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예쁘다, 귀엽다 같은 말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 또한 고민이다.
아이의 소식을 오늘도 나는 뉴스처럼 전해 들었다. 아이와 무슨 말을 할 시간이 별로 없다. 첫째는 예쁘고 귀여운 아이답게 일찌거니 잠들고, 나는 아이가 곤히 자고 있을 때 집에 오는 일이 잦다. 그게 아니더라도 피곤하다는 핑계로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아이는 보는 둥 마는 둥 야구를 보거나 SNS를 구경하기 일쑤다. 아이에게 최대한 말을 많이 해야, 아이도 무슨 말이라도 더 트일 텐데 말이다. 좋은 말을 해주고 싶은데, 세상만사 다 예쁘고 귀여운 건 또 아니라서 말 고르기도 어렵다. 아이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게 말은 걸지 않고 그저 안아달라고 한다. 나는 아이를 안으며 또 예쁘고 귀엽다고 말한다. 이제 아이에게 건넬 다음 말도 연구해야 할 것 같다.
서효인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