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박해(1801년)와 기해박해(1839년) 그리고 병인박해(1866년) 당시 의금부에서 신문을 받던 천주교 신자들의 진술을 기록해 놓은 추안(推案) 및 국안(鞫案) 이 당시 정치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서종태(한국교회사연구소 책임 연구원) 박사는 6월28일 개최된 제136회 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 발표회에서 이같이 주장하고 추국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는 이가환 이기양 정약용 등 정조의 개혁 정치를 뒷받침했던 청남계 인물이 다수 포함돼 있기에 당대 정치사 연구에도 유용하다고 강조했다.
서 박사는 또 추안(推案) 및 국안(鞫案) 은 의금부에서 곤장을 쳐가며 신문한 생생한 기록들로서 「승정원 일기」「조선왕조실록」등과 같은 관변측 사료에서 볼 수 없는 천주교 신자들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간직하고 있어 피고인의 신분·혈연 관계 스승과 제자 관계 그리고 순교와 배교의 여부 등을 파악하는 데 반드시 참고해야 할 일차사료라고 설명했다.
추안(推案) 및 국안(鞫案) 에는 신유박해 당시 의금부에서 신문을 받은 천주교 신자 45명과 기해박해 8명 병인박해 21명 등 총 74명의 신문 내용이 기록돼 있다.
서 박사는 특히 이들 신문 내용 중 주문모 신부를 비롯해 유관검·유항검·이우집·윤지헌 등의 추국 내용은 호남 지역의 천주교회에 관한 제반 사항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뿐 아니라 성직자 영입 운동과 관련된 대박청래 의 문제를 살피는 데도 꼭 필요한 자료라고 말했다.
이날 발표회에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선교의 신학적 의의와 한계 에 관해 발표한 황종렬(평신도 신학자)씨는 리치가 중국의 복음화를 위해 선택한 적응주의는 중국 사회 문화 전통을 복음화의 방법으로 활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면서 리치의 적응주의 선교 방법론에 있어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중국인을 인간으로 이성의 주체 로 보았다는 사실 이라고 설명했다.
리치의 구체적 선교 방법은 △문서 선교 △사회적 우애를 형성해 가는 문화교류 △종교 사회 관습에 대한 존중의 형태로 나타난다.
황씨는 그러나 리치가 처음부터 끝까지 중국 전체의 개종을 목표로 삼았고 유·불·선 3종교를 우상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적응주의 선교의 한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리길재 기자