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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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절은 노년에도 온다

[서민선 작가의 노년을 읽습니다] 42. 마에노 다카시·스가와라 이쿠코「잘 늙겠다는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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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세월은 삶의 지혜를 더하고
이웃과 나누는 짧은 대화도
익숙한 드라마를 보는 시간도
노년의 소중한 행복이 된다




‘나이 들면 불행하다는 것은 착각이다.’ 이 문장이 책 「잘 늙겠다는 다짐」의 시작이다. 내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좋은 시절 다 갔다.” 보통 공부하느라 힘들어 보이는 고등학생 손주를 보면서, 맘껏 뛰놀던 어린 시절이 끝났음을 안타까워하면서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종종 나이 들어가는 누군가에게 이제 신나고 재미있을 일이 없을 것이라는 뜻에서 이 말을 한다.

늙는 일은 슬프지만 그렇다고 노년이 어둡기만 할까? 아니다. 책은 노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에 반하는 사례와 연구들을 차곡차곡 보여주는데 마치 증거 수집 목록 같다. 노년기에는 노년기에만 발견이 가능한 또 다른 행복이 있고, 행복이란 개인차가 있으므로 노년기의 행복도는 천차만별이다. 한 사람의 생애를 볼 때 행복 그래프는 U자 곡선이다. 즉 중년 이후 행복감이 더 상승한다. 그리고 긴 인생 경험은 대범함을 갖게 해 주니 인생의 이해력도 적응력도 넓어진다.

작년에 돌아가신 1933년생 시어머니는 팬데믹 때 거의 집 안에만 갇혀 계셨다. 쉬는 날 방문하는 자식들 만나는 재미에 사셨는데 갑자기 모두 발길을 끊었다. 우리가 안 가는 건 어머니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이 상황을 어떻게,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난감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의외로 쉽게 받아들이셨다. “에미야, 전염병이 돈다매? 뭐 그런 게 돌아 그래. 오지 마, 오지 마.” 그렇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신 어머니는 전쟁과 보릿고개와 외환위기를 겪었다. 온갖 고난을 겪으며 긴 시간 살아내신 분이다. 그러니 코로나 또한 그저, 조금 심한 전염병 중 하나로 받아들여 수긍하셨다. 이게 연륜인가. 나는 어머니의 고령에 대해 미처 몰랐던 신뢰가 생겼다. 아무리 늙어 노쇠해도 연장자가 갖는 품이 확실히 있구나.

「잘 늙겠다는 다짐」의 두 저자는 대학에서 웰빙학을 가르친다. 마에노 다카시는 행복학 권위자이고 스가와라 이쿠코는 사회노년학 전공자다. 책의 주제는 ‘노년행복학’이다. 노년의 행복에 대해 샅샅이 한번 말해볼까? 그런 분위기가 책 전체에 묻어난다. 노년의 인간관계, 돈을 쓰는 방식, 일, 건강과 행복, 그리고 행복 실천 가이드. 글마다 행복을 밝히는 통계자료와 그래프가 끊임없이 따라붙는다.

노년의 인간관계를 다루는 장에서는 ‘별것 아닌 대화가 중요하다’라는 주장이 특히 흥미로웠다. 노년기에 이웃과의 교류가 활발할수록 행복도가 올라간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는데, 노년이 오고, 일에서 은퇴하면 속해 있는 조직이 없어진다. ‘별것 아닌 대화’를 할 상황과 관계가 자연적으로 줄어든다. 그러니 슈퍼에서 계산할 때 나누는 한마디, 산책길에 이웃과 나누는 날씨 인사 등 별것 아닌 대화가 일상에 크게 다가올 것이다.

더불어 저자는 ‘느슨한 관계’를 말한다.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 칭하면서 느슨한 관계 역시 귀하고 중요하다고. ‘소중한 친구는 한둘이면 족하다’는 믿음이 지배적인 세상이다. 하지만 일부러 느슨한 관계를 정리할 필요는 없다. 밀접한 관계만큼이나 노년의 일상에 힘이 되기 때문이다. 별것 아닌 대화와 느슨한 관계. 둘 다 대단히 일상적인 것들이다. 노년은 일상의 연장이다.

노년의 일을 말하는 장에서는 ‘인생 선배들의 일하는 방식에서 배운다’는 꼭지가 인상 깊었다. 정년퇴직한 사람이 정년을 앞둔 후배를 멘토링한다는 발상은 참 근사하다. 학교에서 선배가 후배를, 회사에서 선임이 후임을 멘토링하는 것처럼 노년 선배가 노년 후배를 멘토링한다면 사회적 비용도 감소되고 노인 복지의 일에 인간미도 더해질 것이다.

비단 정년 후의 일에 대해서만이 아니다. 무료 백신 접종, 교통비 할인 혜택 등 고령자의 사회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구할 때 많은 노인이 ‘아는 사람’에게 묻는다. 정해진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이 버겁기도 하고 사람에게 직접 듣는 것이 마음 편해서이기도 하다. 그러니 나이 든 노인이 젊은 노인에게 늙음의 노하우를 전수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9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한 ‘평소 즐거움을 느끼는 일’ 설문 조사 결과가 나온다. ‘TV·라디오 시청’ ‘신문·잡지·책 읽기’ ‘맛있는 음식·음료 먹기’ ‘가족과 대화’ ‘이웃·친구와의 대화’ ‘산책·외출’ 등의 항목이 있었는데 압도적 1위는 ‘TV·라디오 시청’이었다. 자립도와 돌봄 필요도에 따라 항목별 응답의 차이는 있었지만, 결과를 보니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도 나름의 방식으로 즐거움을 찾고 있었다’라는 저자의 해석이 이해가 갔다.

시어머니가 살아 계실 적에 안부 전화하기 딱 좋은 시간이 저녁 7~8시 즈음이었다. 퇴근 후, 식사 후. 하지만 어머니는 늘 전화를 서둘러 끊으셨다. 그때가 어머니의 황금 시간, 일일드라마를 보는 시간이었다는 것은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드라마 줄거리를 옆집 이웃 이야기하듯 내게 전하곤 하셨고 나는 옛날이야기 듣듯 즐겁게 빠져들었다.

노년에도 좋은 순간이 있고 좋은 시절이 있다. 노년학에서 찾아낸 증거와도 같은 사실들이 그것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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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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