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본부장 이승현 신부)는 11월 1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일대에서 ‘2026년 가을걷이 감사미사 및 도농한마당 잔치’를 열었다. 아침부터 비가 내렸지만, 신자와 시민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제주에서 평창까지 전국 교구에서 올라온 농부들이 거둔 농산물로 장터는 풍성했고 웃음과 이야기가 이어졌다.
서울의 다른 일정 때문에 늦게 도착한 나는 대부분 채소가 이미 완판됐다는 이야기를 먼저 들었다. 반가운 소식이었지만 사고 싶은 채소가 있던 내게는 조금 아쉬웠다. 서둘러 팀화요 김현숙 농부님을 찾았지만, 늦은 점심 식사를 하러 가신 뒤였다.
농부님의 부스가 있는 수원교구 바로 옆에는 원주교구가 자리했다. 그곳에서 무농약으로 키운 평창의 감홍사과를 만났다. ‘달고 붉다’는 뜻의 감홍은 수확 시기가 짧아 이맘때가 아니면 맛보기 어려운 사과다. 사과를 달라고 하자 농부님이 ‘그래도 맛을 봐야지요’ 하며 한쪽을 건네주셨다. 사과를 베어 물자 진한 단맛과 함께 기대보다 훨씬 아삭한 식감이 입안에 퍼졌다.
충남 공주에서 오신 ‘밤아저씨’ 우제송 농부님은 자연 재배한 대보밤을 그 자리에서 까주셨다. 포장하다 벌레 먹은 밤을 발견하자 새 알밤으로 바꿔주셨다. 작은 밤 한 알도 허투루 내놓지 않는 정직한 마음이 느껴졌다.
밤과 사과를 사 들고 돌아오니 김현숙 농부님이 와 계셨다. 장터가 파할 무렵 빗줄기는 더 거세졌고, 멀리서 온 농부들이 3시에 먼저 차로 짐을 옮기고 4시쯤 수도권 농부들도 서둘러 짐을 실었다.
팀화요 자매들은 며칠 밤잠을 설치며 장터를 준비한 농부님이 졸음운전을 하실까 걱정했다. 내가 함께 간다니 안심이라며, 졸지 않게 이야기를 많이 해드리라고 당부했다. 이야기 재주가 없는 나는 우선 내가 산 깐 밤을 건넸다. 밤을 드시며 농부님은 밤 아저씨가 알밤이라도 가져가라 했지만 받지 않고 왔다고 하셨다. 이유를 듣는 순간 마음이 먹먹해졌다. ‘이제 밤을 까줄 엄마도 없는데⋯.’
얼마 전 어머니를 하느님 품으로 떠나보내신 농부님은 아직도 문득문득 어머니를 그리워하신다. 밤은 누군가에게는 그저 가을 간식이지만, 농부님에게는 어머니가 곁에 계셨던 시절을 떠올리는 음식이다. 집 앞에 도착해 깐 밤 봉지에 감홍사과 한 알을 넣어 집에서 드시라고 드렸다.
그러자 농부님은 다듬다 지쳐 넣어둔 고춧잎 한 봉지와 만차랑 호박 두 개를 주셨다. 서리가 내려 덜 익은 채 수확해 아직 단맛이 덜하다며 주셨지만, 농부님이 키운 호박이니 기대된다. 농부님과 팀화요를 하면서 어느새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돼 있었다. 우리가 장터에서 사고파는 것은 단순한 농산물이 아니라 땀과 정성, 삶의 이야기였고, 서로의 빈자리를 헤아리는 마음이었다.
신부님께서는 감사미사에서 농부들이 땅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며 비와 햇볕을 견뎌 수확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나누셨다. 하느님께서 주신 땅과 자연의 은총 위에 농부들의 땀과 기다림, 수많은 손길이 더해져 우리 식탁에 오르는 것이다.
이날 김현숙 농부님이 봉헌한 것은 다섯 가지 토종 벼였다. 아직 도정하지 않아 다섯 가지 벼의 빛깔이 그대로 드러나 참 아름다워 신부님께서 특별히 감사의 마음을 전하셨다고 한다. 감사미사 봉헌은 농산물을 올리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맡기신 창조세계를 돌보며 살아온 농부들의 삶을 함께 봉헌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신부님께서는 강론 중 이주노동자들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오늘날 농촌은 이주노동자의 손길 없이 농사를 이어가기 어려운 곳이 많다. 씨 뿌리고 모종을 심고 수확하고 선별하는 일까지, 그들이 농업의 중요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지난 10월 27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농어촌 인력난 대책을 지시하며 외국인 노동자가 국가 경제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발언해 논란이 일었다. 누군가의 노동과 존재를 경제적 가치로만 따질 때 그 말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생각하게 된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의 존엄은 국적과 출신, 피부색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농부님이 주신 고춧잎을 다듬어 저녁 반찬을 만들었다. 명동성당에서 만난 농부들의 웃는 얼굴, 품에 안고 온 감홍사과와 대보밤,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김현숙 농부님 마음이 밥상 위에 함께 놓였다. 이 땅에 농부가 없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먹고 살 수 있을까?
우리는 매일 밥을 먹지만, 그 밥상이 차려지기까지 수고와 기다림을 잊고 산다. 오늘 도농한마당은 단순한 직거래 장터가 아니라, 창조질서를 지키며 땅을 돌보는 농민들께 감사하고 도농이 서로의 삶을 나누는 생명 공동체 자리였다. 어쩌면 우리가 지켜야 할 농촌 모습도 이와 같을 것이다. 서로의 수고를 알아주고 부족한 것을 나누며, 누군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것. 오늘도 땅을 일구며 생명을 키워가는 모든 농부와 이주 노동자들의 수고에 감사드린다.
레시
재료
데친 고춧잎 100g, 고추장 1/2큰술, 간장 2큰술, 참기름 1큰술, 깨 1/2큰술(절반은 갈아서 양념에, 절반은 통깨로)
사전 준비
1. 고춧잎의 질긴 줄기를 떼어 내 다듬는다.
2. 꽃잎은 따로 떼어 둔다.
조리 순서
1. 소금을 약간 넣은 끓는 물에 고춧잎을 넣고 1분간 살짝 데친다.
2. 찬물에 헹궈 물기를 꼭 짠다.
3. 고추장, 간장, 참기름, 간 깨를 섞어 양념을 만든다.
4. 고춧잎에 양념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 뒤, 통깨를 뿌린다.
5. 접시에 나물을 담고 꽃잎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